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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복이 전하는 하나님의 나라] 계획성이 있는 것은 늘 좋은 것일까?문영복 제주신광교회 전도사
제주투데이 | 승인 2017.03.10 05:45
문영복 제주신광교회 전도사

계획성은 좋은 습관인 것이 분명하다. 자신이 가진 자산(시간, 재능, 재물...)을 짜임새 있게 사용해서 효과적으로 결실을 거둘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병법의 정신도 정확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전략을 가지고 싸울 때 위태롭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의 가르침은 전혀 달라 보인다. 민수기 13~14장은 오히려 정보와 전략에 의지하던 사람들의 패배가 나온다. 왜 그럴까?  

이스라엘의 지난 역사를 간단히 요약하면,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첫 범죄를 저질러 인류가 타락했을 때, 하나님은 뱀(사단)을 밟아 멸할 "여자의 후손"을 보내시기로 약속하셨다. 그 후 사람들은 에덴을 그리워하며 "여자의 후손"을 기다렸다.

지금으로부터 약 4000여년 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선택해서  "땅, 민족, 복(축복권)"을 약속하시며 불러내셨다. 이 세 가지 요소는 국가의 3요소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땅(영토), 민족(국민), 축복권(주권)을 약속하신 것은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를 왕으로 보내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하시겠다는 뜻이다. 그 후 이삭, 야곱, 요셉으로 이어지는 후손들은 그 약속을 믿음으로 계승하며 성취의 날을 기다렸다.

요셉 이후 이집트의 노예로 살던 400년 기간에 인구가 늘어 세 가지 중 하나 "별과 같이 많은 후손"의 언약이 성취되었고, 모세를 지도자로 출애굽한다. 출애굽 직후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선민 계약을 맺고 하나님의 육성으로 말씀하시는 십계명과 율법을 받았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은 성막을 받고 성막에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현상으로 나타난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육안으로 날마다 보았다.

하나님의 선민이 되고 율법과 성막을 받은 것은 아브라함이 받은 "땅, 민족, 복" 가운데 무엇일까? "복(축복권)"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보배 같은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서 특별한 보호와 영광을 약속하신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땅"에 관한 언약이다.

그리고서 인구조사를 한 것은 백성에 대한 언약의 성취 확인도 되고 군인의 수만 센 것으로 볼 때 땅에 대한 언약의 성취를 보기 위해 전쟁을 대비한 것이다. 군인의 수는 60만 3550명, 환산하면 전체 약 200만 명이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인구조사를 마친 후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으로 정탐꾼을 보낸 사실에서 성경을 읽는 우리는 잠시 멈칫해야 한다. 정탐꾼을 보내는 것은 잘한 짓일까?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이미 주셨고 정탐꾼을 보내도록 명령하시지는 않았다. 정탐은 백성들의 간청으로 허락된 것이다.

정탐꾼들은 40일간 정탐을 한 후 돌아와 사실보고와 전략적 평가를 했는데 전략적 평가가 10:2로 판이하게 달랐다. 사실보고는 이구동성으로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 그런데 전략적 평가에서 10명은 "그들은 거인이고 우리는 메뚜기 같아서 들어가면 망한다."라 했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했다.

백성들은 어느 쪽을 믿어야 했을까?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그 땅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떻게 했는가?

(민14:1~5)
1.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2.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3.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4.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이스라엘 백성이 통곡하는 것이 합당한가?

우선 그들은 다수의 거짓에 스스로 속았다. 기억하자. 진리는 다수를 따른다는 법칙이 없다. 다수를 따라 부화뇌동하는 것이 멸망으로 가는 길일 수도 있음을 역사는 수없이 보여준다.

더 들어가 진실을 보면 애초에 정탐 결과를 가지고 인간적 계산을 하려 들지 말았어야 했다. 하나님의 약속 앞에서는 그렇다.  하나님의 약속과 무관한 것이었다면 정탐도 하고 계산도 하고 전략을 갖고 갈 일이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아닌가! 조상적부터 확약하고 또하며 확연하게 주신 것이다. 신앙이란 우직하게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지 합리성으로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하나님의 전능성은 합리성으로 제한될 수 없다.
 
지난 2년 동안 하나님이 어찌하셨는지를 이스라엘은 왜 생각도 안 하는가? 열 재앙의 기적과 유월절의 구원, 홍해의 기적, 만나와 메추라기로 공급하심, 마라의 쓴 물을 단 물로 바꾸심, 시내산의 영광스러운 강림과 육성으로 들은 십계명, 성막에 구름과 불로 임재하시는 모습. 심지어 통곡을 해대는 전 날 저녁에도 그들은 만나를 먹었고 성막에는 바로 그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불기둥으로 임재하고 계셨다.

게다가 그들은 애굽으로 돌아가기 위해 대표를 뽑아서 집단적 대항을 하기로 했다.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상황인가? 또 얼마나 하나님 앞에 두려운 상황인가? 우리가 그 현장에 있다면 어찌해야 할까? 

계획성은 좋은 것이다. 계획성 속에 "약속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고려될 때 그렇다. 하나님의 역사는 아무리 작아 보여도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실 만큼 크다. 그런데 하나님이 약속하신 결과물을 그분의 역사를 배제한 채 인간의 계획 안에 두려고 할 때는 근심을 피할 수 없다. 하나님의 계획을 인간만의 힘으로 이룬단 말인가? 그것은 약속을 믿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역사하실 어떤 약속이 보장되어 있을까?
예수님의 이름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약속(요1:12)
하나님의 자녀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모든 올바른 기도가 응답되는 약속(요14:14)
예수님의 이름으로 회개하면 언제든지 죄를 씻어주시는 약속(요일1:9)
주 예수를 믿으면 우리 집이 구원받는다는 약속(행16:31)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을 받는다는 약속(요7:39)
두세 사람일지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함께 하시는 약속(마태18:20)
복음을 전하고 제자화 하는 자들과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는 약속(마태28:20)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할 때 우리의 생활의 모든 걱정 근심거리를 없애주시고 모든 필요를 다 채우시겠다는 약속(마태6:33)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할 수 있고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는 약속 (요14:12)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최후의 심판으로 구원과 하나님나라를 완성하실 약속(계22:12)
주님께 충성한 자들은 주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다스리는 자가 된다는 약속(눅19:17)
이것은 거의 무제한급의 백지수표와도 같은 보장이다. 믿음의 분량만큼 받게 되어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이제 갈렙과 여호수아의 안목으로 이 병법의 개념을 새롭게 하자. 중요한 것은 "지기(知己)"를 잘 해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잘 알고 붙잡는 것이다. 나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면 필승불패의 전력,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는 것이다. 영적인 눈으로 그것을 보는 자가 승리자다.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붙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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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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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민우 2017-03-10 10:37:34

    계속되는 연재글을 보면서 삶에 대한 자세를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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