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강광일/ 전직 교사, 전 재외제주도민회총연합회 사무총장, 전 서울제주도민회 상근부회장

인사말이 그 지역의 역사와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다고 봅니다.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말은 이제 하루 생활권화 된 대한민국의 전국적인 인사말로 거의 통일이 된 듯합니다. 제주도에서도 이제 이 인사말이 보편화된 것 같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이 인사말은 본디 서울 지역의 인사말입니다. 외침과 정변으로 날밤을 새며 불안에 떨던 상황에서 나온 인사말이죠. 잘 알다시피 이 인사말은 ‘밤새 안녕하십니까?’의 줄임말입니다. 한때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말이 부정적인 정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서 ‘반갑습니다.’라는 말로 대체하자고 해서 크게 호응을 얻기도 했습니다.

‘식사 하셨습니까?’라는 인사말은 삼남(三南) 지방의 기근과 관련이 있습니다. 끼니를 거르던 경상, 충청, 전라 지역의 곤궁했던 역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제주도의 인사말은 무엇일까요? 우리 어릴 적에만 하더라도 제주에서는 안녕이라든가, 식사와 관련된 인사말을 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습니다. 안녕이나 식사라는 명제가 제주도의 역사성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서 덜 절실해서인지 제주의 인사말은 달랐습니다.

나이 든 분들은 기억을 더듬어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 시절 어느 날 아침 길거리에서 동네 아는 어른을 만났다면, 어린 우리는 어떻게 인사했을까요? ‘무시거 허미꽈?’ 또는 ‘어드레 감수꽈?’ 라고 인사했습니다. 상대방의 행위를 물었습니다. 이 인사말의 역사성과 정서는 어떻게 해석되어야 할까요?

서울 지역은 생명에 대한 불안에서 ‘안녕(安寧)’을 희구했고, 삼남 지방은 먹을 것을 찾았는데, 우리 제주 선조들은 무엇을 걱정했고, 무엇을 더 갈구했던 걸까요? ‘무시거 허미꽈?’, ‘어드레 감수꽈?’라는 인사말에서 우리의 선조들은 동작이나 행위를 중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활동성과 관련 있는 인사말이라는 거죠.

척박한 변방에서 처절히 생존을 도모해야 했던 제주인들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 활동적일 수밖에 없었지요. 이러한 근거들은 일상생활에서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제주 여성의 활동성은 독보적입니다. 육지에서 흔히 ‘바깥양반’ 대칭으로 쓰이는 ‘안사람’이라는 호칭이 제주에는 없었습니다. 여성은 남성과 함께, 아니 남성보다 더 바깥 활동을 했으니, ‘안사람’이라는 말이 가당찮았던 겁니다.

제주 여성의 활동의 대표적인 것은 뭐니 뭐니해도 해녀 물질 아닙니까. 해녀의 ‘저승에서 벌어서 이승에서 쓴다’라는 말의 비장함에서 제주 여성의 활동성에 관해서는 더 이상 논구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극한의 노동을 감내하며 ‘오몽해사’ 먹고 살아갈 수 있었던 제주인들은 타인의 행위나 행동도 자못 궁금하고,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무시거 허미꽈?’, ‘어드레 감수꽈?라고 인사를 했다고 봅니다. 상대의 행위를 묻는 것이 실례일 수도 있어 지적받을 수 있겠지만, 인사말이라는 것은 어쨌든 그 지역의 특수성이라는 측면에서 존중되어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고향을 떠나 육지에서 생활한 지 수 십 년이 지났지만, 제주의 유전인자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걸 인사말에서 증명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실소할 때가 있습니다. 직장에서 상사를 만나면 일반적으로 ‘안녕하십니까?’ 또는 ‘식사하셨습니까?’하면 될 것을, ‘뭐 하십니까?’ 또는 ‘어디 가십니까?’라고 무심결에 제주도식 인사를 건네서 상대를 의아해 하고 당황하게 만들 때가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말씨는 현지식인데, 말투는 제주식인 셈이죠.

이 외 제주의 인사말 중에 ‘어떵 살미꽈?’, ‘어떵 살아졈수꽈?’라는 제주도식 인사말이 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어떻게 지내십니까?’ 정도로 표현하는 인사말과 비교해 보면, 현실의 고단함에 애틋함을 과감하고 직선적으로 드러내어 왠지 더욱 실감납니다.

그 지역의 역사와 정서를 나타낸 것이 인사말이라고 한다면, 제주의 정체성을 일깨우는 차원에서 잊혀져가는 원래의 인사말을 되살리는 것도 일견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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