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 위치한 단산(簞山)은

형태는 원추형, 높이는 158m이다.

옛날 산야가 물에 잠겼을 때 오름이 바굼지(바구니의 제주어)만큼만

보였다는 전설에 연유해 '바굼지오름'으로 불리운다.

한자어로 대역하여 簞(대광주리 단)山이다.

또는 오름의 모양새가

바구미(박쥐의 옛말)가 '날개를 편 모습과 흡사 닮았다'고 한 연유이다.

오름의 형상이 독특한 단산은 

응회구의 퇴적층으로 이루어진 바위산으로

침식에 의해 분화구의 일부분만 남아 있다.

바위 봉우리가 중첩된 북사면은 깍아지는 절벽, 수직의 벼랑을 이루고,

남사면은 다소 가파른 풀밭에 소나무와 보리수나무, 보리밥나무, 상동나무 등이 보인다.

서사면에는 태고종 '단산사'가 있고

남동쪽 기슭에는 유형문화재 제4호인 대정향교가 위치해 있다.

 

단산을 오르는 입구는 여러 군데로

출발지점은 단산사로 하고 대정향교쪽으로 내려오는 등반로를 택했다.

'단산사' 돌표지석이 눈에 들어온다.

들머리부터 노랗게 핀 산국이 늦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시작부터 말 그대로 바위산(돌산)이다.

가파른 바위에는 누군가 밧줄을 매달아 놓아

쉽게 오르고 내려갈 수 있게 해두었다.

오름 중턱에서 바라보는 사계리의 앞바다는 환상적이다.

잔잔한 바다 위에 유유자적 아침을 맞는 새들의 날개짓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 위를 지나가는 고깃배들의 여유로움

바다 위에 떠 있는 풀숲이 보일 듯 형과 서 있는 아우의 다정다감한 형제섬

반듯하게 정리된 녹색정원 사이로 들어오는 꼬불꼬불 농로길까지

파도를 잠재워버린 늦가을 아침은 그림처럼 지나간다.

멀리서 보았던 뾰족한 봉우리의 빼어나고 부드러운 산(山)의 곡선미는 온데간데 없고

가까이서 보는 수직의 벼랑은 내려보는 순간 아찔하고 현기증이 난다.

온통 바위로 에워싼 모습이 '바위산' 임을 확연히 보여준다.

정상에 올라서니 사방이 확 트여 시원스레 조망된다.

첫눈 내린 한라산의 모습을 기대했지만

구름모자를 쓴 한라산 모습의 아쉬움도 잠시

끝이 보이지 않는 잔잔한 푸른바다

밭담 너머로 빛나는 초록바다

풍식 작용이 다듬어낸 바위(버섯바위)들이 연출한 조각품

360도 한바퀴를 돌고나니

한라산~산방산~용머리~형제섬~송악산으로 이어지는 파노라마는

모두에게 탄성을 연발하게 한다.

1)산방산(해발395m, 천연기념물 376호)

2)용머리해안(천연기념물 526호)

3)형제섬(무인도)

4)송악산(해발104m, 수중화산체水中火山體)

5)마라도(국토최남단, 천연기념물 423호), 가파도

6)모슬봉(해발181m, 대한민국등록문화재 314호)

7)알뜨르비행장(근대문화유산 39호)

 

거친바람과 맞서며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는 동봉(칼날바위)이 눈 앞에 버티고 있다.

퇴적층 틈 사이로 뿌리를 내린 식물들

제주의 세찬 바람에도 우뚝 솟아난 수 없는 바위들은

이 오름에서 볼 수 있는 놀라운 대자연의 걸작품인 듯 하다.

들꽃들이 겨울여행을 떠나 봄의향연을 기다리는 동안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들국화의 가을나들이는 단산이 주는 매력이다.

오름 중턱을 지나면서 부터 산국과 감국의 감미로움은 눈과 코를 자극한다.

산국에 비해 꽃도 크지만 줄기는 붉은빛이 돌고

통상화가 설상화(혀꽃)보다 길이가 같거나 긴 모습으로 구별이 가능하다.

꽃잎을 따서 씹으면 입안에 느껴지는 달달함이 감국(甘菊)이다.

제주의 오름들은

부드러운 둥근 곡선미로 여성스런 고운 자태를 품고 있지만

바위산인 단산은 하늘을 찌를 듯한 뾰족하고 거친 모습에서 남성을 상징한다.

그래서 오름의 '이단아'란 표현을 쓰는 듯 하다.

지질학자들은 이 오름을 오랜 세월의 풍식에 의해 지금의 골격 단계에 이른

제주도 최고 연륜에 속하는 '기생화산'이라고 한다.

 

단산을 내려오니

추사유배길(제3코스 사색의길)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대정향교를 출발해서 산방산을 거쳐 안덕계곡까지 8km에 이르는 코스로

산방산의 웅장함과 안덕계곡의 경관을 따라 걷는 길은

제주의 바다와 오름, 계곡의 경치를 함께 느낄 수 있다는

안내글이 보인다.

대정향교는 1420년(세종2)에 대정성 북쪽에 처음 지어진 후,

여러 차례 옮겨지다 1653년(효종4) 현 위치에 옮겨 지어졌다.

명륜당이 북향하여 자리잡고 그 북쪽에는 대성전으로 가는 삼문(三門)이 있으며,

이 문을 들어서면 대성전이 남쪽을 향하여 서 있다.

 

향교는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며,

지방 백성의 교육과 교화를 목적으로 세운 교육기관이다.

경내에는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의전당, 내삼문, 전향문, 퇴출문, 대성문, 동정문, 전사청 등이 있다.

의문당(疑問堂)은 동재에 걸려 있는 현판으로 추사 김정희가 나무판에 새긴 현판이다.

옛날 주변 마을에서 물을 길어 먹었던 곳이다.

세미물 또는 돌세미(石泉)라 불리기도 하는데

추사 김정희가 이 곳의 물을 길러다가 차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시원한 물이 흘러내리는 세미물은 아직 공사중~

둑 아래에는 돌미나리의 상큼함에 발길을 멈춘다.

단산의 모습은 '산(山)'을 연상하게 하고

추사 '김정희'선생이 추사체가 완성된 곳 '추사관'으로 발길을 옮긴다.

모거리는 김정희가 기거하던 곳으로

집 울타리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위리안치의 형을 받은 김정희는

이 곳에서 학문과 예술을 심화시켰다.

그의 추사체는 벼루 열 개를 구멍내고 붓 천 자루를 닳아 없어지게 했다고 할 정도로

고독한 정진 속에서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탱자나무가 심어진 울타리 안에는

시간을 거꾸로 사는 듯 하얀 꽃망울을 터트린 차나무의 고운향이

늦가을 속으로 떠나는 하루를 마무리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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