‘내 마음은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 오리다‘

김동명(1901~1968)의 시, ‘내 마음은’의 두 번째 연(聯)이다.

독자로서 시(詩)적 상상력을 동원하자면 온몸을 녹여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을 노래 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촛불의 이미지는 조용하지만 거룩하다.

제 몸을 녹여 어둠을 밝히는 ‘희생의 화신’이다.

거기에는 범접할 수 없는 신성이 묻어 있다.

촛불은 두 손으로 받쳐 든 기도하는 마음이다.

속삭이는 듯 작지만 강력한 불꽃 에너지가 농축되어 있다.

촛불은 그래서 어둠을 밀어내는 빛이고, 불의를 사르는 힘이요, 부패를 태우는 불꽃이다.

‘인간 존재의 유일한 목적은 존재의 어둠속에 촛불을 켜는 것’이라 했다. 심리학자 융의 말이다.

어둡고 불의한 세상을 밝히는 촛불의 의미를 설명한 것이다.

최근 몇 차례 제주에서 서울까지 전국 곳곳에서 불꽃을 태웠던 수 백 만 개의 촛불도 그렇다. 나라의 어둠을 밝히는 거룩한 국가 사랑의 에너지가 뭉뚱그려 진 것이다.

무도(無道)한 권력, 얼굴에 철판을 깐 듯 부끄러움을 모르는 철면피 정권에 보내는 참을 수 없는 함성이었다.

김동명의 시구(詩句)에 비유하자면 ‘거룩한 분노의 불꽃’이었다.

되풀이하기도 식상한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는 국가 기능을 하수구처럼 썩고 문드러지게 했던 ‘어둠의 자식’이었다.

온갖 더러운 협잡(挾雜)과 어둠속의 야합(野合)을 동원한 국가 권력 농단으로 국민은 황당했고 허탈했다.

그래서 촛불을 들 수밖에 없었다. 가을 밤 하늘은 수놓았던 수 십 만개, 수 백 만개의 촛불은 처음에는 ‘박근혜 정권’의 잘못을 일깨우는 불꽃이었고 반성을 촉구하는 함성이었다.

어둡고 불의한 권력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경고 메시지였다.

지난 5일 서울 광화문 광장일대에서 시작한 수 십 만개의 촛불은 박대통령이 조용히 복마전 같은 퀴퀴한 청와대 무대에서 내려오라는 메시지였다.

그리하여 석고대죄(席膏待罪) 자세로 국민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제 살을 베고 뼈를 깎는 심정으로 국민의 용서를 빌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촛불 민심의 간곡함을 헤아리지 못했다.

몇 십 초짜리 짤막한 ‘사과 멘트’로 어물쩍 국면을 돌려 보려 한 것도 상황인식의 무지를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오산이었다. 그것으로 촛불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분노한 촛불은 무섭게 타올라 전국 방방곡곡을 밝혔다.

지난 12일과 19일, 전국 곳곳에서 불 밝힌 수 백 만개의 촛불은 ‘국민은 더 이상 대통령으로 인정 할 수 없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없다면 ‘식물 대통령‘인 셈이다.

대통령 개인에게도 국가와 국민에게도 불행하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은 이미 외신에 의해 조롱거리가 되었다.

대통령이 유지해야 할 품격은 고사하고 국격(國格)까지도 만신창이 되어버렸다.

‘손으로 막을 수 있는 일, 가래로도 막지 못할 상황’을 대통령 스스로가 만들어 버린 것이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자발적 퇴진이 전제되지 않은 한 물리력을 동원해 내칠 수는 없는 일이다.

법치 제도하의 민주국가에서 초법적 강제 추방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 국면을 해소할 수 있는 해법은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에 달려 있다.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받겠다고 했다. 특검까지도 수용의지를 밝혔다.

국회에 책임 총리 추천을 요구하고 여야 영수 회담도 제안했었다.

이 수준이라면 해법의 공은 국회에 넘어간 것이나 다름없다.

여야 정치권이 나서서 책임총리를 추천하고 그 총리에 의해 거국 내각 구성 등 국가 위기 극복을 위한 로드맵을 마련 할 수 있을 것이다.

초법적 발상이 아닌 헌법에 의한 국회 권한의 ‘대통령 탄핵’까지도 국회의 몫인 것이다.

어제(20일) 검찰은 ‘최순실 게이트 중간 수사 결과 발표’에서 ‘대통령이 최순실 등과 공범관계에 있다’고 했다, 사실상 대통령의 범죄 개입을 인정한 것이다.

“대통령 불소추 특권에 따라 기소가 불가능하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지만 대통령 수하의 검찰 조직에서 대통령 범죄 혐의를 인정한 것은 의미가 크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 절차에 힘을 보탠 셈이다.

‘대통령 3단계 퇴진론’에 의한 임기 보장이든 ‘질서 있는 퇴진론’이든 야당은 말로만 대통령 퇴진을 되풀이 할 일은 아니다.

책임 총리 추천에 의한 거국내각 구성과 대통령 퇴임과 퇴진 등과 관련한 신상문제 등 구체적 방법과 시기와 절차 등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정치적 로드맵을 국민 앞에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국민 이해 과정이 없이 정치적 공방이나 무책임한 정치 선동으로 당리당략에 몰두하거나 권력 욕심에 사로잡힌다면 대통령에게 향했던 분노의 촛불 민심이 거칠고 뜨거운 횃불이 되어 정치권을 불태워 버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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