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다리에 대한 정이 커져 가면서 새로운 취미와 즐거움이 생겼다. 비가 와서 물이 충분한 때가 되면 시냇가로 가서 징검다리 놓기를 했다."

"친구들과 건널 수 있는 보폭을 생각해서 돌을 옮겼다. 돌이 기반에 단단하게 놓였는지 확인하고 다리를 건넜다. 발을 잘못 디디거나 돌이 땅에 안전하게 놓이지 않으면 여지없이 물에 빠졌다."

"물에 빠지는 장면을 연상하면서 발을 옮기면 스릴이 느껴졌다. 우리는 시냇물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징검다리 숫자를 늘려갔다. 강물을 따라 이어진 징검다리를 보면서 마치 세상을 건설한 듯한 뿌듯함에 빠졌다."

소설 "다리"의 주인공 지훈이가 유년시절 제주도, 거제도, 진도 다음으로 큰섬 남해 고향에서 다리에 대한 정겨움과 모든 것을 이어주는 다리에 대한 동경과 도전에 대한 상징적 일화로서 서술한 부분이다.

다리는 한국어로서 이중적 구조의 의미를 갖고 있어서 그 의미가 더욱 강렬하다.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 및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가 갖고 있는 다리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다리이다.

두개의 의미의 다리에는 공통적인 요소가 있다. 만남이다. 사람과 생물체가  갖고 있는 다리는

스스로 걸어서 만남을 이루고 있지만, 인위적인 다리는 그 만남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만남의 역할을 한다.

"내게는 이상한 취미가 있다. 사람들은 내 취미에 어이없어 하며 별 희한한 녀석 다 보았다는 얼굴을 한다. 세상에 다리를 좋아하는 놈이 있다니. 인터넷에서 "다리"를 치면 별의별 것들이 다 나온다.'

1부 다리에서 "모든 것은 남해에서 시작되었다."의 부제 설명이다. 소년 지훈은 1968년 5월 착공하여 1973년 6월에 완공한 길이 660미터, 너비 12미터, 높이 52미터, 한국 최초의 현수교 남해대교를 넘어서 진주에서 고등학고를 다녔고 대학은 서울로 갔다.

고향 친구 희민을 비롯한 의석, 현석, 성희, 혜진, 경숙 사이에 오가는 우정과 연인으로서의 갈등 속에, 변호사로서 미국과 헝가리 등에 거주하며 젊은 시절을 보낸 지훈의 삶을 조재철 작가는 장편 소설이 아니라 장편 에세이처럼 엮어 냈다.

작가 성석재는 "어제와 오늘을 이으며, 서로 떨어진 것을 결합시키는 다리처럼, 잊어버린 감성과 오랜 가치를 향해 다리를 놓는 이 소설은 읽는 동안 푸근한 마음이 절로 들게 하는 작품이다."

우찬제 문학평론가는 "한 세계에서 또 다른 세계로 건너기 위한 "다리"를 놓는 고즈넉한 이야기. 순수하고 따스한 감성으로 되돌아보면 의외로 우리는 소박하지만 정겨운 징검다리를 건너왔는지도 모른다고, 소박한 작가는 낮은 목소리로 되뇌는 듯하다."고 평했다.

"이 글에는 이루지 못한 내 소망이 담겨 있다. 저 세상에 계신 내 부모님이 국립극장과 국립국악원에서 나와 국악을 같이 듣는 것이다."

"대개 5시간 이상 걸리는 판소리 완창의 경우 내 옆 자리는 비어 있다. 완창이 막바지로 갈수록 빈 자리는 더 많아 진다."

"나는 그 빈 자리에 아버지가 앉아 있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어둠 속에서 나는 아버지가 소리를 듣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고, 실제로 그러길 바란다."

조재철 작가가 "저자의 말"에서 말한 것처럼 소설 "다리"에서는 한국 전통음악이 어우러진 내용들이 또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국악을 모르는 독자들에게도 매료되게 한다. 

"연말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과 헝가리 간 친선협회가 주최한 송년 음악회가 열렸다. 헝가리 출신 소프라노가 "아리랑"을 불렀다. 노래는 심금을 울렸다."

"이어서 첼리스트와 피어니스트의 협연으로 헝가리 포크뮤직이 연주 되었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느 곳" 큰 플랜카드가 걸려 있었다. 피아니스트는 헝가리에서 알아주는 저명한 연주자이면서 존경 받는 교육자였다."

"그의 독주회에 한.헝 가리 친선협회장과 함께 간 적이 있었다. 다소 늦게 극장에 들어가서 내 자리로 가면서 이미 앉아 있는 세 사람에게 양해를 구했다. 1부가 끝난 후 쉬는 시간에 밖으로 나왔다가 또 늦게 들어가게 되었다."

"이미 앉아 있는 세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기 전에 그들이 먼저 일어났다. 그중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머리가 벗겨진 깡마른 노인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일어나기에, 특히 미안함을 전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했는데, 후에 협회장은 그가 헝가리 현직 대통령이라고 말해 주었다. 헝가리 대통령의 소탈한 인품에 대해서는 주변에서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었다."   

이 부분은 "다리" 본문 269쪽에서 발췌했는데 실화를 곁들인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헝가리 대통령의 겸손함과 그의 문화 사랑을 짧은 글 속에 함축시켰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작가이거나 음악가, 아니면 다른 분야의 예술가라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가끔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이 대목을 읽고 필자는 감동했다. 헝가리 국민들이 부러웠다.

작가는 "저자의 말"에서 그 동안 써온 단편은 필명으로 썼는데 "다리'는 나의 첫 장편이며, 처음으로 본명으로 썼다고 했다.

조재철 작가는 현재 <주오사카 대한민국총영사관> 부총영사로 재직 중이다. 필자는 오사카에 거주해서 44년째이다.

그 사이 고국에서 한글 교육을 받은 한글 세대가 오사카에서 한국어로 쓰는 작가가 나오기를 기대했다. 아니, 오사카가 아니드라도 일본 어디에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그렇게 학수고대했는데 조재철 부총영사가 작가라니 필자는 "큰 바위 얼굴' 이 떠올랐다. 그렇게 필자는 기다렸었다. 기다리던 대상이 재외공관 부총영사라니 더욱 놀랬다.

고국을 대표하여 외국에 나가 있는 외교관들은 자국의 문화 홍보 활동에도 많은 힘을 쓰고 있다. 이럴 경우 고국의 문화를 홍보하는 매개 역할만으로 끝나지 않고 스스로가 그 문화를 발신할 수 있는 문화인라면 그 파격 효과는 엄청나다.

작가 조재철 부총영사는 그러한 면에서 더 큰 의미가 있으며, 앞으로 한국에서도 고위직 공무원들 속에서 많은 문화인들이 나왔으면 하는 소망이 간절하다. 특히 외교관이라면 더욱 그것을 느껴질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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