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양길현 교수/제주대학교 윤리교육과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고 제주담론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참 대책 없다. 필자처럼 대화를 통해 어떻게든 남북한 간에 교류협력의 공간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는 대화론자에게, 북한의 김정일은 정말 말썽꾸러기이다. 그렇다고 마냥 김정은의 북핵 도발을 비판하고 분노하는 것으로는, 2017년 하반기 한반도의 갈등구조적 정세를 해결하는 건 어림도 없다. 오히려 김정은의 계산에 말려 들어갈 뿐이라는 생각이다.

얼핏 동아시아 국제정세가 북한이 주도하는 그런 세상으로 가는 모양세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대북 화해 접근이 추진되리라 예상했던 한반도 평화론자나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인사들에게, 북한의 6번째 핵실험은 큰 당혹감을 주고 있다. 이번만이 아니라 지난 수차례에 걸친 북핵 실험에서도 그렇듯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기가 딱히 쉽지 않다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차라리 그냥 무시해 버리는 건 무시전략은 어떤지 하는 생각도 든다. 기존 한미일 동맹이 우월적이라면, 북한이 핵실험 몇 번 했다고, 세력균형이 크게 달라질 것도 없는 게 아닌가. 하늘이 무너질 듯 호들갑 떠는 안보위기론이 기승을 부릴수록, 득을 보는 건 김정은과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아닐는지. 그들 간의 주기적인 주고받기식 적대적 상호의존에 휘둘리지 않도록, 좀 더 냉철하게 되돌아보아야 하지 않을는지. 북핵을 구실삼아 전쟁놀이를 획책하는 그 어떤 음흉함을 더 경계해야 하는 건 아닐는지.

사드 배치만 해도 그렇다. 심사숙고 했다고 하면서도, 문재인 대통령은 ‘임시’라는 토를 달기는 했지만, 결국 사드배치를 강행하였다. 누군가에게 끌려가는 느낌이다. 남북대화의 진전을 통해 북핵 문제를 조율하면서 미국의 사드배치 요구를 조정해 가려던 초기의 외교안보적 노력은 이제 물 건너가 버린 것일까. 사드 배치는 미국이 요구로 시작되었지만, 최종적으로는 북한 김정은의 서울 불바다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자위적 조치에 따른 것이라고 우기는 수밖에 없게 되어버리고 만 것일까. 이래저래 경제협력에서 중국과의 거리는 더 멀어지게 되었으니, 중국 특수가 사라진 제주경제의 어려움은 생각보다 더 오래가게 되고 말았다.

6차 북핵 실험이 이후 여기저기서 대북 특사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래서 문득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왜 대북 특사는 없었을까 하는 의아심이 든다. 북한이 거부해서 못 보냈다면, 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런데 대북 특사는 꼭 우리만 보낼 일도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왜 대북 특사를 보내려고 하지 않을까? 선거 때 “김정은과 햄버거를 먹으면서 회담할 수 있다”고 호언했던 트럼프 대통령이지 않은가. 그리고 세계평화를 위한다는 유엔은?

그렇다면 미국과 한국, 유엔 모두가 동시다발적으로 대북 특사를 보내는 건 어떤지? 우선 대화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정부는 미국에게 북핵 해결을 위한 대북 특사 제의를 적극 요청해야 한다. 미국과 한국, 그리고 국제사회가 특사를 보내려고 해도 북한이 이를 거부하면, 그 때는 사드 배치를 수용하겠다고 명확한 ‘선대화-후사드배치’ 입장을 북한과 중국에 전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사드 임시배치가 현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라고 얘기를 해 버렸다고 해서, 이제는 모든 게 끝나버렸다고 손 놓아서는 안 된다. 잘 못하면 두고두고 실책인 것으로 판명 날지도 모를 사드 배치 결정을 왜 그렇게 쉽게, 조급하게 했는지, 의아심이 크고 실망이 적지 않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의 지적한 바, “우리는 중간만 따라가면” 되었을 걸. 그러나 아직은 문이 열려 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북한과 중국에게 대북 특사를 통한 대화 창구가 열릴 수 있다면, 임시 배치된 사드를 철수할 수 있다고 언명하면서, 퇴로를 열어두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생각이다.

냉정하고 찬찬하게 생각해 보자. 북한이 며칠 전 핵실험 한 번 더 했다고, 상황이 얼마나 더 바뀐 것일까. 안보 줄다리기에서 레드라인이라는 게 존재는 하는 것일까? 어느 일방이 레드라인 넘었다 생각하면, 넘은 걸로 되는 걸까? 북한이 이번 6차에 이어 다시 한 번 더 핵실험을 하게 되면, 그 때는 정말 전쟁을 하겠다는 것일까? 전작권도 없는 우리가. 아니면 미국에 군사공격을 요청하겠다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아예 우리도 핵무기를 보유하여, 이른바, ‘핵에 의한 공포의 균형’을 이루어 북핵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는 극단적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건지? 이런 저런 물음을 하노라면, 김정은에 대한 분노와는 다른 차원의 냉정함이 요구된다.

이제 6차 북핵 실험으로 남북한 사이에는 더 이상 대화는 없고, 제재만 남아있는 그런 상황으로 밀어붙일 생각인가.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더 긴급하게 대화가 요청된다. 만사에 문제 해결의 시작은 대화이지 제재나 응징이 아니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바가 아닌가. 그런데도 대통령과 통일부장관 모두, “지금은 북한과 대화를 할 때가 아니”라고 한다.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대화를 하겠다는 걸까? 외국에 나가 대북 제재나 요청하며 다니는 대통령을 보면서, ‘부산발 열차가 런던까지 가는 세상’을 꿈꾼다는 얘기에 진정성은 있는지, 염려스럽다.

실제 또 찬찬히 들여다보면, 지금 우리가 대화 말고 북한을 제재하고 응징을 할 어떤 수단을 갖고는 있는 것일까? 지난 정부에서도 북한이 도발하면 응징한다며 초등생처럼 소리만 있었을 뿐, 남은 건 남북관계의 악화와 한반도의 신냉전화 진전이었지 않은가. 마치 힘 센 측이 마냥 힘겨루기를 즐기는 어린애처럼. 그러나 미중러일 4강의 이해관계가 치열하게 교차하는 21세기 동아시아 국제정세 속에서 과연 조금 더 힘이 세다고 어떤 제재-응징이 가능한 것일까? 특히나 응징은 까딱 잘 못하면, 한반도에서의 전쟁으로 비화될 지도 모르는데, 그런 위험부담을 안고서라도 응징하자는 데 국민들이 찬성할까. 화가 나고 기분 나쁘다고 아무렇게나 주먹을 휘두르면 안 된다는 건, 모든 문명국가의 기본자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종이호랑이처럼, 말로만 해 보는 걸까. 그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기에.

필자는 평소 마초적 이미지에 권력의 화신처럼 보이는 푸틴 대통령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에 비해 한 때 문재인 대통령은 권력에 초탈한 듯한 모습이기에 점수를 후하게 준 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 한러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푸틴대통령의 신중함과 대국적 처신에는 경의를 표하고 싶다. 오히려 ‘눈에 눈, 이에는 이’와 같은 초보적 자세로 푸틴 대통령에게 대북제재 동참을 요청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더 사려 깊지 않아 보여, 민망했다. “외교적인 수단으로 북한 위기를 풀어야 한다”며 상식을 들먹이는 푸틴 대통령이 더 노련하게 보였다. 물론 푸틴대통령도 인접 국가에서 핵실험 하고 안보를 위협하고 있는데도 그렇게 외교만을 운운하면서 운운하지는 않았을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북한은 어쩔 수 없이 숙명적으로 같이 살아가야 할 같은 민족의 특수한 관계를 가진 이웃이다. 그러한 남북관계의 독특성과 유일성에 비추어 보면, 그게 푸틴 대통령이든 트럼프 대통령이든 시진핑 주석이든 대북제재 해 달라고 할 게 아니라 남북대화의 채널이 되어주길 부탁해야 했다. 한민족의 화해와 교류협력을 주도하면서 그렇게 당당하게 외교에 임하는, 그런 정도를 걷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으면 좋겠다.

북핵 실험으로 세상이 하수선한지라, 마침 필자가 잘 아는 서강대 김영수 북한전문가가 특강 한다기에, 제주통일미래연구원(이사장 임강자, 원장 고성준)이 주최하는 콜로키움에 참석하였다. 김영수 교수는, 통일이든 남북 관계개선이든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는 데서 시작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비군사적 대응전략을 역설하고, ‘관계개선을 위한 대화’를 권고하면서, 특히 우리가 너무 북한을 모른다면서 ‘북한정보 유입촉진’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하였다. 일류 북한 전문가다운 권고와 정책 아이디어에 크게 공감하였다.

김영수 교수의 여러 얘기 중에 특히 북한의 노동당보다 더 센 ‘장마당’에 주목하라는 지적을 들으면서, 문득 우리의 ‘궨당’이 머리에 떠오른 건 웬일일까. 정당보다도 더 세다는 제주 지역의 특수한 인간관계가 위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북한에서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장마당이야말로 북한 주민의 삶의 미래 동력이자 지주대라고 보아 무방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간명해 진다. 북한 핵실험에 너무 일비일희 하지 말고, 어떻게든 북한의 장마당을 확대-심화시켜, 여기서의 활력과 에너지가 북한 김정은 체제의 변화 추동력이 되도록 하는, 아래로부터의-장기적-점진적-경제생활적-사회문화적 접근에 더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이에 따르면, 정부가 외국 나가서 부탁할 바는, 대북제재가 아니라 북한의 장마당을 적극 지원해 달라고 부탁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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