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를 순례하는 목적은 

과거의 허물어진 탑이나 건물을 보기보다는

그 흔적 속에 담겨져 있는 살아있는 부처님의 고뇌와 체취를 느껴보고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행적과 가르침을 스스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성지순례의 순수한 목적이 이루어진다.

철저하게 자기를 낮추고 간절히 원을 세우며

그것을 실천하는 기도와 정진만이 환희심을 느낄수 있는 진한 감동이 전해진다.

 

인도의 북부에는 불교 8대 성지가 있다.

부처님이 태어나서 수행하고, 깨닫고, 법을 설하고, 열반에 들 때까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장소로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

많은 불교 신자들이 순례길에 나선다.

불교의 4대 성지는 부처님의 일생과 직접 관계가 있는 곳으로

1)룸비니(탄생지)

2)보드가야(성불지, 깨달음의 보리수)

3)사르나트(녹야원, 초전법륜지)

4)쿠시나가라(열반지)이다.

불교의 8대 성지는 부처님의 활동과 기적이 일어났던 곳으로

1)라즈기르(불교 최초의 사원, 죽림정사)

2)바이샬리(진신사리탑과 아쇼카석주, 비구니의 첫 출가지)

3)쉬라바스티(금강경을 설한 곳, 기원정사)

4)상카시아(부처님이 천상에서 하강했다는 설화의 땅)이다.

부처님을 상징하는 3가지 나무는

부처님을 낳을때 마야 부인이 가지를 붙잡고 고통을 이겨냈다는 무우수나무

부처님이 깨달았을 때 앉아 있던 선신이 깃든다는 핍팔라나무(보리수)

부처님이 열반에 들 때 아래 누웠던 한 쌍의 사라나무이다.

 

우리나라 멀구슬나무와 비슷한 모양을 한 버릴 데가 없는 나무 님나무는

칫솔 대신 나뭇가지로 이를 닦는 치약같은 역할을 하고

우리나라 대나무와는 달리 가시같은 것이 돋혀 한 덩어리를 이룬 대나무는

그늘을 만들어주어 수행자들이 머물며 공부할 수 있도록 해 주었고

하늘을 찌를 듯 싱그런 잎과 그늘이 좋아 아쇼카 왕이 식수로 심었던 아쇼카나무

하지만 유독 눈에 많이 띄는 반얀나무는

나뭇가지에서 뿌리를 내리는 모습이 머리를 풀어 헤친 듯 산만한 모습으로

악신이 깃든 나무라 하여 성스럽게 취급하지는 않고 그늘만 즐겼다.

성지순례를 떠나기 전

기도하는 성지순례길이 될 수 있도록

내 마음 속 잡념들을 떨쳐버리고, 내 일상의 생활을 단절하고

오직 한량없이 고마우신 분, 그 분의 숨결과 발걸음,

부드럽고 온화함으로 천지를 감동시킨 순간순간을 느껴보려 간절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성지순례길를 따라가본다.

땅을 적신 촉촉한 비~

생각의 땅 '부처님의 나라 인도'에 오느라 고생했다는 축복의 비가 내린다.

성지로 가는 길은 밀림의 한 부분에 서 있는 듯

차창 밖으로 보이는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초록물결

끝이 보이지 않는 울창한 거목들이 만들어낸 먼지를 뒤집어 쓴 가로수길

사람과 소들이 어울려 사는 어둡고 허스름하지만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해맑은 사람들

길 위에서 벌어지는 사방이 확트인 자연화장실

울퉁불퉁 먼지를 뒤집어 쓴  흙길에서 갑작스런 급정거

귀를 멍멍하게 하는 쉬지 않고 울려대는 경적소리로

인도의 첫날이 시작된다.

 

*사르나트(녹야원)는

불교 유적으로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뒤

처음으로 이 곳에서 다섯 비구들을 상대로 설법한 곳이다.

녹원 즉 사슴동산은 성자가 머무는 곳이라는 뜻으로

부처님이 스스로 증득한 위 없는 깨달음의 내용을 처음으로 세상에 펼친 곳이다.

사르나트는 법의 바퀴를 처음으로 굴린 초전법륜지로서

불교의 4대 성지 중의 하나이다.

사르나트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부처님과 최초의 다섯 제자들이 처음 만난 장소이기도 하다.

진리를 보는 탑이란 뜻의 높이 33m의 '다메크 스투파'는 아쇼카 왕이 세웠다.

부처님께서 두 번째 설법을 하신 장소에 세워진 탑으로 다섯 아라한이 탄생한 곳이다.

성지순례길에서 처음 '녹야원 법회'를 가졌다.

삼귀의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 시....

뺨을 타고 뜨거운 무언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떨리는 목소리는 울먹이기 시작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보지만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는다.

부처님을 온전하게 느끼며 가슴 떨리는 환희심은 격한 감동으로 주체할 수가 없다.

법회를 끝내고 탑돌이 의식을 하는 동안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스님 뒤로 합장한 채 탑을 도는

도반들의 모습이 반짝이는 듯 아름답다.

거대했던 탑은 무너지고 탑 터만 남아있다.

아쇼카 석주의 기단 부분만 남아 있고, 상단 부분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아쇼카 왕은 부처님의 흔적이 있었던 곳에

석주를 세워 부처님을 기렸다고 한다.

*보드가야는 최대의 관광지이면서 

불교4대성지 중 가장 성스러운 장소로 불교의 최대 성지(성불지)이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룬 곳에는 마하보디 사원이 세워져 있다.

부처님의 성도지 마하보디 대탑은

철저한 관리와 보안으로 사원을 출입할 때는 맨발이거나 덧버선을 신고 들어가야 한다.

카메라는 사전 허락으로 가져갈 수 있지만 휴대폰 사용은 불가하다.

이른 아침인데도 사원으로 들어갈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으로

여자와 남자 줄이 따로 보인다.

그 당시 밀림이었던 이 곳에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는 하루종일 산소를 내뿜는다.

에너지가 충만한 보리수는 새들도 조용히 하고 새똥도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깨달음의 나무 보리수다.

마하보디 대탑은 아쇼카 왕이

인도 대제국이 통일이 된 것은 부처님의 근본힘이라고 믿고

부처님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금강보좌 위에 증축하여 세운

높이 55m의 9층탑이다.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탑의 훼손을 막기 위해

부처님 제자들이 맨 아랫단을 흙으로 덮어 원형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마하보디 대탑(대보리사), 금강보좌. 아쇼카석주, 7/7선정터,

부처님이 그 아래 앉아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 등이 있다.

 

비좁은 공간이라도 틈이 보이면

명상과 수행을 하는 사람들, 맨 바닥에 오체투지하는 승려와 불자, 서양인 등

항상 수많은 순례자들로 붐비는 곳이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 아래서

우리들만의 의미있는 법회를 가졌다.

스님의 목탁소리에 기도와 발원, 맨바닥에 108배를 하는 동안

온 몸으로 느끼는 오묘함과 뭉클함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하염없이 뜨거운 눈물이 되어 흘러내린다.

 

*나란다는 부처님의 제자 사리불 존자의 고향으로

회교도들의 침략으로 훼손되었기는 하나

지금도 웅장한 규모와 고대인도의 불교 대학터가 남아 있다.

지금은 폐허가 되었지만 그 웅장한 위용을 간직하고 있어 그 당시

불교의 융성이 짐작되고도 남는다.

사리불 존자의 사리가 모셔졌다는 사리자 스투파가 대학터에 우뚝 솟아있다.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종합대학으로

현장, 혜초, 의정 등 고승들이 수학하셨던 곳이다.

*영축산(영취산)은

법화경의 설법자이자 염화시중의 장소로

능선에서 바라보는 봉우리가 독수리 모양을 하고 있어 붙어진 이름이다.

영축산을 내려와 '빔비사라 왕 감옥터'를 둘러보았는데

정방형의 터만을 알아볼 수 있게 얕게 돌을 쌓았다.

빔비사라 왕은 영축산이 훤히 보이는 감옥에 갇혀

부처님을 그리며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석가모니불'을 중얼거리며 구걸하는 아이들,

끝까지 따라오며 악착같이 10루피를 주라고 갖은 애교까지...

금새 어두워지는데 집까지 어떻게 갈지 걱정하는 나에게 이 아이들이 사는 곳이

바로 이 곳이라고 현지가이드가 알려준다.

 

*불교 최초의 가람인 죽림정사는

빔비사라왕이 부처님께 귀의한 후 기증한 불교사원으로

부처님과 제자들이 우기에 이 곳에 머물면서 사람들을 모아 가르쳤다.

대나무가 울창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동이 트기 전에 들렸던 죽림정사는

불빛 속에 어렴풋이 보이는 모든 것들이 신비스러워 보인다.

삼배를 하고 나오는 길에 희미하게 보이는 대나무와 연못, 잘 정리된 오솔길은

아쉬운 마음에 자꾸 뒤돌아 보게 한다.

*바이샬리는 갠지스강을 건너 바이사라 왕이 건설한 도시다.

부처님께서 29세 나이에 출가하여 처음 수행자의 길에 오를 때

이 곳 바이샬리의 아라라가라마 선인에게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는 무소유처의 선정 가르침을 받았고

쿠시나가라에서 최후의 열반 길에 오르시기 전까지

부처님과 관련된 일화가 많은 곳이며 중요한 불교 유적지이다.

아쇼카 왕이 세웠다는 높이 7m의 석주(돌기둥) 중 하나가 아직도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최초의 비구니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부처님 진신사리탑터로 부처님 입멸 후

릿챠비족이 8등분 된 부처님 사리를 가져와 세운 탑이다.

남아있는 아쇼카 석주 중 보존상태가 양호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큰 탑은 부처님에게 원숭이가 꿀 공양한 것을 기념하여 아쇼카 왕이 세웠고

연못은 원숭이들이 파 놓은 부처님의 목욕터다.

 

*쿠시나가르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든 땅이다.

매년 많은 불교 순례자들이 전 세계 각처에서 모여들고 있는 곳으로

경내의 열반당은 1876년에 발굴되어 복구되었고

1956년에 부처님이 돌아가신 지 2500년을 기념하여 새로이 단장하였다.

근방에는 망고와 사라(紗羅)나무를 볼 수가 있다.

29세에 출가하여 보리수 아래에서 35세에 깨달음을 얻고,

녹야원(사르나트)에서 처음으로 진리를 설파한 이래 석가모니는 45년 동안을 한시도 쉬지 않고

한 벌의 누더기옷과 발우 하나로 오직 중생제도를 위한 삶을 살았다.

평생 길에서 사신 부처님은 쿠시나가라 사라나무 숲에서 열반에 들었다.

 

인연일까?

우리가 묵는 숙소 앞에 '대한사'라는 한국절이 있다.

제주에서 오신 '성관스님'은 머나먼 부처님의 나라에서 우리를 따뜻하게 반겨주신다.

대한사에서 저녁 예불을 마치고 스님께서 따뜻한 차와

마당에 심은 무우로 직접 김치를 담으셨다며 한 봉지 가득 담아주신다.

열반지까지 함께 하시며 좋은 말씀을 전해주신

성관스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원래는 말라족 역대 족장들의 대관식을 하던 성스러운 자리로

부처님의 다비가 이루어진 곳이다.

라마바르 탑 앞으로 히라냐바티 강이 흐른다.

 

[열반당 와불상에 입히는 가사 이운식]

열반당 참배에 앞서 열반당 와불상에 입힐 가사를 미리 준비했다.

입구에서 열반당까지 두줄로 가사를 펼쳐 모시고

노란 금색의 가사가 땅에 닿지 않도록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스님 목탁에 석가모니 정근을 하면서

열반당으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 천천히 이운했다.

열반당까지 가는 내내 모두가 지극한 마음이었을까?

가사를 드는 순간부터 떨리는 마음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부터 하염없는 눈물과 걷잡을 수 없는 뭉클함은

부처님 사리탑을 도는 동안에도 계속 되었다.

열반당 와불상에 가사를 입히고

부처님 발 아래에서 정근을 하고 예불을 드리는

도반들의 음성은 법당 안을 가득 메운다.

머리는 북쪽으로 얼굴은 서쪽으로 향한 채 누워 계신다.

한량없이 고마우신 분,

그 분의 숨결과 발자취를 따라 이 곳까지 인도해주신

부처님의 부드럽고 온화한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진한 감동이 전해진다.

부처님, 고맙습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들 때

그 아래 누웠던 한 쌍의 사라나무이다.

 

룸비니 동산으로 가기 위해 네팔 국경을 통과하는데

무려 6~7시간 이상이 걸린다.

룸비니로 가기 전 카펠라 성터에 잠깐 들렸다.

카펠라 성은 싯타르타 태자가 29년 머물던 곳으로 평화롭고 포근해 보인다.

허물어진 벽돌 이외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밀림 깊숙한 곳에 서 있는 듯 거목이 된 나무들이 우거지고

나무 아래에는 보라와 하얀빛의 아게라텀이 반겨준다.

*룸비니는 부처가 기원전 623년에 태어난 곳으로

세계의 3대 종교 중 하나인 불교의 가장 성스러운 장소이다.

기독교도에게 예루살렘이,

이슬람교도에게 메카가 그렇듯

룸비니는 전 세계 불교도에게 경건한 성지이다.

부처 시대에 아름다운 동산으로 묘사된 이 유적은

지금도 여전히 전설적인 매력과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불교 신자라면 반드시 방문하여 무상(無常)의 참뜻을 깨닫게 하는 곳이다.

덧버선으로 갈아 신고 간단한 가방검사를 한다.

인도의 사원은 무료로 출입하지만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모자와 신발을 벗고 맨발이거나 덧버선을 신고 들어가야 한다.

사진촬영이 불가능하는 곳이 있기 때문에 확인이 필요하다.

정문을 들어서자 초록의 아름다운 잔디 위로 무우수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마야 부인이 무우수 나뭇가지를 잡고

아기는 오른쪽 옆구리로 탄생해 연꽃대 위에 서서

한 손은 하늘을, 다른 한 손은 땅을 가리키고 있는 탄생 장면의 부조가 보인다.

마야 부인은 부처님이 태어나자 7일만에 돌아가셨다.

아쇼카 왕은 부처님 성지마다

부처님이 이 곳에서 무엇을 했는지 기록하여 석주를 세웠다.

부처님이 탄생하자 9마리 용이 물을 뿜어 목욕시켰다고 한다.

지는해가 아름다운 룸비니동산~

보리수 아래에서 명상의 시간을 가져본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의 여정, 가족을 위한 발원 그리고 나를 위한 기도까지...

눈을 떴을 때 보였던 둥그런 보름달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쉬라바스티는 북인도의 교통로가 모이는 장소로

상업상으로 중요한 곳이었고,

성 밖에는 석가가 많이 지냈다는 기원정사가 있다.

이 곳은 부처님께서 제자 스부티(수보리)에게

최고의 대승경전 '금강경'을 설하신 것과 여러 기적을 행하신 곳으로 유명하다.

망고나무에 천불화현의 기적을 보인 곳으로

탑은 허물어져 동산이 되어버렸고 망고나무는 볼 수가 없었지만

아직은 설익은 열매를 달고 있는 나무 한 그루와 원숭이가

가장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모든 것이 내 발 아래에 있는 듯 사방이 확트여 시원스레 조망된다.

 

설화의 땅 '상카시아'

마야 부인은 싯타르타를 낳고 7일 만에 숨졌다.

그런 어머니를 위해 싯타르타는 천상에 올라가 설법을 하고

다시 땅으로 내려온 곳이 상카시아로 설화의 땅이다.

아쉽게도 상카시아는 둘러보지 못했다.

불교 2대 정사 중의 하나이며

부처님께서 24안거를 지내신 금강경 설법지이다.

인도의 승가에선 우기 때 3개월 동안 우안거를 하는 전통이 있었다.

부처님이 머물렀던 방의 터와 수행했던 경행처가 남아있는데

부처님이 머물렀던 방을 '여래향실'이라 불렀다고 한다.

우리 도반들도 강렬한 햇빛 아래서 부처님이 머물렀던 이 곳에서 금강경을 읊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아름다운 모습과 진한 감동을 안고 간다.

금강경을 설한 자리에는 꽃 향기가 가득하다.

 

생각의 땅 인도에서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삶의 해답을 구하고자 떠나보는 성지순례길~

아직은 멀고도 먼 땅이기에

진정한 해답은 구하지 못하고 오늘도 헛되이 지나가 버린다.

광고 속 이야기

책에도 블로그에도 없는 진짜 인도를 만나러

인도 속으로 들어가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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