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예정대로라면 내일자(6월 5일) 제주매일에 실려야 했습니다. 제주매일측에서 칼럼을 실을 수 없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신문사 입장이 곤란해진다는 제주매일의 입장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서로가 동업자 의식 속에서 '뒷담화'만 하는 동안, 지역 언론 환경은 망가질대로 망가졌습니다. 제주에서 과연 이 정도 글도 공론화 될 수 없는 것일까요? 페이스 북에 올렸던 글을 그대로 게재합니다. 

김동현(문학평론가)

오랜 망설임 끝에 쓴다. 한 때 적(籍)을 둔 적도 있고, 신참 기자 시절 많은 선배들로부터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그곳에서 기자생활을 했기 때문에 ‘4·3’과 제주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을 지닐 수 있었다. H, K 선배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짧은 기자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떠난 후 선배들이 하나 둘씩 그곳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선배들의 갑작스런 퇴사 소식을 들으며 마음 한 구석이 쓰려왔다. 소식을 들으면서 자본이 권력이 되어 버린 시대에 기자가 기자답게, 언론이 언론답게 살 수는 없는 것일까라는 자괴감도 들었다. 그렇게 선배들이 떠나갔어도 그곳에 대한 애정만은 접지 않았다.

회사 주인이 바뀌고, 몇 차례 사옥을 옮겼다는 소식도 들었다. 매체 환경도 달라졌다면서 기자로 산다는 게 쉽지 않다고 고백하는 동료들도 있었다. 편집국 분위기도 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선후배가 자유롭게 토론하면서 때로는 언성을 높일지언정 권위로 억압하지 않았던 편집국의 전통이 사라진 지 오래라는 푸념도 들었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그렇게 각자 살 길을 찾아간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도, 누군가는 남아서 27년 전 신문다운 신문을 만들자고, 언론다운 언론을 만들자고 머리 띠 두르고 자본과 권력에 맞서 싸운 창간 정신을 지켜주길 바랬다. 나는 기자로서 취재도, 필력도 낙제점에 가까운 사람이었기에 일찌감치 기자 노릇을 그만두었지만 남아있는 선후배들의 기사를 보며 응원을 보내곤 했다. 그것이 내 부채의식을 조금 덜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난 6월 2일 창간 27주년 기사를 보고는 아연실색했다. 내년 도지사 선거 예비후보를 거론하며 회사 대표를 함께 다룬 것이다. 지방선거가 도민들의 관심거리인 것은 맞다. 자천타천 거론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면 사실이다. 사실을 다룬 것 자체가 무슨 잘못이냐고 반문할 지 모른다. 만약 그렇게 반문한다면 이렇게 되묻고 싶다. 언론사 대표가 도지사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 자체가 정상적인 것인가라고.

신문사 대표가 유력 대선 주자로 거론되고 있다면서 조선일보가 자사 기사를 통해 기획기사로 보도했다고 생각해보자. 진영 논리를 벗어나 언론의 금도를 벗어난 일이라는 논쟁이 일어날지 않을까. 지역의 유력 신문사 대표 경력이 정치권으로 가기 위한 이력으로 이용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닌가. 그렇다면 최소한 노조에서, 편집국에서 이 문제를 거론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게이트 키핑은 그러라고 있는 것 아닌가.

JTBC 손석희 사장은 자사 회장인 홍석현 씨가 회장 직에서 물러나면서 대선 도전 가능성이 논란이 되었을 때 이런 입장을 밝혔다.

“시대가 바뀌어도 모두가 동의하는 교과서 그대로의 저널리즘은 옳은 것이며 그런 저널리즘은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을 위해 존재하거나 복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이 손석희 사장에게 신뢰를 보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손석희 사장이 말한 “교과서 그대로의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 저널리즘이 다루는 메시지는 진실성과 시의성과 독립성이 있어야 한다. 언론학 개론서에 빠지고 않고 등장하는 대목이다. 이번 제민일보의 기사는 진실성과 독립성 측면에서 저널리즘의 기본을 심각하게 훼손한 기사이다.

언론은 특정 개인의 영달을 위해 존재해서는 안 된다. 선거 출마는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최소한 언론사 대표라면 저널리즘의 기본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기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최소한 선거에 나서고 싶다면 회장직을 사퇴하라고 한 번 쯤 목소리라도 내야 한다.

이제 나는 제민일보를 내 이력에서 지워버리려 한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애정 어린 비판마저 속된 말로 “씹는다고” 표현하는, 회사원이 되어버린 선배들의 그 무감함에 이제 마지막 환멸의 인사를 보낸다.

굿바이 제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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