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얘기가 진짜잖아?”

“저게 바로 정치검찰의 현실이구나…….”

“도대체 사법적 정의는 있는 거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정치검찰이 한통속이구나…….”

<사진=더 킹 공식 홈페이지>

영화 「더 킹」을 본 관객들이 영화관 밖에서 이구동성으로 ‘정치검찰’의 세계에 대해 내뱉는 말들은 한국사회에서 개혁의 대상 중 검찰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입증한다. 굳이 「더 킹」을 자세히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한국사회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바탕으로 사법적 정의를 추구해야 할 검찰이 특정한 정치권력의 헤게모니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채 자신의 기득권을 굳건히 다지기 위한 추태를 목격한다. 어디 이뿐인가. 검찰의 신분을 이용하여 경제 이권을 부당한 방법으로 챙기기 위한 온갖 부정 청탁에 연루된 것도 모자라 검찰 스스로 그 과정 속에서 막대한 경제적 이권을 축적하는 치부를 보임으로써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음을 또렷이 보고 있다. 그래서 ‘정의’를 지키기 위해 불공정한 모든 것들과 싸워야 할 검찰이 정경유착을 통해 ‘정의’의 본래 가치는 실종한 채 검찰의 생존과 권력 유지를 위해 ‘정의’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수행하는 것에 대해 민주시민은 분노하고 실망한다.

<사진=더 킹 공식 홈페이지>

이러한 양가적 감정은 「더 킹」에서 부장검사 한강식(정우성 역)의 짤막한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논평 속에 집약돼 있다. 펜트하우스에서 그들만의 질펀한 파티를 갖는 도중 한강식은 햇병아리 검사 박태수(조인성 역)를 향해 한국사의 흐름 속에서 정의가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통용돼 왔는지를 조롱한다. 한강식은 마치 이 모든 것을 펜트하우스에서 굽어보고 있는 듯 조롱조로 “대한민국 역사에서 배우라!”고 하면서, 정의를 찾던 독립군은 연금 60만원을 받고 살고 있는데 반해 친일파는 식민권력에 협력한 역사의 죄에 대한 청산은커녕 후대에 이르면서까지 한국사회의 정재계 기득권을 갖고 떵떵거리면서 살고 있으니 정의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고 강조한다. 비록 영화 속 대사이지만, 한강식의 이 취중 발언이 스크린 바깥에 있는 관객에게는 대단히 불편했을 터이다. 왜냐하면 한강식의 발언이 거짓이라고 자신 있게 지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서 친일협력에 대한 역사 청산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은 채 미군정에 의해 도리어 친일협력자들이 정재계의 주요 자리에 재등용되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인 만큼 한국사회의 정의는 한강식이 조롱하듯 정부 수립 과정에서부터 온전한 사회적 가치로 정립되지 못했다. 그 대신 정치적·경제적 권력이 ‘정의’의 가치를 조롱하고, 심지어 정치경제적 권력자들의 이해관계에 충실하고 적합한 것을 정의로운 것으로 둔갑시키기를 서슴지 않았다. 한강식은 이러한 ‘정치검찰’의 전형이다.

<사진=더 킹 공식 홈페이지>

「더 킹」은 대중 상업영화로서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한국사회의 이러한 면모를 유쾌히 보여준다. 검찰계에서도 1%에 해당한다는 한강식 부장검사의 전략수사부 1부에 발탁된 박태수는 말 그대로 ‘정치검찰’의 적나라한 실태를 경험한다. 박태수가 놀란 것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사건들의 서류가 빼곡히 서류 보관대에 비치돼 있는 것이다. 박태수의 선배 검사 양동철(배성우 역)은 “사건도 김치처럼 맛있게 묵혔다가 제대로 익었을 때 꺼내 먹어야 되는 거야”는 의미심장한 말을 통해 전략수사부의 실체가 얼마나 정치적 목적에 투철한 것인지를 웅변한다. 물론, 이것은 「더 킹」에서 ‘정치검찰’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위한 허구이다. 하지만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검찰이 자신의 존재를 보증하고 그 권력을 한층 공고히 다지는 데 뒷받침 역할을 해주는 집권 세력과의 이해관계를 위해 여론의 풍향을 조종하는 사건을 실체화한 적이 없었는지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된다. 그만큼 한국사회에서 검찰은 정경유착의 거멀못 역할을 맡아온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깊숙이 연루된 정재계 권력자들의 면모를 살펴볼 때 더욱 그렇다.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 작성 혐의로 구속된 김기춘 전 청와대비서실장과, 국정농단의 현실을 묵인·방조·비호함으로써 직권 남용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우병우 전 청와대민정수석은 모두 검찰 출신으로서 그들이 청와대에 근무하는 동안 제기된 사건들, 가령 정윤회 문건 파동 및 우병우에 대한 감찰 관련하여 실시된 검찰 조사를 적당한 수준에서 종결지었다. 특히 우병우에 대한 검찰 조사에서 우병우가 보인 현직 검사에 대한 모종의 우월감과 검찰 내부의 이해관계와 얽혀 있는 공모감은 ‘정치검찰’의 민낯을 드러내었다.

<사진=더 킹 공식 홈페이지>

「더 킹」에서 이 같은 ‘정치검찰’의 민낯은 대단히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풍자된다. 김영삼 정부가 막을 내리고 새 정부가 탄생할 즈음 정치권력의 향방에 민감한 ‘정치검찰’은 차기 대권과 집권세력을 두고 전전긍긍이다. 기존 여당이 집권을 하느냐, 아니면 야당이 집권을 하느냐에 따라 ‘정치검찰’ 또한 노선을 분명히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 직선제 아래 그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은데, 검찰총장과 한강수를 비롯한 ‘정치검찰’은 엉뚱하게도 점술에 기대 차기 대통령 당선자로 김대중을 선택하고 국민의 정부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새로운 집권 세력에 충성하는 ‘정치검찰’로 거듭난다. 그리고 그 다음 대통령으로 노무현이 당선될 때도 점술에 기대 자신의 왕성한 생존력을 발휘한다. 이와 관련하여, 「더 킹」의 문제의식은 간명하다. 진보 정권이 집권하면 그에 따라 검찰 세계도 진보적으로 개혁하여 정치적 중립성을 지닌 ‘정의’의 가치가 정립될 것으로 생각되기 십상이지만, 검찰 내부의 개혁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잊고 있는가. 참여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3월 노무현 대통령과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검찰의 쇄신과 혁신에 대한 논의에서 현직 검사들이 검찰 내부의 권력 유지에 무게중심이 쏠려 있는 듯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던가. 그 당시 대화에 참가한 검사들의 논리 정연한 말 속에는 검찰의 개혁은 어디까지 검찰 내부의 사안으로서 검찰의 인사권과 조직을 훼손시켜서는 곤란하다는 논조를 유지하지 않았던가. 심지어 집권 초기 대통령의 친형과 연관된 비리 의혹과 대통령의 취임 전 인사청탁 의혹을 들먹이면서 현 집권 세력이 검찰 쇄신이란 명분으로 검찰 내부의 조직을 흔드는 일이 있을 경우 여차하면 최고 권력을 대상으로 수사도 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내비쳤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한국사회에서 검찰은 국가권력을 참칭하면서 생래적으로 자신의 생존과 기득권 유지를 위해 그 어떠한 정치 세력과도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 세력이 진보이든지 보수이든지 중요하지 않다. 검찰의 조직을 안정시키고 검찰의 기득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면, 아이러니컬하게도 정치적 중립성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검찰의 생명은 존속하는 셈이다.

<사진=더 킹 공식 홈페이지>

그래서 「더 킹」은 우리에게 묻는다. 과연, 한국사회의 검찰에게 정치적 중립성은 무엇일까. ‘정치검찰’로서 생명성을 유지해온 검찰이 정치적 중립성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한국사회의 이 모순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모순성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열릴까. 「더 킹」에서 박태수는 한강식에게 배신당한 것을 알고, 한강식을 복수하기 위해 야당 정치인으로서 거듭나는데, 이러한 타락한 검찰의 세계를 응징할 수 있을까.

영화관을 나오면서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박태수는 한강식과 같은 ‘정치검찰’을 응징하기 위해 야당 정치인으로서 정치 일번지 종로에 출사표를 던진다. 결국 이 모험적 영웅이 타락한 권력을 응징하기 위해서는 민주선거의 형식을 통과하여, ‘정치검찰’과 또 다른 의회 권력을 획득해야 한다. 그리고 의회 안팎에서 각종 정치 세력과의 이해관계를 감내해야 한다. 그것은 권력의 쟁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과연, 권력의 바깥은 없는 것일까.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일까. 물론, 현실의 삶이 권력과 완전히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렇다면 어떠한 권력을 어떻게 행사해야 하는지가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더 킹」 속 숱한 대사 중 박태수가 반성적 성찰을 하면서 “내가 그 때 그 놈을 구속했다면 어땠을까? 평범한 99%의 검사처럼 일했다면 어땠을까?”의 행간에 흐르는, 사법적 정의가 지닌 윤리의 가치가 엄중히 다가온다. 그렇다. 권력의 유무가 아니라 권력의 행사를 올바르게 수행하는 일이 중요하다. 왕 자체가 아니라 왕의 윤리가 중요하다. (끝)

□ 약력

문학평론가 고명철.

고명철.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mcriti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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