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체제 개편 논의가 당분간 중단됐다. 생각해보면 이번 행정체제 개편은 행정의 효율성만을 앞세웠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왜 행정체제가 개편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다. 문재인 정부가 분권 수준의 개헌을 하겠다고 공약한 내용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다. 오로지 행정의 효율성만 추구하다보니 결국 민주주의는 놓치게 된 셈이다. 당연한 결과다. 

지난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제주시, 서귀포시, 북제주군, 남제주군 4개 시군 체제가 제주시, 서귀포시 2개 행정시 체제로 변했다. 생각해보면 당시 행정계층 구조 개편은 제주형 자치 모델을 찾기 위한 시도였다.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현행 2개 행정시 체제가 채택된 지 10년이 넘었다. 하지만 행정체제 개편이 오히려 풀뿌리 자치를 후퇴시켰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모든 권한이 제주도청으로 몰리면서 ‘도청 과장만도 못한 제주시장’이라는 푸념이 회자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지방분권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과도한 서울중심주의를 탈피하고 지역 스스로 민주주의 자치 모델을 실현해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지방분권의 핵심을 재정분권이라고 규정하면서 지방의 재정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의 지방분권을 실현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이름을 바꾸겠다고 했다. 자치와 분권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기본적 철학의 바탕에는 사람과 돈이 서울로 집중되는 왜곡된 구조를 바꾸겠다는 의지가 깔려 있다.

제주도가 특별자치도라는 권한을 부여받았을 때 제주도민들은 환영했다. 그것은 지역의 문제를 지역 주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오히려 지역의 풀뿌리 자치는 실종됐다. 모든 권한이 제주도지사에게 몰리면서 ‘제왕적 도지사’라는 호칭이 퍼져갔다. 제주도를 견제할 의회의 역할은 축소되었고 ‘지역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지사를 만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이 팽배해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정체제개편위원회(위원장 고충석)가 꾸려졌다. 오랜 논의 끝에 지난 29일 자치권을 강화하기 위해 행정시장 직선제를 최종 대안으로 확정했다. 행정시장 직선제와 함께 현재의 2개 행정시 체제를 4개 행정권역으로 재편하는 안을 제주도에 권고했다. 그동안 행정체제 개편위가 검토했던 안은 세 가지. 행정시장 직선제, 기초자치단체 부활, 현행 체제 유지가 그것이다. 개편위는 행정시장 직선제와 4개행정권역 재편이 현행 행정체제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도민의 정치적 참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개편위가 제시한 4개 행정권역 재편은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 1985년 건설교통부가 마련한 제주도종합개발계획에서도 북제주군과 남제주군을 동제주군과 서제주군으로 재배치하는 안이 검토된 적이 있다. 1994년 제주도개발특별법에 의해 마련된 제주도종합개발계획에는 공공투자를 촉진하고 지역이기주의를 최소화하기 위한 도 단위 광역 행정체제 강화방안 제시가 이뤄진 적도 있다.

행정체제 개편 논의의 역사는 오래된 편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편 논의에서 주목할 것은 논의의 주체와 논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점이다. 1985년 처음 건설교통부가 행정권역 재편을 제시한 것이나 도 단위 광역 행정체제 강화 방안이 제시된 것이 제주도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논의되었던 것은 행정 체제개편이 민주주의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적 모색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결국 시민들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의 행사 여부에 달려있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은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를 정치적 시민권이 박탈된 노예적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행정체제 개편논의는 지역 주민들의 주민 자치 실현이라는 자발적 움직임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서울을 중심에 두고 제주를 보면 인구 60만 정도가 4개 시군으로 나눠져 있다는 것이 이해가지 않을 것이다. 서울 송파구만 하더라도 전체 인구가 64만명을 넘는다. 비슷한 인구인데도 단일 행정체제가 맞지 않느냐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철저하게 서울 중심주의적 사고이다. 예전 제주는 제주목과 정의현, 대정현으로 나눠져 있었다. 여기다 한라산이라는 지형적 조건으로 인해 산남과 산북의 정서가 다르고 동쪽과 서쪽의 풍습이 다르다. 육지사람들은 제주시 애월과 용담동 사람들을 모두 제주시 출신이라고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제주사람들에게 애월과 용담은 전혀 다른 지역이다. 한림과 한경의 마을 규약이 다르고 대정과 성산의 청년회 운영이 다르다.

행정체제 개편은 지역의 자치권을 중앙 권력에 기대, 기생해 온 지역의 정치인들이 주민들의 자기결정권을 무시한 채 밀어붙인 대표적 사례이다. 과거 4개 시군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가장 큰 원칙은 지역 주민들 스스로 지역의 문제를 결정할 수 있는 지역의 자기결정권, 바로 풀뿌리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의 행정시장 직선제 권고는 사실상 권한이 없는 시장을 선거로 선출하는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인사권고 예산권이 없는 행정시장을 직선제로 선출한다고 해서 과연 행정시의 문제를 시장이 결정할 수 있겠는가. 권력은 독점하면 반드시 부패한다.

박정희 군사 독재정권이, 과거 군사 정권이, 그리고 지난 10년가 보수 정권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한 이유는 권력을 독점했기 때문이다. 특정 개인에게 의존해 국정을 농단할 수 있었던 것도 대통령 개인에게 집중된 권한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지역도 마찬가지이다. 도지사에게 집중된 권한을 나누지 않으면 안 된다. 제주시에 서귀포시에, 그리고 지역마다 구성되어 있는 있는 주민자치위원회에 그 권한을 나눠줄 수 있는 제도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스위스 등 유럽의 국가들은 1천-2천명 단위의 코뮌에 자치권한을 주고 있다. 지역의 현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들이 퇴근 후에 머리를 맞대 토론하는 광경은 그들에게 그리 낯선 모습이 아니다.

보수정권 10년 동안 대한민국은 서울이 되어갔다. 서울 권력은 비대해졌고 지역은 뿌리 없이 말라갔다. 이제는 말라버린 지역에서 새로운 정치의 싹을 틔워야 한다. 지역이 힘이고 지역이 희망이다. 지역에서 지역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구체적 삶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실천의 아이콘들이야말로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이다.

서울의 눈이 아니라 지역의 시각에서, 저 도도하게 흐르는 지역이라는 민심의 바다에 그물을 던져야 한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한국 정치는 표면적으로는 이념의 대결장이었다. 보수와 진보라는 두 갈래의 선택지에서 서로가 서로를 공격했다. 하지만 한국 정치에서 이념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역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동원할 것인가라는 정치 공학이 이념 대결에 앞서왔다.

김수영이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라고 토로했듯이 우리는 서울로 대표되는 중앙의 권력만 바꾸었다. 중앙 권력과 지역의 문제는 변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인들을 보면서 ‘싸우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정치는 더 많이 싸워야 한다. 중앙과 지역이라는 보이지 않는 차별의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더 많이, 더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어찌 보면 우리 정치사는 ‘혁명은 안 되고 방만 바꾼’ 셈이다. 지역이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기결정의 의무가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라도, 정치인들이 입만 열면 말하는 국민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은 차이들로 가득 차 있는지를 드러내기 위해서라도 정치는 더 싸워야 한다.

그 싸움의 진지는 붉은 카펫이 깔린 의회의 전당이 되어서는 안 된다. 거친 자갈이 가득하고, 흙먼지 가득한 지역의 저잣거리가 우리 싸움의 진지이다. 그리고 이때 싸움의 문법은 달라져야 한다. 중앙의 권좌를 차지하기 위한 기성의 문법이 아니라 지역의 문법, 저잣거리의 문법이어야 한다. “기성 육법전서를 기준으로 하고/혁명을 바라는 자는 바보다”라고 김수영이 말하듯 모든 견고한 기성의 가치를 뒤집는 전복의 상상력으로 새로운 문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 시작을 제주에서 먼저 할 수는 없을까.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새로운 민주주의 지평을 열 수 있는 새로운 실험을 제주에서 실현할 수는 없을까. 행정체제 개편은 단순히 행정구조만 바꾸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 행정체제 개편권고안은 민주주의의 근본이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물음이 빠져있다. 서울을, 서울중심주의라는 낡은 사고를 지역에 이식하려는 불온한 이식의 시도이다.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