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울은평구 숲속 극장에서 김석범 작가의 제1회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을 수상을 기념한 문학 심포지엄이 있었다. ‘역사의 정명(正名)과 평화를 위한 김석범 문학’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화산도와 나-보편성으로 이르는 길’이라는 주제로 김석범 작가의 기조강연과 김석범 문학 연구자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김석범 문학 세계의 의미를 이날 강연 내용을 중심으로 돌아본다.<편집자 주>

사실 너머 역사적 진실을 추구해온 김석범 문학

『화산도』의 작가 김석범 문학이 세계사적 보편에 다가섰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보수 진영에서는 작가에 대한 이념적 공세를 멈추지 않는다. 그들의 요지는 이렇다. “『화산도』를 비롯한 일련의 작품들이 4·3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다는 것.” 이러한 평가는 4·3을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와 그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군경토벌대의 잔혹한 진압이라는 기존의 4·3에 대한 규정마저도 부인한다. 하지만 작가 김석범이 그리고 있는 제주 4·3은 사실의 범주가 아닌 ‘문학적 진실’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문학적 진실’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별개가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사실이 아닌 ‘진실’의 문제이다. 역사적 사실들은 단편적이며 개별적이다. 역사적 진실이라는 단순히 사실의 조합이 아니라 사실과 사실을 횡단하면서 사실의 이면과 사실이 말하지 않는 ‘사실 이외의 사실’들을 만날 때 드러날 수 있다.

18일 은평구 숲속 극장에서 열린 제1회 이호철 통일로문학상 수상자 김석범 문학 심포지엄에서 김석범 작가가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사진=미디어제주 홍석준기자>

김석범 문학의 보편성은 국가,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

그런 점에서 김석범의 문학은 파편으로서의 사실이 아닌, 역사적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문학적 고투이다. 김석범 작가가 제1회 4·3평화상을, 제1회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바로 이러한 그의 문학적 작업에 대한 평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18일 은평구 숲속 극장에서 열린 기조강연은 50여년 가까운 세월 동안 제주 4·3항쟁에 천착해왔던 김석범 문학 세계의 보편성을 작가의 육성으로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날 김석범 작가는 “남에서는 ‘반동분자’로, 북에서는 ‘반혁명 분자’”라는 공격을 받아왔다며 자신의 문학 세계의 일단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일본어 창작을 계속해왔던 이유를 들면서 자신의 문학을 “일본 문학이 아니라 일본어 문학”이라고 규정했다. 이러한 작가적 규정은 김석범 문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이미 많은 연구자들이 ‘일본어 문학’으로서의 김석범 문학의 세계에 대해서 논의한 바 있다. 지배자의 언어, 제국의 언어로 조선의 문제를 이야기해왔던 김석범 문학은 그 자체로 한국문학, 일본문학으로 규정되는 국가에 종속된 ‘국민문학’의 범주를 뛰어넘는 ‘경계의 문학’이다. 지금까지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는 ‘무국적자’인 김석범에게 언어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18일 제1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자 김석범 문학 심포지엄에서 김석범 작가가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사진=미디어제주 홍석준기자>

이날 강연에서도 김석범 작가는 “일본어로 ‘조선’을 쓰지 못한다면 소설 쓰기를 그만두어야 했다”면서 일본어로 조선의 소설을 쓴다는 의미에 대해서 설명했다. “작가가 아니면 사람 구실을 못하는 존재, 텅빈 사람 모양만 한 존재”. 김석범 작가가 밝힌 소설 쓰기의 어려움을 그는 이렇게 토로했다. 그의 육성을 조금 들어보자.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일본어의 외피를 벗기로 그 언어의 보편성으로의 변질을 일읠 수 있다는 언어 이론의 구축이 요구되었고, 일본어로 ‘조선’을 쓸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지금까지 『화산도』 등을 써 온 것입니다. 변질된 일본어로는 『화산도』와 나의 통로인 동시에 일본어 독자와의 통로이기도 합니다.

그에게 언어는 일본어라는 국가의 언어를 바꾸는 ‘언어의 변질’이라는 언어의 근본성과 마주하는 문제이다. 즉 김석범은 문학을 통해 일본어라는 언어의 세계를 뛰어넘는 외로운 싸움을 해온 것이다. 그것을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 마디로 문학은 언어에 의해 언어(일본어의 구속)을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언어는 ‘국가-국어’의 틀을 개별적(민족적) 형식이 아닌 언어의 내재적인 것(예컨대 번역할 수 있는 측면)을 통해 초월합니다. 개별적인 틀에서 벗어나는 이 초월이 바로 보편성에 이르는 것인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 힘이 바로 상상력입니다.

일본어와 한국어라는 ‘국어’의 세계를 뛰어넘는 문학의 힘을 김석범은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한국 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일인 동시에 제주 4·3에 대한 천착이 결국 제주라는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사적 보편의 문제로 끌어올리는 문학적 실천이다.

18일 제1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자 김석범 문학 심포지엄에서 김석범 작가가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사진=미디어제주 홍석준기자>

김석범, 가장 비정치적이며 가장 정치적인 문학의 힘 보여줘

그런 점에서 김석범 문학은 가장 비정치적인 문학의 힘으로, 가장 정치적인 제주 4·3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문학적 개념, 즉 ‘순수-참여’의 이분법을 정면으로 ‘반역’하는 일이다. 일찌기 조지 오웰이 문학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행위라고 규정했다는 점을 염두에 둘 때 김석범은 이러한 문학적 실천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타진해 왔다. 그가 말하는 정치란 협소한 의미의 정치가 아니다. 그것은 정치를 뛰어넘는 정치이다. 이를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문학의 문학성, 예술성은 상실하고 정치적인 작품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 정치를 녹여서 문학의 자양분으로 섭취, 더욱 문학성이 강한 작품을 산출하고자 하는 것이 문학적 자세이며 바로 나의 작품의 집대성인 『화산도』는 그것의 구현물입니다. 정치성을 극복 소화, 예술로 승화시키는 일이 진짜 예술 지상주의가 아닌가도 생각합니다.

예술을 위한 ‘예술지상주의’가 아닌, 예술과 정치의 변증법을 통해 새로운 정치성과 문학성을 동시에 밀고나가는 그의 작품이 보편적 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가 『화산도』에서 친일파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흔을 넘긴 노작가는 그의 대표작인 『화산도』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도대체 4·3의 학살터에서의 사람의 생사는 무엇인가. 살아서 죽은 사람. 어떻게 생사를 가리는가. 죽음이 무엇이며 삶은 무엇인가.

살아남은 자 남승지와 한대용은 그들 속에서 죽은 자 이방근의 숨겨진 혁명 정신을 이어 받아서 앞으로 나아갈 길을 다지게 됩니다.

죽은 자는 생자(生者), 산자 속에 산다. 이것은 인류적인 전 인간적인 기억의 문제이며, 그것이 인류의 역사입니다.

과거는 사라지고 없어지거나 강제로 없앨 수도 없습니다. 반세기, 영구 동토 속에서 얼어붙었던 한 없이 죽음에 접어드는 망각과 기억.

권력자는 학살을 망각 속에서 땅 속 깊이 처박아 없애려고 했으나 긴 긴, 기나긴 세월이었지만 반세기만에 지상으로 되살아난 것입니다.

해방공간의 역사, 은폐하고 왜곡된 역사. 5년간 신탁통치를 폐기하고 이승만 단독 정부 수립 과정이 올바른 역사였던가를 밝히는 4·3의 역사 바로 세우기는 불가분의 역사적 과업입니다.

이 지나간 역사는 지금 산 자인 우리들 속에 살아 있습니다.

한편 이날 김석범 문학 심포지엄에는 김석범 작가의 기조강연에 이어 광운대 고명철 교수의 <김석범의 문학과 해방/공간, 그리고 역사의 정명(正名)>, 고려대학교 김계자 교수의 <김석범 문학과 재일조선인문학>, <인민 주권의 좌절과 반공국가의 탄생>(김동현) 등의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