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강협/ 제주평화인권센터 인권정책실장

남한에 산다는 것은 외부의 시선으로 보자면 전쟁에 관한 일상적인 위협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비교적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 분위기의 고조와 평온한 일상, 그리고 온갖 음모와 이론과 실재가 뒤죽박죽인 언론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이 혼돈의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평화를 찾아갈 수 있을까?

지금 한반도의 정세는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 상황에 처해있다. 국제사회는 분노의 분노를 거듭하고 있지만 북한은 눈 하나 꿈쩍 않고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자행하고 있다. 국제적 질서보다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함으로서 미국은 과거와 같은 강력한 조정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험악한 말만 늘어놓고 상황만 악화시키고 있다. 과거 미국의 영향력을 생각해보면 조금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리고 중국은 골치가 아프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감싸자니 말썽이 많고, 내치자니 전략적 손해가 막심하다. 극도의 긴장감은 끝 모르게 이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멀찍이 서서 소리없이 웃는 자들이 있다. 이미 서구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는 국제사회에 크게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장삿속을 채울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일본은 자국민들에게 전쟁의 위협을 부풀려, 오랜 숙원인 일반국가로 전환을 꾀할 호기를 맞게 되었다. 더불어 자국 정권의 부정부패로 인한 권력 위기도 돌파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했다. 하지만 역으로 일본국민은 전쟁의 위협에 항시적으로 시달리게 된다.

그렇다면 남한 정부는 어떠한가? 과거 두 번의 보수적 정권은 북한에 대한 지속적인 압박 정책을 구사해왔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사회와 보수적인 남한 정권의 지속적인 압박이 결국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장이라는 자위책으로 몰아넣었다는 한 언론의 분석이 허투로 들리지 않는다. 더군다나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북한으로서는 자신의 행동을 멈출 하등의 이유가 없다. 국제적인 제재는 그들에게 더욱 강력한 위협으로 작동하고 있고 더욱 강력한 반동력을 갖춘 방어체제, 오히려 방어를 넘어선 공격체제를 강화할 자양분이 되고 있다. 국민들의 촛불시위로 등장한 문재인정부의 대화노력도 한 순간, 북한의 핵실험으로 허망하게 무너져 버렸다. 현 정권이 평화적 노력의 동력이 되리라는 기대는 성주의 사드배치를 기점으로 과거 보수정권의 흐름 속으로, 전쟁위협의 일상이라는 보다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버렸다. 사실 이러한 엄중한 상황에 남한 정부는 나름 강력한 무력시위를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섣부른 무력시위와 나약한 대화의 의지는 이제 남한 내에서 전술핵 배치의 여론만 더 깊게 조성시킨 꼴이 되고 말았다.

한 순간의 오판은 모두의 공멸이라는 결론으로 치닫고 있다. 남한은 지금의 위험천만한 평온을 유지하기 위해 ‘핵 억지력’이라는 또 하나의 위험에 자신의 명운을 걸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불안한 중국에게 잠재적 위협의 근거지가 될 수 있는 제주 해군기지가 있다. 남한에게 있어 최고의 전략적 요새이자 대양해군의 모항이 되겠지만 그럴수록 상대국에게는 가장 위협적인 요새이자 근거지가 되고 만다. 그 제주에 우리가 살고 있다. 북한이 괌 포위사격을 호언장담하고 실제 무력시위를 했듯이, 동북아 지대의 긴장감이 제주 포위사격이라는 전쟁 위협으로 돌변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평화롭게 산다’는 명제에 ‘군사기지’라는 단어가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평화는 어떻게 이룰까? 그간 한반도를 둘러싸고 주변국들과 전문가들이 평화체제를 이야기해왔다. 국제관계에서 어느 때는 평화적 분위기가 무르익은 적도 있고, 반대로 실제 무력충돌 직전까지 긴장감이 고조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한 순간도 군사적 대치 상황이 해소 된 적은 없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평화를 이야기 하지 않은 사람도 없었다. 협상 테이블에서는 평화를 이야기하지만 돌아앉으면 자국 또는 자기 정권의 이익을 보장 받으려는 교묘한 외교궁리에 여념이 없어 보인다. 평화협상은 허울이고, 경제적 이득이나 지역패권 또는 자기 정권연장이라는 국가적 탐욕이 숨어있다. 국제적 합의를 통한 평화체제의 수립은 요원한 것이 아니라 불가능 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진정 평화체제는 불가능한가? 제주에 사는 사람으로서, 인권을 주제로 삼은 사람으로서 문제의 해결은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있다고 제안하고 싶다. 2012년 10월 강정마을 사람들은 스스로 평화의 권리(right to peace)를 선언한 바가 있다. 그에 따르며 마을 사람들은 ‘후손들에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 주는 것’, ‘주민들의 동의를 받는 것’, ‘마을 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주고받고 즐겁게 사는 것’,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것’, ‘종북좌파로 몰리지 않는 것’ 그리고 ‘강정마을의 무궁무진한 생명을 지키는 것’ 등등이 마을의 평화적 권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권리들은 평화롭게 살 권리, 전쟁에 휩쓸리지 않을 권리, 공동체 스스로 결정하는 발전의 권리, 연대의 권리 등등 수많은 현대의 핵심적 인권 가치를 표현하고 있다. 실제 이 권리들의 핵심적 가치들은 2016년 12월 19일 유엔총회 전체회의에서 승인된 ‘평화권 선언’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처럼 유사하다. 평화체제가 국가들의 이해관계의 조정을 통해 성취될 수 없거나 실현가능성이 많지 않다면 바로 이 사람들의 평화의 권리를 실현하는 것으로부터 실현되는 평화체제를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아니 이미 그 평화체제는 제주도에 의해 선언되고 있다. 다만 현실적 인식과 이행이 부족 할 따름이다.

제주도는, 명목상이기는 하나, 이미 전면적이고 적극적인 평화의 개념을 수용하고 있다. 따라서 제주도는 남한 중앙정부와 함께 제주도민의 평화권 보장을 위한 실제적인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첫걸음으로 강정마을 사람들의 권리, 즉 평화롭게 살고, 저항할 수 있고, 자기 결정권이 보장되며, 발전할 수 있는 권리를 지금이라도 보장해주어야 한다. 그러한 평화의 권리 보장을 통해 자연스레 적극적 평화의 개념을 온전히 실현해야 한다. 국가권력의 치졸한 보복으로 비춰지는 구상권의 소멸은 물론 평화의 섬에 들어서 자리가 없는 군사기지도 평화지대로 치환되어야 한다.

사람들의 평화의 권리, 강정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의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국가권력이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평화의 권리를 보장하는 동북아 모든 국가의 평화체제가 논의 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지점에서 제주 평화의 섬은 평화 실현에 대한 핵심적 위치와 더불어 현실적 고민을 동시에 갖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보다 더 깊이 제주 사람들의 평화의 권리에 대해 고민해야 할 과제를 앉고 있다고 하겠다.

평화에 대한 고민은 평화롭게 사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에서부터 흘러나와야 할 필요가 있다.  [ 이 글은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칼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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