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금희 논설위원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살고 있는 말레이시아의 역사적 경험에서 다문화사회로 변화해가고 있는 제주의 미래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인종의 용광로라고 부르고 있는 말레이시아는 다문화의 갈등을 경험하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는 완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말레이시아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인종구성비율을 보면 말레이계는 약 58%, 중국계는 25%, 인도계는7%, 그밖에 소수민족이 나머지를 차지하고 있으며 저마다 고유의 문화를 갖고 있어 충돌의 위험이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전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말레이시아처럼 다양한 민족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큰 갈등 없이 살아가고 있는 시민의식이 성숙한 국가가 있는가 하면 인종 간 문화적 충돌로 유혈이 낭자한 국가들도 있다. 왜 말레이시아에서 격렬한 인종갈등이 발생하였고, 또 국가통합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일까. 그 이유는 말레이시아의 식민지 역사에서 유래한다. 18세기 영국의 식민지배 당시 영국은 중국인들을 말레이시아의 주석광산과 항만건설 노동자로 이주시키며,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인도 타밀지역의 사람들을 대규모 고무농장 건설을 위해 말레이시아로 이주시킨다. 영국은 중국계와 인도계, 말레이계간의 인종충돌을 차단하기 위하여 중국인은 중국계 거주지역, 인도인은 인도계 거주지역, 말레이계는 말레이계 거주지역에 분리하여 거주시킨다. 한편으로 영국은 이들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가 연합하여 영국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부상하지 못하게 하는 차원에서도 분리정책을 추진했다. 이주민들은 분리정책에 따라 각자 정해진 지역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들이 고국에서 사용하던 전통적인 문화, 관습, 종교, 언어 등이 말레이시아에서도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는데 그것이 오늘날 국가통합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1957년 8월 31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말레이시아는 1963년 사바, 사라왁, 싱가포르가 연합한 말라야 연방을 탄생시킨다. 하지만 1965년 싱가포르는 말라야 연방에서 탈퇴한다. 대부분이 중국계였던 싱가포르에서 1964년 7월과 9월에 연이어 말레이계와 중국계간의 인종폭동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800여명에 이르는 인적 피해와 물적 피해가 발생하게 되면서 말레이시아 정부는 싱가포르를 말라야 연방으로부터 탈퇴시킨다. 첫 번째 인종폭동의 원인은 정확하게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싱가포르에서 발생한 인종폭동의 동인은 말레이시아에 이주한 중국계들이 상권을 장악한데 이어 정치권력까지 장악할 것이라는 우려가 그 바탕에 깔려 있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싱가포르를 축출함으로써 말레이계와 중국계 간에 인종갈등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정리하였다. 하지만 말레이시아내에서 인종폭동이 이로써 멈춘 것은 아니었다. 말레이시아에 이주한 중국인들이 상권을 장악한데 이어 정치권력까지 장악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던 차에 1969년 5월 10일 총선에서 말레이계 움노당이 선거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두게 되고, 반면 중국계 야당이 약진하는 선거 결과가 나오면서 중국계가 축하 시가행진을 벌이는 과정에서 중국계가 말레이계를 조롱했다는 소문이 유포된다. 그러잖아도 선거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둔 움노당의 주도로 중국계에 항의 시위를 준비 중이었는데, 이 소식이 전해지고 흥분한 말레이계들이 중국인 두 명을 살해하면서 인종폭동이 발생한다. 이에 말레이시아 정부는 말레이계의 울분을 달래기 위한 정책인 부미푸트라 정책을 실시한다. 부미푸트라에서 부미는 땅 또는 대지를 말하며, 푸트라는 자손 또는 왕자를 뜻한다. 즉 땅의 자손인 말레이 토착민들의 우대정책인 것이다. 말레이시아인들은 풍부한 자원과 태풍, 지진, 화산폭발이 없고, 사계절 따뜻한 기후를 유지하는 축복받은 땅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경쟁을 할 필요가 없이 먹고 사는 일이 해결되어 왔다. 그러다 중국인과 인도계 및 기타 소수민족들이 이주하면서 이권이 밝은 중국계는 상권을 장악하고, 인도계는 고소득 전문직종인 의사나 변호사 등의 직업을 차지하면서 상대적으로 경쟁에 취약했던 말레이들은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고, 가난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1970년대부터 실시된 부미푸트라 정책을 통해 말레이계는 정부의 든든한 보호와 지원 아래 경쟁력을 회복하면서 경제와 정치영역에서 제 자리를 확보해 가고 있다. 말레이계 우대 정책의 영향으로 상대적으로 차별을 받고 있는 비말레이계들의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까지 말레이시아내에서 인종갈등에 따른 충돌은 발생하고 있지 않다.

한국사회도 다민족 이주민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제주는 다민족사회로 급속하게 진입하고 있다. 평화의 섬 제주가 말레이시아와 같은 고통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서는 인종갈등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평화공존정책이 필요하다. 다문화 평화공존정책을 추진하여 융합과 통합을 이루어 평화로운 공존사회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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