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이 같은 남인 계열에 속하는 영남 선비인 공택 이인행(李仁行)에게 보낸 친필 편지 글에 이런 것이 있다.

“편당(偏黨)이 나뉘면 반드시 기이한 재앙이 있게 마련이다... 동인과 서인이 나뉘자 기축년 옥사가 일어났고 남인과 북인이 갈리매 마침내 큰 살육의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 만약 덕 높은 이가 금기 시켜 제멋대로 난동을 부리지 못하게 했다면 그 흐름이 어찌 마침내 여기까지 이르렀겠는가? 번번이 나는 옳고 저쪽은 그르다면서 늘 자기는 펴고 남을 꺾으려 든다면 되겠는가? 내가 비록 백 번 옳고 저가 비록 백 번 그르다 해도 서로 끊임없이 공격한다면 벌써 더러운 것과 결백한 것이 같아지고 만다.”

정약용은 편당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패거리 짓기와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무조건 배격하는 어리석음을 지적한다. "덕 높은 이"의 모범적 지도력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 조선의 정파들이 참된 정치인 정약용을 17년간이나 유배지에 묶어두지 않았다면 역사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퍼뜩 안희정 대선주자의 대연정 제안에 대한 원희룡 제주지사의 지지 발표가 떠올랐다. 오! 덕치와 화합의 큰 본보기를 윗물에서부터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그들의 정파를 볼 때 그렇고, 그 둘이 주장하는 바 대연정의 정신을 볼 때 그렇다. 안희정 대선주자와 원희룡 제주지사는 서로 정당과 정파가 다르다. 소위 진보와 보수, 좌와 우에 각각 서 있다. 원희룡 지사가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지 않았다면 서로 다른 진영에서 대권 경쟁자가 되었을 그들이다. 그런데 안희정 대권주자가 정치의 미래에 대해 대연정을 제시했을 때 원희룡 지사가 서슴없이 지지 발표를 한 것이다. 거기에는 아무런 이기적 정치 계산이 느껴지지 않는다. 원희룡 지사는 정당과 정파를 넘어 협력의 큰 길을 만들어가고자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파적 계산 없는 공감소통의 한 모습이 국민의 한 사람인 나에게 위안처럼 다가온다. 정치집단 내에서 다른 정파에 대한 찬성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행태가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집단극단화가 일어나기 전에 처방된 좋은 치료약과도 같다. 집단극단화가 일어나면 소통은 더더욱 멀어지는 법이다.

대연정을 하고자 할 때 권력을 분점해야 하므로 권력을 잡은 정파 조직 내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왜 주장하느냐 하면 금융, 환경, 기후, 테러 위기 등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을 국내의 정파 차원의 힘으로는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국내의 정치 양상이 양극단으로 치닫는 경향을 극복해야만 하는 필요성이다.

현실 정치에서도 50% 이상을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당은 없다. 이른바 식물 국회의 현실도 극복해야만 한다. 의사 결정이 되지 않는 국회의 무력은 국력을 갉아먹고 있다. 극복 방법은 권력을 양보하더라도 의사 결정이 되게 하는 지혜다.

대연정이라는 정치 시스템을 설치하는 것은 소통의 양적 차원을 볼 때는 교통에 비유할 때 이런 것 아닐까? 실가지 같은 소로들을 소시민들이 발이 닳도록 분주히 다니는 교통량과 고속도로 하나 잘 뚫어 놓는 것에 견주어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대연정은 정파를 넘는 협치와 권력 나눔의 구조이니 자연히 소통의 양과 질이 차원을 달리할 것이다. 대연정은 큰 물길을 여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정파를 넘어 옳은 제안에 정직한 인정을 하는 것부터, 한 걸음씩 화합의 모범을 보이는 일인 것이 틀림없다.

갈등이 발전에 동력을 제공하는 점이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갈등관리의 지혜가 있을 때 그렇다. 부부도 갈등을 방치해 두면 파국을 맞고 나라도 양극화를 방치하면 민심이 갈갈이 찢긴다. 어른부터 대화를 잘 하면 아이들도 화평하고 윗물이 어떠하면 아랫물도 그렇다. 큰 도로를 뚫어 놓으면 소로도 한가해진다.

원희룡 지사가 제주도정을 시작하면서부터 협치실을 만들어 노력을 기울인 것이 정파를 초월한 대연정 지지와 겹쳐지며 원희룡의 과거지사가 떠오른다. 대입 시험에 전국 수석을 하며 천재성을 드러내고 제주도의 자랑이 되었던 그가 학생운동에 투신하며 입신양명의 길을 선뜻 버려 어느 누구의 눈치도 안 보던 그다. 그런가하면 민주화를 위한 옥고를 치른 후에는 보편적 진리와 건강한 보수의 가치를 선택함으로써 운동권 진영의 눈총을 따갑게 받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직 냉철한 지성과 정직한 판단이 지시하는 대로 소신을 굽히지 않는 것이 그의 행보였던 것을 볼 때에 원대한 꿈으로 대연정이 그에게 다가오고 치열하게 협치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진보와 보수의 소통과 협치(協治)로 국민이 안심하는 나라를 소망한다. 정파를 넘는 덕치(德治)의 정치인들이 정직으로 섬기는 평안한 나라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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