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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잠들지 않는 남도’를 부를 차례내년 70주년 제주 4·3의 노래 한 목소리로 제창되길
김동현 책임 에디터 | 승인 2017.05.18 20:07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9년 동안 부르지 못했던 노래가 광주의 하늘에 울려 퍼졌다. 대통령도, 5·18 유족들도 모두 한 마음으로 노래를 제창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1년 소설가 황석영이 전남대학교 학생이었던 김종률과 광주 지역 노래패에서 활동하던 노래 활동가들이 함께 만든 창작곡이다. <넋풀이-빛의 결혼식>에 삽입되었다. 1980년 5월 27일 사망한 시민군 윤상원과 1979년 들불야학을 운영하다가 사망한 노동운동가 박가순의 영혼결혼식에 헌정되면서 세상에 나왔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대 노래운동을 상징하는 노래로, ‘불법 테이프 복제’의 방식으로 대학가에 빠르게 번졌다.

5.18 당시 진압군이 시민들을 폭행하는 장면. 사진=5.18기념재단

광주 정신을 상징하는 이 노래가 5.18 기념식에서 처음 불려진 때는 1997년이었다. 광주를 상징하는 노래, 민주와 인권의 상징이었던 이 음악에 대해 보수 진영은 처음부터 불편한 시각을 감추지 않았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임’이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라거나 북한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다는 이유로 노래 자체에 ‘붉은 딱지’를 덧씌웠다. 박근혜 정부 보훈처장이었던 박승춘 씨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불허하기도 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지내면서 무려 9년 동안 이 노래는 불려질 수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2017년 이 노래는 광주 하늘을 수놓았다. 그것은 문재인 대통령은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5.18 정신 그 자체라고 평가했다. 보수 정권에 의해 붉은 딱지가 씌워졌던 노래의 완벽한 복권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원본 악보. 사진=5.18기념재단

생각해보면 노래를 억압하려는 정권의 시도는 오래된 관행이다. 생각해보면 권력은 종종 문화를 통해 대중을 지배하려 했다. 식민지 시절부터,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 이르기까지 권력은 문화를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강력한 무기로 사용해왔다. 중일전쟁 이후 일본이 아시아 지배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노래가 바로 일본의 제2국가로 불렸던 ‘바다로 가면’(海行かば)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박정희는 쿠데타 집권 직후인 1961년 5월 21일 문화예술 검열 제도를 전격 도입한다. 쿠데타 집권 세력이 문화예술 검열제도를 도입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문화를 권력의 감시, 관리 대상으로 삼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즉 권력의 입맛에 맞지 않는 예술을 탄압하면서 예술 생산자들의 저항적 예술 담론의 유통을 막겠다는 의지를 검열이라는 제도의 도입으로 공식화한 것이다.

하지만 박정희는 그 누구보다도 예술, 대중문화의 영향력을 잘 아는 권력자였다. 대표적인 것이 우수 영화 추천제도였다. 이것은 대중문화의 생산구조를 무기로 예술인들의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내기 위한 제도였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영화사가 제작한 영화가 우수 영화로 추천되면 외화 수입 쿼터를 늘려주었다. 문화도 산업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다. 검열이라는 제도가 예술의 자율적 창작을 감시하는 제도였다면 우수 영화추천제도는 자본이라는 당근으로 예술인들을 유혹하는 강력한 무기였다. 박근혜 탄핵을 촉발시켰던 예술인 블랙리스트가 정권에 밉보인 예술인들의 밥줄을 끊어버렸다면 박정희는 예술인들이 ‘알아서 기게 만드는’ 그야말로 교묘한 문화 통치의 방법을 보여줬다.

문화통치는 예술에 대한 간섭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 시절 이른바 국민가요 보급운동은 직접적인 문화 프로듀서의 역할을 보여준 좋은 예이다. 박정희 대통령 작사·작곡, 육군합창단 노래라는 이름이 뚜렷하게 새겨진 국민가요보급운동의 첫 번째 앨범을 장식한 노래는 1970년대 최고의 ‘히트곡’이라고 할 수 있는 ‘새마을 노래’와 ‘나의 조국’이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중앙부처 수준의 문화행정 조직체계가 만들어지고(1968년), 문화예술진흥법이 제정(1973년)되면서 사실상 정책으로서의 문화가 논의되기 시작했지만 이때까지의 문화는 권력의 관리와 감독이라는 상시적 검열과 간섭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내년 4·3 70주년에서 잠들지 않는 남도를 마음껏 부를 일만 남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4‧3희생자 추념식에서도 ‘잠들지 않는 남도’는 불려지지 않았다. 제주도는 행자부의 눈치를 행자부는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노래마저 마음껏 부를 수 없는 추념식이 반복되었다. 4·3 추념식에서 잠들지 않는 남도가 논란이 되는 것은 그 자체로 부끄러운 일이다. 혹자는 이 노래가 일부 운동권의 노래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1987년 이후 이 노래가 실린 음반은 100만장 이상 팔렸고 제주 4·3 진상 규명의 목소리가 울려퍼지는 현장에 잠들지 않는 남도는 언제나 함께 했다.

잠들지 않는 남도가 수록된 노래를 찾는 사람들 앨범 사진

이제 잠들지 않는 남도를 불러야 할 차례다. 문재인 대통령은 5·18정신은 헌법 전문에 담겠다고 약속했다. 해방 이후 통일독립 운동의 첫 시작이었던 제주 4·3 항쟁의 정신은 5·18보다 앞자리에 놓여야 마땅하다. 그것이 제주 4·3 정명의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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