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오(희곡작가)

동서고금 어느 곳을 막론하고 세상 사람들은 탄생과 죽음에 대한 경외심과 공포심을 동시에 지녀왔다. 새 생명의 탄생에 대한 기쁨 못지않게 크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든 이겨내려고 천국과 지옥을 만들어냈다. 이승과 이별한 영혼이 머물 저승이 없다면 삶 또한 죽어가는 과정이라는 좌절감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제주의 옛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저승을 상상하고 탄생과 죽음을 관장하는 신성을 빚어왔다. 죽음의 신이 저승의 시왕이라면 탄생의 신은 ‘삼싱할망’이다. 그 때문에 제주의 굿 중에서도 최고로 손꼽는 것이 시왕을 달래는 ‘시왕맞이’와 삼싱할망을 청하는 ‘불도맞이’다.

제주의 삼싱할망 ‘멩진국따님애기’는 다른 지역의 삼신할머니인 ‘당곰아기’와 같은 권능을 지닌 신이다. 사람을 탄생시키고 열다섯 살까지 건강히 자라게 보살펴준다는 멩진국따님애기는 서천꽃밭의 창조주이다. 서천꽃밭은 어떤 곳일까? 저승 어딘가에 있다고 여기는 그 곳은 이승에 사는 모든 사람의 목숨과 이어진 생불꽃이 자라는 생명의 정원이다. 이 세상에 새롭게 태어날 아기를 점지해 주고는 이내 그의 목숨과 이어진 생불꽃을 심는 것이 삼싱할망의 첫 번째 권능이며 소임이다. 그렇게 생명이 태어나 열다섯 살이 될 때까지 생불꽃을 정성스레 키우며 그 꽃과 이어진 주인공을 무탈하게 만들어준다.

탐라국입춘굿의 불도맞이 中 '할망나숨'

제주사람들은 열다섯 살까지를 아이로 여겨 자라는 동안 정성을 다해 삼싱할망에게 무병과 건강을 기원한다. 그렇게 절절한 정성에도 불구하고 열다섯 살이 차기 전에 혹여 죽기라도 하면 그 아이의 환생을 빌며 불도맞이굿을 벌인다. 열다섯 살 전에 죽은 아이는 삼싱할망의 서천꽃밭에 들어가 자신이 목숨과 이어진 생불꽃을 스스로 되살릴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환생의 여지가 있는 미완의 죽음이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거나 병약한 몸으로 태어난 탓에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삼싱할망 또한 환생의 기회를 준다고 믿는다. 하여 불도맞이굿을 통해 삼싱할망께 제향을 바치면 죽은 아이가 유복한 집안에 고귀한 몸으로 환생한다고 한다. 그러니 열다섯 살이 되기 전에 죽은 제주의 아이들은 저승의 시왕 앞에 인도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서천꽃밭을 찾아가 시들어 죽어가는 자신의 생불꽃에 물을 주며 환생을 도모하게 된다. 말 그대로 ‘꽃다운 나이’의 죽음을 꽃의 재생을 통해 극복하려는 의지를 환상적으로 그려낸 것이다. 인간의 수명이 요즘처럼 길지 않았던 시절에 이런 사유조차 없었으면 사무치는 죽음을 어떻게 극복했겠는가.

탐라국입춘굿의 불도맞이 中 '할망다리추낌'

그렇다면 제주의 삼싱할망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떻게 삼싱할망이 되었을까? 그 본초를 따져보면 놀랍게도 하나가 아니라 둘이나 되는 삼싱할망과 만나게 된다. 애초에 이 세상에는 두 명의 삼싱할망이 있었다는 말이다. 두 명의 삼싱할망이 있었다고 전하는 ‘멩진국할마님본풀이’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멩진국에서 스스로 탄생한 멩진국따님애기가 일곱 살 때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지상의 삼싱할망으로 내려오게 된다. 그러나 지상에 내려오자마자 자기가 삼싱할망이라며 막아서는 동이용궁따님애기와 부딪친다. 용왕의 딸인데 인간세상으로 귀양을 당한 동이용궁따님애기는 임나라 임박사에게 간택되어 삼싱할망의 소임을 맡았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에 옥황상제가 둘을 불러 임신과 해산의 방법에 대한 테스트와 꽃 가꾸기 경쟁을 시킨다. 임산과 해산의 방법, 꽃 가꾸기 모두 멩진국따님애기의 승리로 끝나자 동이용궁따님애기는 염라대왕을 찾아가 원통하다며 하소연한다.

이에 염라대왕은 임신한 여인에게는 낙태, 갓난아기들에게 질병을 퍼뜨리며 멩진국따님애기를 방해하고 불도맞이굿에서 함께 대접을 받아먹으라고 명한다. 기세등등한 동이용궁따님애기는 멩진국따님애기가 서천꽃밭을 비운 사이에 숨어들어가 수레악심멜망꽃 씨앗을 퍼뜨려 지상의 아이들에게 병마를 퍼뜨린다. 고민이 깊어진 옥황상제와 멩진국따님애기는 이승의 ‘사라도령’을 ‘황세곤간 도세곤간 꼿감관 꼿성인’으로 뽑아 서천꽃밭을 지키게 한다.

천연두와 홍역의 신인 마누라를 퇴송할 때 꾸미는 '배송차롱'

이와 같은 사연으로 지상에 두 명의 삼싱할망이 생겨난 것이다. 제주사람들은 멩진국따님애기보다 한 발 먼저 지상에 발을 디뎠던 동이용궁따님애기를 ‘구삼싱할망’라고 부르며 ‘삼싱할망’과 구별한다. 삼싱할망이 아기를 점지하고 열다섯 살이 찰 때까지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주는 것과 달리 구삼승할망은 아기들로 하여금 경기(驚氣)를 일으키거나 각종 질병에 걸리게 만드는 해코지를 한다. 이 때문에 제주의 옛사람들은 삼싱할망만 위하는 것이 구삼싱할망도 어르고 달래는 의례를 치러야만 했다.

아이들에게 병마를 주는 신은 구삼싱할망만 있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구삼싱할망은 순진해서 조금이라도 대접하면 그에 응대라도 하는데, 천연두의 신 ‘호구대별상서신국마누라’는 걸핏하면 아이들을 죽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신이다. 용케 천연두를 이겨내 살아난 아이들에게는 박박 얽은 곰보자국을 남기는 흉험을 주니 마누라는 가장 무서운 신이었다.

삼싱할망이 구삼싱할망과의 경쟁에서 이겨 산육신(産育神)이 된 것처럼 삼싱할망과 마누라 사이에서도 커다란 싸움이 있었다고 전한다. 어떻게 보든 서로 적대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었던 마누라와 삼싱할망의 우연한 만남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바람결 구름결을 헤치며 아기를 점지하기 위해 지상으로 내려오던 삼싱할망이 엄청난 병사들을 이끌고 행차하던 마누라와 맞닥뜨린다. 삼싱할망은 자신이 점지한 아이들에게 질병을 주지 말라고 부탁하지만 마누라는 오히려 자신의 행차에 부정을 끼쳤다며 큰소리를 치며 쫓아낸다. 분하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조용히 물러선 삼싱할망은 마누라의 부인을 임신시키고 만삭에 이르게 한다.

부인의 임신 사실을 알고 기뻐하던 마누라의 웃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근심으로 바뀐다. 부인이 열 달이 지나도 출산을 못한 채 생사의 갈림길에 이른 것이다. 태산 같은 걱정을 안게 된 마누라는 삼싱할망이 출산을 막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낸다. 결국 마누라는 삼싱할망을 찾아가 사정하지만 석고대죄부터 하라는 대답을 듣는다.

이에 마누라는 삼싱할망의 집 어귀부터 마루대청 댓돌 앞까지 자리를 깔고 무릎으로 기어가며 읍소한다. 마음이 누그러진 삼싱할망은 한 가지 다짐을 받은 뒤 마누라의 청을 들어준다. 이때 마누라가 한 다짐은 아이들에게 큰 마마인 천연두는 되도록 안 걸리게 하고 작은 마마인 수두만 걸리게 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삼싱할망의 통쾌한 복수담은 제주의 굿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신화, 즉 본풀이는 굿에서 노래로 불리는 서사시이다. 때문에 제주의 굿에서는 굿의 목적과 대상에 따라 청하는 신들의 본풀이를 서창한 노래로 읊어낸다. 본풀이를 노래로 부를 때는 주로 심방(무당)이 장구나 북을 놓고 앉아 직접 반주하면서 진행하는데 말과 노래가 뒤섞이는 모습이 마치 앉아서 부르는 판소리처럼 보인다. 물론 특별히 서서 춤추며 부르거나 연극적으로 모습으로 풀어내는 본풀이도 있다.

그런데 삼싱할망의 사연 멩진국할마님본풀이는 매우 극적으로 재연된다. 마누라가 삼싱할망에게 석고대죄하던 모습을 심방이 그대로 따라한다는 말이다. 옛날 제주의 전통가옥에는 큰길부터 집 안까지 이어지는 가지 길인 올레가 있었다. 멩진국할마님본풀이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안채의 마루에 신을 모시는 굿청을 마련해놓으면 으레 거기서 굿을 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삼싱할망의 사연만 올레어귀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은 당연히 석고대죄를 했던 마누라의 모습을 재연하는 것이다.

굽이진 올레부터 마당을 지나 굿청까지 이어지는 공간에는 제주에서는 ‘청새’라고 부른 파릇파릇하고 싱싱한 띠풀을 정성껏 깔아놓는다. 그 위를 합장한 채 무릎으로 기며 나아가는 심방의 모습은 부인의 해산을 간청하며 삼싱할망의 권능을 칭송했던 마누라의 모습 그대로다. 마누라가 그렇게 삼싱할망을 위하는 방식을 최초로 만들어냈다고 여겨 멩진국할마님본풀이를 할 때에는 반드시 이런 연극적인 재연을 펼치는 것이다. 이처럼 제주의 본풀이는 종교의 경전인 동시에 굿을 결정하는 대본이기도 하다.

본풀이는 굿만 결정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보자. ‘천지왕본풀이’에서 대별왕또와 소별왕또가 서로 이승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할 때 소별왕이 속임수로 승리한다. 이를 받아들인 대별왕은 저승으로 떠나 아우 소별왕이 부정한 방법으로 이승을 차지했으니, 그곳은 맑고 공정한 저승과 달리 살인, 도둑, 역적 등 온갖 부정이 생길 것이라는 저주를 남긴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 혼탁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다. 메밀을 여름이 다 되어서야 파종하는 이유, 노루 꼬리에 하얀 줄이 있는 이유 따위를 비롯한 여러 가지 현상과 사물 등이 지닌 속성이 많은 본풀이에서 결정되었다고 한다. 이런 것을 일러 심방들은 ‘법지법으로~’ 또는 ‘그때 낸 법으로~’ 무언가가 갖춰졌다고 노래한다. 본풀이라는 말 자체가 근본을 풀어낸다는 뜻을 지녔으니 신의 사연뿐만 아니라 인문, 사회, 자연의 모든 현상에 대한 기원을 밝히는 이야기인 셈이다.

삼싱할망과 비슷한 역할을 신이 또 있다. ‘일뤠할망’이 그 주인공이다. 일뤠할망은 제주의 마을이라면 대부분 갖추고 있는 ‘일뤳당’의 여신이다. 일뤳당은 매달 7일, 17일, 27일의 세 이렛날에 가서 치성을 드리는 데서 생겨난 이름이다. 삼싱할망이 세상 모든 아이들의 출산과 육아를 관장하는 신이라면 일뤠할망은 자기가 좌정한 마을의 육아와 치병을 담당하는 신이다. 삼싱할망이 모든 아이를 점지해주는 것과 달리 일뤠할망은 마을에 태어난 아이들이 건강히 자라게 하는 소임을 맡았다. 굳이 서열을 나눈다면 삼싱할망이 상위의 신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마을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조사를 다니다보면 몇몇 마을의 일뤳당에는 깨진 사기그릇조각들이 흩어져 있기도 한다. 아이들이 “넋아 난다.”거나 아플 때 찾아가 비념을 하는 것이 보통인데 그릇을 깨뜨리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다. 이것은 개구지고 덜렁대는 아이들이 종종 부엌이나 밥상머리에서 그릇을 깨뜨리는 부주의한 습관을 고치려고 일뤳당에서 같은 행위를 재연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고나면 버릇이 잦아든다고 믿는 것이다. 드물게는 크게 놀라 넋이 단단히 나간 때에도 일뤳당에서 그릇까지 깨뜨리며 ‘넋들임’을 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이야 무속신앙 전체가 축소되며 굿이 사라지고 있지만 번성했던 시절의 일뤳당에는 과자, 사탕, 과일 등의 제물과 동전이 넘쳐났다고 기억하는 어르신들이 많다. 본향당이야 주로 당제일에 맞춰 드나드는 곳이지만 일뤳당은 아이들이 아플 때마다 수시로 드나들던 곳이라 제물이 많았을 수밖에. 제주토박이 어르신들이 유년기를 풀어놓을 때마다 일뤳당 이야기를 자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따금 넋이 나서 어머니 손에 이끌려서 가기도 했지만 주로 과자, 사탕, 동전 등을 노리고 조무래기들이 한 데 뭉쳐 찾아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어머니들이 정성으로 바친 백지와 타래실도 연날리기 재료로 최고였으니 일뤳당은 옛 아이들의 보물창고였던 셈이다. 당이라면 동티가 발동하리라는 두려움이 있어야 할텐데 일뤳당신은 아이들을 지켜주는 신이라 걱정이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제주의 옛 아이들은 엄마뱃속, 베갯머리, 놀이터, 일뤳당, 그 밖의 모든 곳에서 열다섯 살까지 삼싱할망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육체와 두뇌의 성장만을 중요시하는 오늘날과는 다른 영성이 지배했던 세상의 모습이 그립다.

*참고자료

진성기, 남국의 민속, 교학사

현용준, 제주도무속자료사전 개정판,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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