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두 개와 우유 한 팩을 먹기 위해 다친 다리를 절뚝 거리며 10km를 꼬박 걸어온 분도 계셨죠. 그렇게 절박한 심정으로 우릴 찾았던 단 70명의 한 끼를 위해 드는 비용은 우리나라 돈으로 고작 2만원 남짓이었습니다. 우리의 작은 도움이, 그들에겐 생존의 문제인 겁니다.”

△제주평화봉사단 강상철 단장. 사)제주외국인평화공동체 공동대표, 제주평화인권센터 운영위원장, 제주특별자치도평화봉사분과위원회 간사 @제주투데이

제주평화봉사단 강상철 단장이 떠올린 해외봉사의 잊히지 않는 이야기들은 수도 없다. 걸어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더라도 봉사단의 따뜻한 단 한 끼의 식사를 먹기 위해 한 도시를 넘어 걸어온 이의 사연, 단순 절도로 10년 형을 넘게 복역 중이었던 이가 봉사단의 교육으로 모범수가 된 사연. 그 수많은 사연을 되돌아보는 강 단장의 목소리와 눈빛에 안타까움이 베어 있다. 직접 목격한 현장의 기억은, 우리가 왜 해외봉사를 해야 하는지를 다시 되새기게 하기 때문이다.

△제주평화봉사단 봉사단원이 동티모르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아이와 눈을 맞추고 있다. @제주평화봉사단 제공

“각자 살기 바빴던 한 마을이 봉사단 방문에 처음으로 회의란 걸 합니다. 어디에 무엇이 필요한지, 봉사단에게 요구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마을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기 시작하죠. 함께 ‘생존하기 위해’ 서로를 살피고 지역을 살피게 되는 겁니다. 도움을 통해 시작된 변화는 곧 ‘자립’이라는 능력을 채우게 되는 것이죠.”

올해로 16년차 해외봉사를 이어가고 있는 강 단장에게 봉사의 참된 의미는 지속가능한 삶을 찾아주는 일이다. 단순 재원 조달을 넘어 지역의 삶, 개인의 삶을 발전 가능하도록 돕는 일.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은 오지의 낙후된 곳을 찾고 찾는다.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곳에 ‘제주’라는 이름을 달고 도움을 주는 일이 곧 강 단장의 삶이 됐다.

△제주평화봉사단은 현지에서 필요로 하는 도움을 주기 위해 수개월전부터 여러 분석과 교육을 거쳐 현지로 간다. 사진은 제주평화봉사단의 동티모르의 한 지역 봉사 모습 @제주평화봉사단 제공

“처음 해외봉사로 갔던 몽골 중하라의 한 교도소는 환경이 매우 열악했죠. 단순 절도만으로도 10년형을 받는 곳인데, 한 겨울에 영하 3,40도로 내려가도 마땅한 죄수복 하나 없이 지내더군요. 제주에서 마음 맞는 분들이 직접 가서 컴퓨터와 한글교육을 시작하게 된 건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재소자들의 의지를 봤기 때문이에요.”

교도소와 상의해 봉사단의 교육을 수료한 일부 재소자들은 형을 감형받기도 했고, 또 모범수로 인정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한 재소자는 이들의 봉사활동에 감동받아 한국으로 들어와 일을 하고 봉사하고 싶다며 범죄자의 낙인을 이겨내고 비자를 받기도 했다. 삶의 변화, 자립 의지를 세우는 일. 직접 경험한 그런 이야기들은 강 단장의 해외봉사활동을 이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몽골과 동티모르, 캄보디아, 스리랑카, 필리핀 지역 등을 꾸준히 살피고 있는 제주평화봉사단은 의료와 교육, 환경개선 등 다양한 분야의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제주평화봉사단

“언젠가 사회에 제가 가진 것을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살았죠. 지역내 어려움을 가진 분들도 많으시지만 요즘엔 제도권 안에서 여러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어려운 나라, 어려운 지역에선 그런 도움들이 아예 닿지 않는 곳이 여전히 너무 많지요. 살고 죽는 일이 일상인 곳들이거든요.”

강 단장의 첫 해외봉사는 2000년대 초반 몽골에서부터였다. 이후 스리랑카와 필리핀의 지역을 돕던 그는 제주도가 세계평화의섬으로 지정된 이후 “세계평화의섬 제주도의 진정한 의미를 새기기 위해선 해외봉사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 꼭 필요하다.”며 2007년 제주평화봉사단을 창립, 지난해 10년차를 넘었다. 이후 매해 2-3곳의 나라를 찾아 낙후된 지역 중 도움이 닿지 않았던 곳들에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동티모르, 몽골, 미얀마, 필리핀, 캄보디아를 넘어 올해는 아프리카 우간다로 갈 예정이다.

△제주평화봉사단의 '태권도' 교육 활동 모습@제주평화봉사단 제공

“한 곳을 돕기 위해선 최소 몇 개월전부터 준비 작업에 들어가야 합니다. 매번 봉사단원들을 모집하고, 현지에 필요한 것들을 살피고, 봉사단 교육을 두 어달 거친 뒤 현장에 가게 되죠. 그래도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에서 국제개발협력(ODA)으로 재원을 뒷받침 하는 곳은 현재는 제주도뿐이에요. 그 덕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지요.”

지방정부의 지원을 받는다하더라도 해외봉사를 한번 가는데 봉사단원들의 사비가 꼭 들어간다. 아시아권은 일반인 봉사자가 100만원 내외, 아프리카처럼 먼 곳은 150만원 내외로 봉사자 각 개인이 돈을 직접 내고 가야 한다. 그렇다고 형편이 넉넉한 이들만 봉사단원으로 참여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도 어려운 형편임에도 일년을 꼬박 돈을 모아 일부러 봉사단원으로 참여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 보람을 알아서다.

“봉사를 다녀오신 분들은 한 결 같이 만족도가 높습니다. 현장에서 체험한 일들을 잊지 않고 매해 봉사단원으로 신청하는 분들도 계시죠. 하지만 아직 해외봉사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지 않아 신청자들의 폭이 넓지 못한 한계는 있어요. 지역주민들도 해외로 나아가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게 중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넉넉치 않은 형편이어도 일년을 꼬박 돈을 모아 자비를 내고 봉사단원으로 활동하는 이들이 제주평화봉사단에는 적지 않다. @제주평화봉사단 제공

보통 해외봉사단을 ‘국가’의 이름으로 기억하는 곳이 많지만 한 국가의 어떤 ‘지역’의 이름으로 기억하는 곳은 많지 않다. 대부분 중앙정부 또는 단체의 이름으로 봉사하기 때문이다. 제주평화봉사단은 그런 의미에서 ‘제주도’를 알리는 민간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기도 하다. 현지에서 봉사할 때마다 착용하는 복장에서부터 가슴과 등에 ‘Jeju’를 달기 때문이다.

“제주도에도 이젠 해외봉사를 하는 단체들이 늘고 있어요. 서로간의 네트워킹으로 도움이 필요한 나라와 지역 사정을 공유하기도 하죠. 이제는 이런 단체별 특성을 살려 각각의 능력에 따라 해외봉사를 체계적으로 실행해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의료와 교육, 환경개선 등 활동내용과 범위가 모두 다르니까요. 행정에서도 획일적인 지원보단 각 해외봉사단별 특성을 파악해 꼭 필요한 지원을 해준다면, 제주지역의 해외봉사도 더 탄탄해지지 않을까요.”

△강상철 단장은 해외봉사야 말로 제주도를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한다. 강 단장이 인터뷰 중 제주평화봉사단의 단체복을 직접 입고 보여준다. 가슴과 등에 새겨진 'Jeju'가 선명하다. @제주투데이

동남아의 낙후된 지역을 중점으로 활동을 펼쳐온 제주평화봉사단은 올해 아프리카를 시작으로 좀 더 활동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강 단장은 “전세계 최빈국 49개 나라 중 33개 나라가 아프리카에 있습니다. 빈곤과 질병 문제가 상당히 심각한 곳들이죠. 지원이 절실한 이곳에 ‘제주’라는 이름을 달고 그들의 생존을 돕고, 자립을 돕는 꼭 필요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싶습니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아직도 해외봉사를 잘 모르는 도민들이 많습니다. 지방정부가 해외봉사를 지원하고 주도하는 곳은 제주도가 처음인데, 그 기회를 살려 많은 분들이 해외봉사에 적극 참여했으면 좋겠어요. 어떤 전문적인 능력이 없더라도, 제주도민이면 누구나 함께 하실 수 있어요.”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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