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기 누구 아방 아니라?” “누구 서방도 보염신게”.

지난 10일부터 15일까지 표선면 중산간 마을인 가시리 주민들은 디지털 TV화면을 보며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마을 주민이면 오다가다 쉽게 만나 인사를 건네는 누구누구의 아버지이며, 누구누구의 남편이자 친구인 익숙한 얼굴들이 TV 방송에 출연해 열심히 토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연은 이렇다. 가시리 마을회는 15일, 2017년부터 2년간 마을을 대표할 이장 선거를 실시했다. 주민들이 직접 선출하는 선거였다.

이에 앞서 마을회는 지난 10일 이장선거에 출마하는 후보 3명의 자질과 능력을 검증하기 위한 공개토론회를 개최했었다.

토론회는 마을에 구축된 디지털 TV 방송망을 통해 실황이 생중계됐고 선거일인 15일까지 다섯 차례 지역 내 각 가정에 녹화 중계되었다.

마을 이장 선거와 관련 후보 검증 TV토론회 전 과정을 실황중계하고 다섯 차례나 녹화 중계했던 사례는 없었다. 가시리가 전국 처음이었다.

5일간의 토론회 TV실황중계와 녹화방송으로 이장 선거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과 열기는 뜨거웠다.

전체 유권자 346명중 303명이 투표했다. 87%가 넘는 놀라운 투표율이었다.

토론회 TV중계방송이 영향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장 선거에 TV방송이 가능했을까.

가시리는 첨단 디지털 인프라를 갖춘 ‘디지털 문화 생태 마을’로 불린다.

지난 2015년 제주지역 케이블 방송인 KCTV와 업무협약으로 마을 내에 첨단 디지털 전송망을 구축했다.

가시리 케이블 마을 방송 채널 ‘535’번도 배정 받았다. 가시리 마을이 별도로 운영할 수 있는 자체 마을 방송 채널이다.

여기서는 가시리 현황과 관련된 다양한 동영상을 방송 할 수 있다.

필요할 때에는 리 사무소에서 마을주민을 상대로 생방송도 가능하다.

디지털 방송을 시청하는 모든 주민들에게는 TV시청을 하면서 리사무소에서 전달하는 각종 마을 정보를 실시간 자막으로 서비스 받을 수 있다. 이른바 ‘그룹핑 자막 서비스’ 시행이다.

가시리는 설촌 600년이 훨씬 넘는 마을이다.

그러나 중산간에 위치에 그동안 오지 마을로 불려 지면서 문명의 혜택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마을 이장선거까지 자체적으로 TV중계를 할 정도로 변했다.

최근에는 풍력발전 단지가 조성되면서 제주의 신생에너지 산업의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기도 하다.

마소까지 길을 헤맬 정도였던 오지(奧地)가 사통오달(四通五達)연결되는 도로망이 갖추어 졌다.

이번 전국 최초라고 화제를 모았던 이장선거 토론회 TV생중계와 녹화 중계도 이 같은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를 실감케 하는 실증이라 할 만하다.

첨단 디지털 인프라를 갖춘 ‘디지털문화 생태마을 가시리’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본보기로 우뚝 섰다 하겠다.

이번 이장 후보자 TV토론회는 여태까지의 여타 선거 TV토론과는 달랐다고 했다.

시청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기존의 선거 토론회의 상대 비방이나 비난, 인신공격 같은 험악한 말싸움은 없었다.

다소 밋밋했지만 ‘욕하고 흉보는 토론회’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긍정적이었다.

“맡겨만 주면 몸과 마음을 쏟아 열심히 하겠다”는 머슴이나 심부름꾼이 되겠다는 진부한 표현은 있었지만 속되지 않고 진정성이 묻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에 선출된 현경욱(50)이장 당선인도 그랬다.

‘이장은 마을의 심부름꾼일 뿐, 그 이상도 이하고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우선 마을 노인들의 머슴임을 자임했다.

마을 승합차를 이용해서 노인들의 나들이를 돕는 일부터 시작하겠다고 했다.

버스가 다니지 않은 마을 노인들을 인근 병원이나 버스 정류장, 노인회관 나들이에 도움을 주는 일에서부터 주민들을 만나 원하는 바를 듣고 면사무소나 시청에 전달하고 해결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마을의 대소사나 궂은일 좋은 일 가리지 않는 ‘진정한 가시리의 머슴‘이 그의 각오이자 꿈이다.

튀는 공약보다 소소하고 소박한 꿈이 문명을 쏘아 올리는 가시리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주민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다독일지는 두고 볼 일이다.

전국 최초 이장선거 토론회 TV 중계를 가능케 했던 ‘디지털 문화 생태 마을 가시리’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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