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양길현 교수/제주대학교 윤리교육과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고 제주담론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해 말이 많다. 세기적 바둑 승부에서 이세돌 9단에게 알파고가 압승을 거두는 걸 보면서 인공지능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 게, 4차 산업혁명의 도래를 대중에게 실감 나도록 하지 않았나 싶다. 다보스포럼 창업자인 클라우드 슈밥 회장이 지적처럼, 진정 4차 산업혁명은 과거의 1차, 2차, 3차 산업혁명의 경우와는 달리, “우리가 하는 일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류 자체를 바꾸게” 될 지도 모른다.

필자는 4차 산업혁명의 도래가 기정 사실인지 아니면 그냥 3차 산업혁명의 진화인지 여부를 놓고 논쟁을 벌일 만큼 과학기술적 전문가가 아니다. 다만 최근 로봇으로 상징화할 수 있는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는 만큼이나, 적어도 우리의 삶에서 매년 100만개 정도의 일자리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대해서는 우려를 공유하고 있고, 그래서 무언가의 대책을 강구할 필요성을 느낀다. 지난 18일 제주국제협의회(회장 강태선)가 주관한 ‘기본소득, 로봇세 그리고 사회적 자본’ 강좌에서 윤형석 도의회 정책자문위원이 지적한 바 로봇세와 기본소득의 도입이 그 하나일 수 있다.

로봇세와 기본소득의 도입에 대해서는 여전히 정치계-산업계-학계 모두에서 논쟁 중이기 때문에, 국민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도, 결국 구조적으로 일자리가 사라지는 세상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하나로 기본소득 도입에 대해 보다 전향적인 대응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67만의 작은 인구이지만 17개 광역자치단체의 하나인 제주에서 특별자치에 이어 기본소득의 가능성을 실험해 보는 건 어떤지 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네덜란드, 핀란드, 캐나다 등에서 기본소득 실험이 현재 진행 중에 있다고 한다. 이들 나라에서의 시범을 벤치마킹해서 우선 제주특별자치도에서부터 예를 들면 인구의 1% 정도인 7만명의 도민에게 매월 7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할 경우 제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지를 탐색해 보는 것도 제주와 대한민국의 미래 찾기 정책이 아닐까. 참고로 2017년 제주도 총예산 4조 4,493억 중 0.65%인 2,892억에 중앙정부의 매칭 지원으로 3,000억을 합하면, 대강 위의 기본소득 비용인 7만명x70만원x12월=5,880억원에 근사하다. 이렇게 제주에서부터 예산 절약과 선택-집중의 의지를 보여줄 수는 없는 것일까.

당장 기본소득 도입을 전 국민에게 한꺼번에 할 수는 없어 보인다. 그래서 옛날부터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으리라. 이와 관련 내년 하반기부터 문재인 정부가 5세까지 지급하기로 한 월 10만원의 아동수당에 대해 ‘기본소득 도입의 신호탄’일지 모른다는 평가도 있지만, 필자에게는 문재인정부도 담대함은 부족해 보인다. 아동수당은 월 10만원이 아니라 월 30만원은 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2018년 1월 1일부터 출생하는 모든 신생아에 대해 월 50만원을 기본소득으로 지급하겠다는 통 큰 접근은 안 되는 것일까.

필자도 기본소득 도입이 결코 쉽지 않음을 잘 인식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 사회에는 아무 노력도 없이 그냥 돈을 주는 데 대한 반사적 거부감이 일반 국민들 사이에 널리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면을 기본적인 사회적 가치로 삼아온 한국사회에서 기본소득은 정부에 의존적인 삶을 조장하는 할 뿐만 아니라 혹 그러다가 아무도 열심히 일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리고 기본소득을 도입하고자 할 경우, 그에 소요되는 천문학적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의 아주 근본적인 이의 제기는 더욱 그냥 넘기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기본소득 얘기가 자주 나오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그건 일차적으로는, 윤형석 위원이 지적한 바, 기술과학 발전으로 인해 더 이상 인간의 노동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는 세상의 변화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일하고 싶어도 일이 없어 일 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그래도 생존하고 무언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기본적 여건은 마련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의 가장 기본적인 휴머니스트적인 입장에서, 기본소득이 주창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즉, 인간다운 삶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제공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보장할 수 있도록 하자는 기본권 확장 차원의 것이다. 나아가 인류의 미래 찾기에서 차제에 단순히 실업구제라든가 복지 차원을 넘어서서 기본소득을 통해 보다 안정적으로 창의적이고 공익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조금이라도 마련해 주는 것도 좋아 보이지 않는가.

이재명 시장의 주도하에 성남시에서 시도되었던 ‘청년배당’도 일종의 기본소득 도입으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일환으로 파악된다. 성남시의 ‘청년배당’은 일정한 연령대(만 19-24살)의 3년 거주 청년들에게 시혜가 아니라 ‘권리’로서 월 10만원 내지 분기별 25만원의 소득이 보장되도록 하는 프로젝트로서 주목을 받은 바 있고, 그 과정에서 이재명 시장은 일약 전국적 인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월 10만원은 없는 것보다는 나을 뿐이지 너무 작다. 그런데도 10만원 청년배당을 놓고 시비를 걸었던 박근혜 정부의 쩨쩨한 옹고집은 무능의 극치였다.

이와 관련 제주에서는 3년 이상 거주하면서 성년이 되는 모든 시민들에게 제주도정과 정부가 손을 잡고 예를 들면 1천만원을 지급하여 이를 학비로 쓰든 사업에 투자하든 아니면 여행비로 쓰든 본인이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건 어떤지? 유일한 조건은 죽을 때 이자와 함께 이 돈을 다시 제주도정에 돌려주도록 하기로 하고. 청년의 미래를 어떤 식으로든 조금이나마 뒷받침해 주려는 기성사회의 이해와 동참이 바로 제주의 미래를 살리는 길이며,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을 보장해 주는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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