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오(희곡작가)

“어디라고? 잘 모르겠는데. 알아수다. 어떻게든 찾아가쿠다.” 섬을 떠나 산 적 없는 제주토박이에다 제주시에서 40년도 넘게 살았는데 약속장소가 어딘지 도무지 모르겠다. 지도검색을 몇 차례 하고 네비게이터를 작동해야 간신히 찾을 수 있다. 내가 태어나고 여태껏 살아온 고향의 지리를 모른다니. 말 그대로 촌놈인 나에겐 숨 막히고 소름끼치는 일일 수밖에 없다. 어쩌다 시내버스에 몸을 맡기고 창밖을 보고 있노라면 이곳이 내가 사는 제주시가 맞는지 의심이 들곤 한다. 너무 많이 변했다. 수도권의 어느 신도시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기 십상이다. 50만을 간신히 넘겼던 인구가 3~4년 사이에 60만을 우습게 초과하고 연일 신기록행진이다. 어디 인구수만 늘고 있는가. 땅값과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돈을 들여야 내 집 마련의 숙원을 이룰 수 있는지 계산조차 할 수 없는 지경이다. 물신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너무나 삭막한 세상이다.

땅과 집을 금방이라도 돈으로 바꿀 수 있는 물건으로 여기기 전의 세상, 신과 인간이 함께 어울렸던 신인동락(神人同樂)의 옛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어디 제주만 그랬겠는가. 온 세상이 같은 모습이었다. 다시 옛 사람들이 지녔던 영성을 되찾을 순 없을까?

옛사람들에게 집이란 공동체의 작은 단위인 가족의 터전이며 그 자체가 살아있는 유기체였다. 든든한 아들 녀석을 보며 “이놈은 우리 집안의 대들보다.” 살뜰하고 바지런한 부인을 보며 “우리 안방마님”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가족을 집의 부속물을 견주어서 생각했던 것만 보아도 옛사람들은 집을 살아있는 생명으로 여겼던 것이 분명하다. 살아있는 생명으로서의 집, 빙 둘러놓은 울담 안의 모든 곳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많은 신성이 깃들어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대청마루의 ‘성주’, 안방의 ‘조상’과 ‘삼신’, 부엌의 ‘조왕’, 뒤꼍의 ‘터주’와 ‘업’, 우물의 ‘용신’, 대문의 ‘문신’, 뒷간의 ‘측신’ 등이 집안의 지킴이로 터줏대감 노릇을 해왔다면 제주에서는 비슷한 듯 다른 모습과 사연을 담은 지킴이들이 사람들과 공생해왔다. 제주사람들이 믿었던 집안의 지킴이들은 과연 사연을 지니고 있을까?

알다시피 제주의 신성은 본풀이라고 불리는 신화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집안의 지킴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아 여러 가지 본풀이를 자서전처럼 지니고 있다. 그 중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문전본풀이’이다.

남산골이란 곳에 ‘남선비’와 ‘여산부인’ 부부가 아들 일곱 형제와 살고 있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 탓에 고민하던 부부는 무곡장사를 계획한다. 그리하여 남선비는 쌀을 구하러 머나먼 오동나라로 뱃길을 떠난다. 그러나 남선비는 오동나라에서 ‘노일저데귀일의 딸’이라는 악녀의 꼬임에 빠져 돈을 모두 빼앗긴 것은 물론 눈까지 어두워진 채 머슴처럼 살게 된다.

종무소식인 남편 때문에 걱정이 깊어진 여산부인은 홀로 오동나라로 떠나 거지꼴이 된 남편을 찾는다. 두 사람의 상봉을 본 노일저데귀일의 딸은 여산부인에게 아양을 떨며 함께 빨래를 가자고 속여 못에 빠뜨려 죽여 버린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돌아와 본처인 척하며 남선비에게 고향으로 함께 돌아가자고 한다. 장님인 남선비는 속아 넘어갔고 마침내 남산골로 돌아온다.

노일저데귀일의 딸을 어머니로 여겨 환대하는 형님들과 달리 막내아들 ‘녹디성이’는 어머니라고 속이는 정체 모를 여인의 거동을 남몰래 살핀다. 눈치 빠른 노일저데귀일의 딸은 녹디성이의 의심을 이내 알아차리고 일곱 형제를 죽일 계략을 꾸민다. 아들들의 간이 유일한 약이라며 꾀병을 부리는 흉측한 음모였다.

또 다시 노일저데귀일의 딸에게 속은 남선비는 아들들을 죽이려고 했지만 녹디성이가 기지를 발휘해 아버지를 속이고 형제들을 대신한 멧돼지의 간을 구해온다. 녹디성이가 간을 가져오니 사람의 간이라고 여긴 노일저데귀일의 딸은 차마 먹지 못하고 방석 밑에 숨겨 놓고 먹은 척 한다. 그러나 곧바로 발각되자 놀란 노일저데귀일의 딸은 측간으로 도망쳐서 목매달아 죽는다. 아들들을 죽이려고 했다는 죄책감에 빠진 남선비도 도망치다 집어귀의 정주목에 목매달아 죽는다.

녹디성이를 비롯한 일곱 형제는 생불꽃을 구한 뒤 어머니를 되살려내고 행복한 삶을 살다 정명이 다해 저승에 가게 된다. 이들의 사연을 알게 된 염라대왕은 이들로 하여금 집안의 요소요소를 관장하는 지킴이가 되게 했다.

문전철갈이 中 조왕비념을 하는 모습

문전본풀이는 문전신으로 좌정한 녹디성이를 주인공으로 삼는 이야기다. 여기서 문전신이란 다른 지역의 문신(門神)처럼 대문을 지키는 수문장이 아니라 건물 본채의 입구를 가리킨다. 현대식 주택을 예로 든다면 현관문을 지키는 신이라는 뜻이다. 제주에서는 마루대청의 성주신보다 문전신을 가택신 중 으뜸으로 친다. 그 이유는 첫째 노일저데귀일의 딸의 악행을 파헤치고 가족들을 구한 녹디성이의 권능으로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겠다는 믿음 때문이다. 둘째 제주사람들의 이계관(異界觀)을 들 수 있다. 저승을 비롯한 상상 속의 이계가 ‘하늘-땅-땅속’이라는 수직적 구조가 아니라 평지로 이어진 어딘가에 있다는 수평적 구조가 제주사람들의 이계관(異界觀)이다. 예를 들면 다른 지역에서는 제삿날 조상의 영혼이 하늘에서 내려와 지붕을 통해 집 속으로 들어오므로 성주신을 으뜸으로 여긴다. 반면 제주에서는 현실 속의 사람처럼 어딘가에서 걸어들어 오기에 문전신의 허락을 받아야 출입할 수 있다고 여긴다.

문전신이 된 녹디성이의 가족들은 어떤 신이 되어 한울타리 안의 지킴이가 되었을까? 대문이 없는 전통가옥으로 널리 알려진 제주, 도둑, 대문, 거지가 없어 삼무(三無)의 섬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대문의 기능을 대신하는 정주목이라는 시설이 있다. 큰길에서 집 안까지 이어진 올레 어귀에 자리 잡는 정주목을 일러 정낭이라고도 하는데, 녹디성이의 아버지인 남선비가 이곳을 지키는 ‘올레주목지신’이 되었다. 뒤늦게 자신의 죄를 참회하며 목을 맨 곳이 마침 그 자리여서 다른 지역의 문신(門神)과 비슷한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인 여산부인은 집 속으로 들어와 부엌을 지키는 조왕신 ‘조왕할망’이 되어 우리네 어머니들이 하루같이 조왕비념을 올리는 어머니여신이 되었다. 녹디성이의 형제들 중 큰형부터 위로 셋은 ‘상성주, 중성주, 하성주’의 성주신이 되었고, 아래로 세 명의 형들은 동서남북의 방위 하나씩을 지키는 ‘오방토신’이 되었다. 근데 세 명이 동서남북을 지킨다고? 그럼 한 곳이 비지 않는가. 이 때문에 제주에서는 ‘막은방’이라는 속신이 생겨났다. 막은방이란 녹디성이의 형들 중 셋이 어느 해에 ‘동서남’을 지키면 그 이듬해는 ‘서남북’을 지키는 식으로 해마다 방위 하나를 비워두기에 액과 살이 그곳으로 침범하므로 가서는 안 될 막힌 쪽이라는 뜻에서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이다. 막은방은 다른 지역의 ‘삼살방(三煞方)’과도 비슷한 성격을 띤다.

사람의 생간을 노렸던 악녀의 최후는 어떻게 되었을까? 범행이 백일하에 드러나자 측간에서 목을 매고 죽은 노일저데귀일의 딸은 죽은 자리를 지키는 천형을 받아 사람들이 꺼리는 측간신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워낙 악행을 많이 저지른 탓에 이 악녀의 시신은 산산이 찢겨져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화생했다. 본풀이에 따라 다소 차이를 보이지만 머리칼은 바다 속의 해초, 머리통은 돗도고리(돼지 먹이통), 눈은 말방울, 코는 의원들의 침통, 입은 쏠배감펭, 양젖은 놋그릇뚜껑, 배꼽은 고동, 항문은 말미잘, 생식기는 전복, 뼛가루는 모기와 각다귀, 양 허벅지는 디딜팡(측간의 디딤돌) 등 갖가지 모습으로 변했다고 한다. 이 또한 거인 신 장길손이나 반고처럼 죽은 시신이 변신하는 모티프인 ‘사체화생(死體化生)’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제주의 전통적인 가택신들은 ‘문전본풀이’를 통해 자신들의 본초를 알려주고 있는데, 이 신들을 향한 의례는 오늘날에도 다양한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문전철갈이, 문전고사, 올레코시, 벨롱겡이’ 등으로 불리며 보통 정월달 안에 치른다. 특히 앞서 말한 것처럼 문전신을 매우 중요한 신으로 여겨 “문전 모른 공ᄉᆞ(公私) 없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인데, 이는 유교식 기제사와 명절차례에도 적용된다. 다른 지역과 달리 제사에 앞서 문전신을 위하는 ‘문전제’ 또는 ‘문제’라고 부르는 제차가 그것이다. 문전제는 단헌단작의 간단한 방식으로 끝나는데, 제를 마치면 제상을 통째로 들고 부엌으로 올린다. 그러면 주부가 제상의 제물을 일일이 뜯어낸 뒤 밥사발 뚜껑에 담아 부뚜막이나 싱크대 위에 올려놓고 조왕할망 몫으로 대접한다. 집안에 따라서는 문전상에 어류를 진설하지 않는 집안도 있다. 이 또한 문전본풀이에서 비롯된 방식으로 녹디성이가 어머니 여산부인이 못에 빠져 죽어 물고기들이 시신을 뜯어먹고 자랐으므로 그것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 그 이유다. 이처럼 무속신화인 문전본풀이가 유교식 제사까지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을 보면 제주는 굿과 본풀이의 섬임이 분명하다.

제주의 굿에 쓰이는 기메 中 밧칠성기

유교식 제사와 명절에 무속이 개입된 것은 문전제만이 아니다. ‘안칠성’이라고 불리는 또 다른 지킴이에게도 조왕할망에게 대접한 것처럼 고팡(곳간 또는 고방) 안으로 가져간다. 안칠성은 재물과 곡식을 지켜주는 신으로 ‘밧칠성’과 더불어 문전본풀이 속의 가택신들처럼 집집마다 모신다. 안칠성과 밧칠성의 유래는 ‘칠성본풀이’라는 또 다른 신화 속의 주인공이다. ‘장나라 장설룡’의 딸로 태어난 ‘칠성아기씨’가 중의 자식을 임신해 무쉐석함에 담겨 바다에 버려진 것이 제주까지 떠밀려오는 동안 딸 일곱을 낳았는데, 어머니와 딸들 모두 뱀으로 변신해 제주의 칠성신으로 좌정한 사연이 칠성본풀이다. 뱀으로 변신한 칠성신들 중에서 어머니와 딸이 각각 여염집 안으로 들어가 고팡과 뒷우영(뒤꼍의 밭)의 안칠성과 밧칠성으로 자리를 잡아 가택신이 되었다. 안칠성을 ‘고팡할망’, 밧칠성을 ‘뒷할망’이라고도 부른다. 이는 다른 지역에서 ‘업대감(業大監)’ 또는 ‘업성조(業成造)’를 모시는 ‘업단지’, ‘터주가리’와도 매우 비슷하다. 칠성신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를 빌려 뱀으로 변신하는 제주의 여신들과 함께 세밀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제주의 굿에 쓰이는 기메 中 조왕기

제주에는 “통시(뒷간)와 조왕(부엌)은 멀수록 좋다.”는 속담이 전해온다. 당연히 조왕신인 여산부인과 측간신인 노일저데 귀일의 딸이 서로 원수지간인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기능적인 측면에서 보면 청결한 위생관념이 담겨 있는 속담임을 알 수 있다. 뱀의 화신인 칠성신을 고팡에 모신 것도 이와 비슷하게 해석할 수 있다. 쌀이 귀한 고장인 제주에서는 고팡이야말로 먹거리의 보물창고였다. 무척이나 귀한 쌀이며 보리 등속을 제대로 보관하지 않으면 밤낮없이 침입하는 불청객 서생원에게 고스란히 빼앗기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온종일 죽치고 앉아 쥐를 쫓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이 때문에 쥐를 잡아먹는 동물인 뱀을 안고팡에 모셔 곡식을 지키려고 했던 것이다. 이처럼 비슷한 것을 빌려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신화적 사고를 유감주술이라고 한다. 얼핏 보면 삼척동자처럼 유치한 발상이라며 웃어버릴 수도 있지만 그와 같은 사유가 제주의 오늘을 있게 한 원동력 중 하나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미신이라고 호도하지 말라. 그리고 고개를 들어 자신의 집을 쭉 둘러보라. 이 순간에도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지켜주는 지킴이들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꼼꼼히 보살펴주고 있다. 땅과 집은 돈의 가치가 아닌 영성의 가치가 담긴 생명체임을 잊지 마시라.

제주전통가옥의 뒷우영에 설치하는 밧칠성

*참고자료

임승범, 성주신앙의 지역별 양상과 그 의의, 지방사와 지방문화12, 역사문화학회

최종성, 가정신앙에 대한 재고, 종교학연구27,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현용준, 제주도 무속연구, 집문당

제주도 사람들의 삶, 민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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