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하지만 8월이야말로 그 이상의 잔인한 달의 나라가 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는 T.S 엘리어트의 시 <황무지> 중, 제1부에서 "죽은 자의 매장"에서 나오는 첫 구절인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절이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서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에서 문학 활동을 하다가 39세에 영국에 귀화하고 194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시의 세계에서가 아니고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서 볼 때 일본의 8월은 그야말로 "8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었다.

1945년 8월 6일과 9일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 투하가 있었고 15일에는 "일본에서 가장 긴 날"이라는 영화도 나오는 "항복의 날"이었다.

매년 8월이 오면 일본 각처에서 전쟁과 평화에 대한 행사가 연일 개최되며 미디어는 이 추도 기사로 넘쳐흐른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8월 15일 전몰자 추도식에서 일본 천황은 깊은 반성을 표명했는데, 계속 3년째이고 아베 수상의 추도사에는 <가해>에는 언급도 없었다고 마이니치신문은 8월 16일 조간에 보도했다.

그리고 15일 "종전의 날"에 야스쿠니신사 참배 각료는 한 사람도 없었다고 1면 톱 가사로 게재했는데, 1980년 이후 자민당 정권에서는 처음이라고 한다.

북한 도발로 날마다 위험 수위가 높아가는 한반도 정세에 한.일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데 각료의 야스쿠니 참배로 어렵게 해서는 안된다는 배려 차원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광복을 맞은 한국은 구 식민지 종주국 일본에게 공세를 취하지 않아도 8월만큼은 일본 스스로가 저자세 속에서 아시아만이 아니고 세계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8월만 되면 난데없이 손해만 보는 공세를 취하여 일본의 이러한 저자세에서 역공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해 왔다. 

지난 해에는 정치가들의 독도 방문이 문전성시를 이뤄 천황의 반성의 추도식보다 톱 뉴스로 일본 텔레비에 나왔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정치가들의 숭고한 애국심의 독도 방문은 일본에서는 그 영상과 함께 일본 정부의 비난과 항의가 이어지면서, 독도는 타케시마라는 선전에 큰 공헌을 한다.

올해는 정치가들의 독도 방문 기사가 없어서 다행이구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엉뚱하게도 위안부 소녀상이 서울 노선 버스에 탑승해서 일본의 8월 저자세에서 또 다른 역공을 제공했다.

동아운수가 운영하는 151번 서울 노선 버스 5대에 소녀상의 앉은 모습이 설치되어 8월 14일부터 9월 30일까지 운행하다가 그후, 부산, 대구, 대전, 전주, 목포에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 곁에 앉게 된다고 한다.

"아이구 여기 계시구나!" 소녀상 운행이 시작된 8월 14일 아침 이 버스에 탄 박원순 서울 시장이 소녀상을 쓰다듬으면서 건넨 첫마디였다.

이 기상천외의 소녀상 탑승 영상이 일본 텔레비에 나올 때 필자는 아연실색했다. 필자만이 아니고 동포사회는 물론 일본인들도 같은 심정이었다.

한국의 새로운 정부는 한.일간의 위안부 합의가 국민적 합의가 아니라면서 재협상의 대상이라면서 들고 나와서 지금 일본과 날카롭게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일본 정부의 즉각적인 비난과 항의가 그 영상과 곁들여서 연중행사처럼 되풀이 됐다. 이번에는 민간인이 기획한 일이기 때문에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나몰라라는 식이었다.

그렇다면 박원순 시장의 긍정적 행동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니 그 이전에 위안부 소녀상이 서울 중심가의 버스 노선에 안치되야 하는 현실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 것인가?

일본의 왜곡된 역사인식에 대한 항의라는 대의명분의 애국적 발상에 대해서는 이해가 간다. 그러면 당사자인 일본도 이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라도 항의보다 다른 의견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러한 항의가 일본에서는 국수주의나 보수 세력은 물론 한국에 호의적인 우한파(友韓派)나 양심 세력들에게도 반한을 부추기는 혐오감만을 제공할 뿐이다.

박원순 시장이 민간인 시절인 2010년 5월 15일 오사카에서 강연이 있었다. <아름다운 가게>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기부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다.

그 강연을 들어서 감동했다는 동포는 물론 일본의 시민운동가들도 "아이고 여기 계시구나!"라는 일성 속에 소녀상을 쓰다듬는 박원순 시장의 행동은 포플리즘의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다고 비난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 일반적으로 잘 쓰는 말중에 "쿠우키오요메:空気を読め"라는 관용어가 있다. 직역하면 "공기를 읽으라"는 의미지만 "분위기를 알라"라는 뜻이다.

한국의 정당한 권리와 이익을 위해서 전개되는 일본에 대한 이러한 항의 행동이 일본에서는 전혀 먹혀 들지 않고 새로운 반한의 역효과만 초래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서울 중심가의 노선 버스 5대에 위안부 소녀상 설치는 일본에 대한 항의와 위안부에 대한 죄송스러움과 위로에 있다지만 필자가 볼 때 이것은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모독이다.

전면적 공개와 운동으로 인한 인권 호소도 좋지만 위안부 할머니나 가족들 중에는 이제는 피눈물 나는 이 아픔을 잊고 싶어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 분들 마음도 헤아려야 한다.

이 분들에게 있어서 버스 속의 소녀상이 모습은 새로운 트라우마 증세를 이르킬 것이며, 그 분들만이 아니고 침묵 속의 국민감정 역시 또한 있을 것이다.

위안부의 역사와 아픔을 한국 국민은 모두 가슴에 안고 있다. 이것을 굳이 이러한 모습으로 다시 서울 한복판을 왕래 한다면 이것은 혼이 없는 소녀상의 우상에 지나지 않는다.

더 이상 너도 나도 애국적이라는 환상의 포플리즘과 퍼포먼스에서 벗어나서 하루 빨리 버스 속의 소녀상을 철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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