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오(희곡작가)

“해마다 아리따운 처녀를 제물로 바치지 않으면 재앙을 일으키는 뱀이 이 굴에 살고 있사오니 부디 사또께옵서 그 흉측한 요괴를 퇴치하여 주옵소서.” 많은 사람들이 대히트를 쳤던 공포드라마 전설의 고향에 등장했던 구좌읍 김녕리의 사굴(蛇窟)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최근에는 신진오의 소설 ‘무녀굴’과 그를 토대로 한 영화까지 만들어져서 사굴의 뱀 이야기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예로부터 제주사람들이 뱀을 신처럼 떠받들어왔다는 사연을 외부로 알린 데에는 이 이야기가 가장 큰 공헌을 했을 것이다.

외부로 알려진 것이 김녕 사굴 이야기라면 제주섬 안에서는 “정의(旌義-제주의 동남부지역) 며느리 얻으면 뱀이 따라온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것이 표선면 토산리의 여드렛당 본풀이일 것이다. 이 때문에 토산마을은 뱀의 본향이라는 유명세를 치러왔는데 그 명성은 미신타파운동 따위와 맞물리며 아주 나쁜 편견으로 굳어지고 말았다.

표선면 토산2리 본향 요드렛당

과연 토산마을과 김녕마을에서만 뱀을 신으로 모셨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조선시대 연산군 시절에 제주로 유배당했던 충암 김정이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에서 “뱀을 꺼려 신처럼 떠받들고, 어쩌다 보게 되면 술을 붓고 주문을 외우며 감히 쫓아내거나 죽이지 않는다.”고 언급한 것을 시작으로 김상헌의 남사록(南槎錄), 이건의 제주풍토기(濟州風土記) 등 많은 이의 문헌에 제주의 뱀 신앙은 일반적인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실 김녕 사굴과 얽힌 제주판관 서린의 뱀 퇴치 전설조차도 김녕마을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주시 내도동의 본향당인 두리빌렛당의 본풀이인 것을 보면 제주의 뱀 신앙은 특정지역에서만 전해온 것이 아니라 섬 전역에 분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사회에 이르러 서양종교가 들어오고 미신타파운동 등이 번지며 얄궂게도 토산마을만 이상한 신앙을 갖고 있는 것으로 왜곡되고만 것이다.

뱀을 신성시하는 전통이 제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학교는 소풍이나 운동회 때마다 비가 내리는데 옛날에 학교를 지키던 구렁이를 누군가가 죽여 버린 뒤로 이렇게 되었다.” 따위의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학교괴담도 있지 않은가. 여기서 구렁이는 우리나라 곳곳에서 신성시되는 ‘터줏대감’을 이르는 말이다. ‘업대감’, ‘업왕’ 등으로도 불리는 업구렁이는 ‘업주가리’, ‘터주가리’, ‘업가리’ 등의 주저리를 만들어 장독대나 뒤꼍에 은밀하게 모시는 것이 전국적인 신앙형태다. 제주에서도 밧칠성을 모시는 신전을 ‘칠성눌’ 또는 ‘주젱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다른 지역의 주저리와 매우 비슷하다.

그리스신화 속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와 뱀지팡이-출처 letscc.net

고대 그리스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둘레를 ‘우로보로스’라고 불리는 거대한 뱀이 자신이 꼬리를 문 채 동그랗게 똬리를 튼 모습이라고 여겼는가 하면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를 상징하는 뱀 지팡이를 상상하기까지 했다. 이 지팡이는 현재 세계보건기구의 로고로 쓰이고 있다. 누구나 얼굴을 쳐다보는 순간 돌로 변한다는 뱀의 머리칼을 가진 메두사도 본래 순환과 지혜의 여신으로 많은 이들이 섬기는 신이었다.

그리스만 뱀을 신성시했던 것이 아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명이라 일컫는 수메르의 신화에도 엔키라는 뱀의 모습을 한 신이 등장한다. 기독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에서는 뱀을 사탄이라고 여기는 것으로 아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 구약성서 중 모세가 홍해의 기적을 일으키며 이집트를 탈출한 것으로 유명한 출애굽기에는 하느님의 상징으로 ‘구리 뱀’이 등장한다. 천주교의 한 갈래인 동방정교회의 사제들은 아직까지도 뱀의 모습을 한 지팡이를 의식에 사용한다. 그것은 마치 그리스의 아스클레피오스와 헤르메스의 지팡이와도 비슷한 발상이다. 동아시아의 고대 신들 중 하나인 복희와 여와 남매 또한 하반신이 뱀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 밖에도 남미대륙의 마야, 잉카의 신화를 비롯해 인도의 힌두신화에서도 뱀은 창조신의 하나로 나타난다.

어떤 이유로 세상 모든 곳에서 뱀을 신성시하게 되었을까? 원시의 주술과 신화 속에는 수많은 동물이 등장하는데 저마다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단군을 낳아 우리나라를 세우게 했다는 웅녀의 본 모습인 곰의 경우는 겨울잠을 자는 것을 두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재생의 권능이 있다고 여겨 시베리아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신으로 섬겨왔다. 까마귀며 독수리 등의 조류는 사람이 갈 수 없는 곳까지 자유로이 날아다닌다고 여겨 저승과 이승을 잇는 권능의 존재로 신봉되었다.

그리스신화 속의 우로보로스-출처 letscc.net

신성시되는 동물은 나라와 민족에 따라 매우 다양하며 저마다 상징적인 의미를 품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뱀은 주로 농경과 관련된 권능을 지닌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용이다. 농경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비의 신인 용은 뱀의 신성이 극대화된 것으로 이 둘을 묶어 ‘용사신앙(龍蛇信仰)’이라고 한다. 특히 인도에서 한국까지 이어지는 벼농사문화권에서는 용을 신성시하여 계절제를 지낼 때 그 형상을 만들어 여러 가지 카니발을 펼치는데 그 중 하나가 아시아 전역의 줄다리기다. 외줄 또는 암수의 두 줄로 벌이는 줄다리기는 기다란 용의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를 조절해 농사의 풍요를 불러오는 존재이기 때문에 재물과 복록의 신으로까지 변화한 뱀은 제주에서는 ‘부군칠성’ 또는 ‘칠성신’이라고 하여 섬 전역에서 섬겼던 것은 물론 민간뿐만 아니라 관청에서까지 모셨던 흔적이 남아있다. 오늘날 제주시 원도심의 중심가인 칠성통조차도 칠성신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될 정도인데 제주목관아를 중심으로 탐라국 시절부터 제주의 중심지 역할을 해온 이 마을을 배경으로 삼는 신화가 바로 ‘칠성본풀이’이다.

칠성본풀이에 따르는 장나라 장설룡과 송나라 장설룡의 부부가 불공을 드려 어렵사리 얻은 딸 ‘칠성아기씨’인데 근본도 모르는 중의 아이를 임신하자 부모는 무쉐석함에 가둔 채 바다에 띄워버린다. 무쉐석함이 바다를 떠도는 동안 칠성아기씨는 일곱이나 되는 딸을 낳아 조천읍 함덕리 바닷가로 떠밀려온다. 때마침 물질채비를 하던 함덕마을의 ᄌᆞᆷ수들이 무쉐석함을 발견해 열어보니 칠성아기씨부터 일곱 딸까지 모두가 뱀으로 변신해 똬리를 틀고 있었다. ᄌᆞᆷ수들이 더럽다고 하며 다시 바다에 띄워버리자 무쉐석함은 제주해안 에둘러 돌며 온 마을을 거치지만 마을마다 이미 당신(堂神)이 좌정하고 있어서 다시 함덕마을로 들어와 ᄌᆞᆷ수들에게 흉험을 끼친다.

그제야 ᄌᆞᆷ수들을 비롯한 마을사람들이 영험하다고 여겨 신으로 모시기 시작했다. 그러나 함덕마을의 본향당신인 ‘급서황하늘’이 마을에서 떠나라고 으름장을 놓자 어미와 딸들은 길을 떠나 제주시 건입동 산지천에 다다라 물가에서 여독을 달랜다. 이때 냇가에 빨래를 왔던 송대장 집안의 가솔이 ‘나에게 태운 조상이면 이리로 드소서.’ 하고는 빨래바구니에 담아 집으로 옮겨가서 모신다. 이리하여 송대장 집안은 삽시간에 큰 부자가 되었다.

송씨 집안에 좌정해 극진한 섬김을 받으며 지내던 칠성아기씨와 딸들은 햇볕이 좋은 어느 날 잠시 바깥바람을 쐬러 나왔다가 제주목 관리의 행차와 마주친다. 이에 관원들이 더러운 뱀이라며 침을 뱉어가며 쫓아내려고 하자 이들에게 흉험을 끼쳐 갖가지 병에 걸리게 만든다. 끙끙 앓던 관원들은 끝내 병을 이기지 못하고 무당을 찾는다. 무당은 칠성신을 홀대한 죄라며 ‘칠성새남굿’을 치러야한다고 일러준다. 결국 관리들은 커다란 굿을 펼친 뒤에야 병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런 일이 있고난 뒤에 칠성아기씨의 딸들은 제주목관아의 중요한 청사마다 터지기가 되어 좌정한다. 첫째는 추수못에 추수지기, 둘째는 이방 형방의 형방지기, 셋째는 감옥을 차지한 옥지기, 넷째는 동과원과 서과원의 과원지기, 다섯째는 동창고 서창고의 창궤지기, 여섯째는 광청못의 광청지기가 되었다. 칠성아기씨와 막내딸은 각각 여염집의 고팡(고방)을 지키는 안칠성과 뒤란을 지키는 밧칠성으로 좌정했다. 이런 연유로 제주의 관청과 여염집까지 두루 좌정한 칠성신을 하늘의 칠성신과 구분하기 위해 ‘부군칠성’이라 불렀으며 북두칠성은 ‘칠원성군’이라 부르기에 이르렀다.

뱀을 신성하게 여겨 신으로 모시는 사례는 비단 칠성본풀이의 ‘부군칠성’만이 아니다. 앞서 잠깐 말한 것처럼 표선면 토산리 여드렛당의 ‘여드렛또’와 제주시 내도동 두리빌렛당의 ‘두리빌레용해부인’을 비롯해 여러 마을의 당신(堂神) 중에도 애초부터 뱀의 형상이거나 여인에서 뱀으로 변신한 신들이 여럿이다. 한경면 고산리 본향당인 ‘당목잇당’의 ‘법서용궁또’, 구좌읍 월정리 본향당의 ‘황토고을 황정승 따님애기’, 조천읍 조천리 ‘새콧당’의 ‘새콧할망’ 등이 그것이다.

조천읍 조천리 새콧할망당

단골(신앙민)이 신앙을 버리면 신 또한 더 이상 그 권능을 이어가지 못하고 사라지게 되는데 이런 경우는 태반은 당이 소멸되는 폐당을 겪게 된다. 위에 소개한 뱀의 화신을 섬기는 마을당들도 대부분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 가운데 조천마을의 새콧당은 가장 을씨년스러운 지경에 처해 찾는 이들로 하여금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게 만든다. 조천마을 포구 근처의 해녀탈의장 옆 길가에 자리한 이 당은 폭이 채 2미터가 되지 않는 야트막한 담장 한 줄만 남아있다. 그조차도 자동차가 오가는 골목 가운데 자리해 있어서 어지간한 사람이 아니면 이곳이 당인지 알 수 없는 지경이다. 바로 뒤에 주택들이 있어서 이곳이 당인 줄 모르는 사람들은 쓰레기봉투를 투기하는 일도 허다하다. 바다 일을 하는 ᄌᆞᆷ수나 어부들만이 이곳이 당인 줄 아는 정도로 추레한 모습이다. 그래도 ᄌᆞᆷ수들은 잊지 않고 꼬박꼬박 드나들며 정성도 드리고 청소도 하고 있으니 천만다행이다.

제주시 내도동 본향 두리빌렛당

사실 내도마을 두리빌렛당도 비슷한 처지이다. 당의 외관은 훼손되지 않았지만 마을사람이 아니면 누구도 당이라고 여기지 않고 뛰노는 놀이터신세가 되어버렸다. 특이하게도 내도마을의 두리빌레용해부인은 여름 한철을 이 당에서 지내고 추운 겨울에는 자리를 옮겨서 웃당에서 지낸다고 알려져 있는데 알당에 해당되는 두리빌렛당은 누구도 찾지 않는 곳이 되었다. 둥글고 널찍한 너럭바위 말고는 당이라고 보기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어 내도마을의 명소 ‘알작지’ 몽돌해안을 찾는 피서객들이 여름이면 이곳을 평상 삼아 술판을 벌이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당이 남아있어도 있는 것이 아닌 셈이다. 사는 형편이 예전보다 나아져서 더 이상 풍요를 점지하는 뱀의 화신이 필요치 않은 것일까? 혹시 질병에 걸리더라도 병원과 약국을 찾으면 해결되는 세상이 되어서 그런 것일까? 그도 아니면 미신이라고 여겨 더 이상 신성시하지 않게 되어서일까?

세상 모든 것은 사라질 수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 영원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과거와 달라진 세상은 더 이상 제주의 신들을 이 섬땅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1만8천신들의 고향이라고 떠들어대지만 그것을 신앙의 대상으로, 거룩한 종교로 받아들이는 이는 많지 않다. 강정마을에서는 해군기지 펜스공사를 하면서 ‘새별당’을 훼손했고, 제주시 오등동 죽성마을의 ‘설새밋당’은 최근 누군가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모두가 목도할 뿐이다. 단골이 버렸기에 신앙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와중에도 점집과 철학관은 우후죽순처럼 늘어가고 있다. 역설적이고 부조리한 세상이다. 어디 징그러운 뱀 따위를 섬기겠는가. 어쩌면 우리의 마음속에는 더욱 징그러운 무언가가 똬리를 틀고 앉았을지 모른다.

*참고자료

김헌선, <칠성본풀이>의 본풀이적 의의와 신화적 의미 연구, 고전문학연구28, 한국고전문학회

진성기, 제주도무가본풀이사전, 민속원

탁명환, 濟州 蛇神信仰에 對한 小考, 한국문화인류학10, 한국문화인류학회

현용준, 제주도무속자료사전 개정판,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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