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제주특별자치도 대중교통 체계 개편이 시작됐다. 벌써 3일이 지났지만 제주를 둘러볼 수록 준비소홀과 조잡함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기자가 제보를 받고 하례리와 남원리 등지의 버스정류소와 교통현황 일부를 돌아본 소감은 '너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였다. 
 
▲하례환승정류소의 모습. 하례리입구라고 적혀있어 승객들이 하례환승정류소와 헷갈릴 가능성조차 높았다.@김관모 기자
기사 쉼터나 화장실도 전무...버스는 아무데나 배치
 
하례환승정류장에서 기자는 제보자를 만났다. 제주특별자치도(도지사 원희룡, 이하 제주도)는 제주공항과 서귀포터미널, 동광, 송당대천 등 4곳의 환승센터와 17개 읍면과 하례·의귀·성읍 등 20개 마을에 환승정류장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찾아가본 환승정류장은 그저 일반 정류장과 다를바 없었다.
 
게다가 승객이 바라보는 쪽에는 '하례리 입구'라고만 적혀있었으며, '하례 환승정류장'이라는 이름은 쉽게 찾을 수 없는 곳에 있었다. 처음 제주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환승정류장을 앞에 두고도 헤맬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놓은 셈이다.

제보자는 "제주관광대를 매주 다니는데 기존에는 10~15분이었던 배차간격이 40분으로 늘어나고 요금도 인상됐다"며 "더욱이 토평4거리 정류장에는 버스와 관련된 아무런 표시도 없었다"고 전했다.
 
▲하례환승정류소 근처에 버스들이 가로변에서 대기하고 있다. 차선을 침범하고 있어 안전사고마저 우려되고 있다.@김관모 기자
▲하례환승정류소 근처에 버스들이 가로변에서 대기하고 있다. 차선을 침범하고 있어 안전사고마저 우려되고 있다.@김관모 기자

환승정류장 근처는 더 심각했다. 이곳이 버스 회차지점임에도 불구하고 대기할 공간조차 없어서 버스들은 가게 근처나 개천 다리 위의 갓길에 버스를 임시로 세워두어야 했다. 안전사고에도 무방비 상태였다. 버스 기사들이 쉴 공간은 전혀 없어서 근처 가게에 양해를 구하고 잠시 앉았다가 가는 경우도 많았다.

한 버스 운전사는 "한번에 30대의 버스가 대기하다가 갈 때도 있다"며 "최소한 10여대의 버스가 대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곳 주민도 "조만간 개천 다리도 공사에 들어가는데 이러면 버스 세워둘 때가 없어 사고마저 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나마 전기버스들은 충전소에 배치할 수 있었지만, 공사가 채 끝나지 않아서 비포장 상태에 모래 먼지마저 심하게 날리고 있었다. 근처에 기사들의 쉼터나 화장실도 마련되지 않았다. 회사에서 임시로 가건물을 세워두기는 했지만 날씨가 더워 사용할 수 없어서 기사들은 임시 천막에서 그늘만 피해야 했으며, 대소변도 수풀이나 근처 가게의 화장실을 빌려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례리입구에 있는 전기버스 충전소.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아 비포장도로였으며, 버스기사를 위한 거처가 없어 기사들이 임시천막에서 쉬고 있다.@김관모 기자
▲하례리입구에 있는 전기버스 충전소.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아 비포장도로였으며, 버스기사를 위한 거처가 없어 기사들이 임시천막에서 쉬고 있다.@김관모 기자
마침 점검을 나와있던 버스회사의 한 관계자는 "이 충전소는 회사가 개인에게 임대를 받아 마련한 곳이어서 공사가 늦어졌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일하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충전소만 지어지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시작하니까 그게 아니더군요. 지금은 해야할 일이 많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40%는 비가림 시설 미비...지선은 정류소·표지판도 없어
 
읍면 버스정류소 상태도 심각했다. 제주도내 버스정류소 3135개소 가운데 1936개소(62%)만 강화유리 등으로 비가림시설이 돼 있으며, 나머지 1199개소(38%)는 표지판만 설치돼있다. 하례리의 경우 전체의 절반 정도가 비가림시설이 없었다.
 
▲신효동 근처의 한 지선버스 정류소의 표지판. 표지판에는 아무런 표시조차 돼있지 않은채 방치돼 있었다.@김관모 기자
▲신효동 근처의 정류소에서 한 주민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표나 버스정보시스템도 없어서 20분째 버스를 마냥 기다리고 있다고 주민은 말했다.@김관모 기자

새로 노선이 신설된 지선의 수십여개의 정류소에는 아예 표지판이나 이정표조차 세워져 있지 않아 주민들이 버스를 이용하는데 큰 불편을 겪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장애인이나 어르신 같은 교통약자들의 경우 사고의 위험성도 커보였다.

620-2번과 620-1번 버스의 노선 근처에 있는 하례리 주민들은 "정류소가 세워져 있지 않아 책자로만 확인할 수 있는 상태"라며 "언제 정류소가 세워질지 이야기를 듣지도 못했다"고 토로했다. 일부 주민은 "여기 버스가 다니냐"며 오히려 기자에게 반문하기도 했다. 

지선버스의 한 운전기사는 "아직 정류소가 다 만들어지지 않아 승객이 근처에서 손을 들면 버스를 세워서 태우고 있다"고 말했다. 

읍사무소의 관계자는 "노인분들이 환승 개념이 약해서 무조건 번호로만 물어본다"며 "경로당이나 시장을 나갈 수는 있어도 돌아오는 방법을 몰라 택시를 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특히 "지선 노선도 비효율적이어서 이용객이 많을지 의심스럽다"는 의견도 보였다. 
 
▲하례1리 복지회관을 지나고 있는 지선버스. 아직 정류소가 없어 주민이 손을 들면 버스를 세워 태우고 있는 실정이었다.@김관모 기자
하지만 제주도나 서귀포시에서는 지선 노선 정류소 현황 파악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서귀포시의 한 관계자는 "일부 마을에서 정류소 문제로 항의가 들어와서 임시 간판을 설치하고 있지만 자세한 현황을 잘 모르고 있다"며 "지선은 새로 생긴 구간이다보니 준비가 미비한 점이 많았다"고 답했다. 2014년 12월에 이미 지선 노선 도입을 발표했음에도 그동안 제대로 준비조차 갖추고 있지 않았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든 부분이다.
 
송규진 제주교통연구소장은 "민영버스회사들은 표준운송원가 때문에 직접 충전소나 차량 대기소를 만들 여력이 없기 때문에 준공영제의 취지에 맞게 도나 시에서 지원을 해야 한다"며 "한꺼번에 많은 제도를 한꺼번에 처리하다보니 이같은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내년에 지선버스를 대체할 수요응답형 택시가 도입될 예정이니 이를 통해 어느정도 마을 어르신들의 수요를 해결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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