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70이 넘으니까 봉사로 해줄 게 없어요. 그래도 내가 할 일이 뭐가 있나 살펴보니 칼갈이가 있는 거에요. 무료 급식하는 복지관 식당에 앉아 칼이라도 갈게 됐으니 다행이지. 이 정도라도 도움이 되니 얼마나 다행인가요.”

지난 24일 아라종합사회복지관에서 만난 고명대씨(77세)는 반평생을 몸을 아끼지 않으며 봉사했음에도 여전히 봉사할 일이 많다며 "칼갈이라도 봉사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다.@제주투데이

여든 고개를 앞둔 고명대씨가 불편한 한쪽 손을 떨며 담담히 말했다. 그에게 ‘봉사의 삶’을 이어가게 하는 아라종합사회복지관의 열 세 자루의 칼갈이는 누군가에겐 보잘 것 없어 보일지 몰라도 평생을 봉사의 끈을 놓지 않아온 그에게 그만한 일이 지금 없다.

젊은 시절 한창 봉사때 마사지며 물리치료로 어려운 이웃의 몸을 십 수년 보살펴 그런지 그의 몸은 칠십을 넘어가며 가만 앉아있기도 벅찰 정도다. 몇 년을 어려운 이웃에게 밥 배달한다고 6층 건물을 꼬박 계단 타고 오르내리던 그였지만, 세월이 그 시간을 길게 두지 않았다.

소방공무원으로 운전수일을 하던 시절, 출동을 나갔다가 다치는 바람에 마사지 치료를 받게 된 그는, 그 기술을 배워 어려운 이웃을 위한 마사지 봉사를 10여년을 해왔다.@제주특별자치도사회복지협의회 자원봉사자 명예의 전당 사진자료

“첫 봉사가 소방공무원으로 운전수를 한 이후였지요. 비가 심하게 오던 어느 날 현장 출동했다가 거꾸로 고꾸라지며 몸이 다친 때가 있었어요. 그때 마사지 치료를 받고 그랬는데 그렇게 오래 받아오니 나 자신도 어느 정도 그 기술이 익은 거라. 그래서 누군가를 돕는 봉사를 시작하고 싶던 차에 그 마사지 기술로라도 봉사를 해보자 한 거지요.”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던 고 씨에게 어려운 이웃의 어깨라도 주물러 줄 수 있는 것은 최선의 봉사였다. 자신의 몸이 성치 않을 때 받았던 마사지 치료의 이로움을 아니, 직접 마사지 치료로 이웃의 몸을 돌볼 때 더 정성이 들었다.

독거노인을 찾아가 말벗이 되어드리고 집도 정리해드리고, 마사지도 해드리며 십 여년을 봉사했다. 마침 아라종합사회복지관이 1994년 물리치료실을 열면서 그 자리에서 꼬박 10년 넘게 봉사하기도 했다. 1996년 소방공무원 퇴임 후엔 아예 매일 같이 복지관을 찾아 봉사한 그다.

나이 70을 넘으면서 몸이 힘들어 밥배달과 배식 봉사도 할 수 없게 되자 복지관 무료급식장에서 쓰이는 칼갈이를 시작했다. 몇년 째 해오는 일이지만 늘 정성을 들여 칼을 갈아내는 고 씨다. @제주특별자치도 사회복지협의회 자원봉사자 명예의전당 사진자료

“오랜 시간 마사지치료를 하면서 그런지 몸이 성치 않아가는 거라. 마비되기도 하고 움직임이 둔해지기도 하고... ‘내가 건강해야 봉사를 더 할 수 있는 것이지.’하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시작한 게 복지관에서 준비한 밥을 어려운 이웃에게 배달하는 일이었습니다. 6층까지 계단을 타고 매일같이 배달을 했지요.”

비가 쏟아져도 태풍이 쳐도 주중에는 꼬박 꼬박 아라복지관으로 왔다. 어떤 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배달할 밥을 기다릴 독거노인과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면 하루도 빠질 수 없었다고 고 씨는 말했다.

“밥 배달을 5 년여를 넘게 하다 보니 그 또한 나이드니 몸이 힘들어 못 하게 됐지요. 그 허탈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가 70을 넘길 때였으니... 이젠 내가 더 할 수 있는 봉사가 없는가 싶었지요.”

인터뷰를 마치고 고명대 씨가 복지관 급식장에서 자신이 칼갈이 봉사를 할 때 쓰는 신돌을 내보이고 있다. 옛날 방식 그대로 칼을 갈아내는 그는, 신돌 위에 칼을 누이고 물 한 방울씩 적시며 봉사하는 일에도 '장인정신'을 들여 봉사하고 있단다. @제주투데이

고 씨에게 봉사는 그만둘 수 없는 평생의 약속이었다. 스스로와의 약속. 어떤 일을 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남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거리낌없이 내놓으며 바라는 것 없이 묵묵히 봉사하는 것. 그래서 고 씨는 “봉사란 상대방에 대한 이타심에서 출발해야지 그 사람에게 베푸는 것으로 자신이 보람찬 마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진정한 봉사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여든을 앞둔 고 씨가 택할 수 있는 봉사활동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찾고 찾은 일이 ‘칼갈이’다. 신돌에 칼을 갈아본 사람은 알지만, 한 자루 정성껏 가는 일도 만만찮다. 고 씨는 한 달에 한 번 아라복지관을 찾아 열 세자루의 칼을 정성껏 갈아낸다. 물 한방울 한방울을 칼에 적시며 칼이 손상되지 않게 정성껏 한번 또 한번 칼을 가는 일이다.

고명대 씨는 올해 제주특별자치도사회복지협의회의 제 7회 자원봉사자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약 37년간의 자신의 몸이 좋지 않을 때에도 이웃에 대한 봉사를 게을리 하지 않은 그에겐 뜻깊은 자리다. @제주특별자치도 사회복지협의회 자원봉사자 명예의전당 사진자료

“칼을 가는 일이 쉽진 않아요.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 일이죠. 쭈그려 앉아 칼 한 자루씩 갈다보면 이만큼 집중하고 정성들이는 일이 없습니다. 대충해선 안 될 일이에요. 복지관에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급식봉사하시는 분들이 이 칼들로 요리하거든요. 칼이 잘 들어야 그 분들도 일하기 좋고, 음식 드시는 분들도 맛있게 드시겠죠. 지금 제가 하는 봉사는 그런 그분들을 위해 칼을 갈아드리는 일입니다.”

40여년 봉사인생을 살아온 고 씨에게 칼갈이는 그동안 해온 봉사활동과 다르지 않다. 정성, 장인정신. 마사지 치료로 어려운 이웃의 어깨를 주무를 때도, 하루 수백개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밥배달을 할 때도 ‘정성’이었다. 고 씨는 “대충하면 다 티가 납니다. 어떤 봉사 일이라도 정성들여 장인정신을 갖고 해야만, 그 가치가 커지겠죠.”라며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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