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강광일/ 전직 교사, 전 재외제주도민회총연합회 사무총장, 전 서울제주도민회 상근부회장

한라산(漢拏山) 한자의 뜻은 ‘은하수를 잡을 수 있을 만큼 높은 산’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고교 사회 교과서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한라산이 제주도이고, 제주도가 한라산이다.’ 특히 제주 사람들에게는 실감나는 말일 것입니다.

한라산은 제주도 대부분 모든 지역에서 다 보입니다.

한라산이 살짝 안 보이는 마을이 더러 있는데, ‘한라산도 안 보이는 곳’이라고 해서 그 마을 사람들은 놀림을 당하기도 하지요.

방향을 얘기할 때도 ‘(한라)산 쪽과 바다 쪽’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저희 어릴 적에는 한라산을 ‘할락산’이라고 강하게 발음했습니다.

어른들은 굳이 한라산이라고 하지 않고, 그냥 ‘산’이라고 했지요.

또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산소, 즉 묘도 그냥 ‘산’이라고 했어요.

일체의 삶, 그리고 죽음까지도 한라산에 의지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그렇게 제주 사람들은 한라산과 산소를 일체화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제주 사람들은 누구나 죽으면 모두 한라산에 묻힙니다.

제주에서 겨우 유년기만 보내고 일본에서 반세기 이상을 살아온 노인도 죽으면 고향(한라산)에 묻어달라고 유언합니다.

심지어 우도에서는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거의 시신을 배로 옮겨 한라산 기슭 오름에 안장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아시다시피 육지에서는 웬만한 집안이면 가족이 죽으면 묻히는 선산(先山)이 다 있습니다. 제주 사람들에게는 선산이 따로 없죠. 한라산이 선산이었으니까요. ‘선산’이라는 말 자체가 거의 쓰이지 않았습니다.

제주 사람들이 외지에서 향인을 만났을 때 이런 문답이 오갑니다. ‘제주도 어디꽈?’ ‘애월이우다.’ ‘애월 어디꽈?’ ‘애월 고성마씸.’ 육지에서는 대체로 군(郡) 단위 정도에서 고향 문답이 그치는데, 제주 사람들은 면(面)에서 리(里)까지 내려갑니다.

제주 사람들끼리 만나서 대화를 하다가 의견이 일치되지 않아 끝까지 양보하지 않고 다투는 것 중에 하나가, 한라산을 어느 마을에서 바라보는 것이 가장 아름다우냐입니다.

자기 고향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이 최고라고 우기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오래 살아온 자기 동네가 편해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고 여기는 것처럼, 당연히 어릴 때부터 봐서 익숙한 풍경이 가장 호감을 갖는 것은 인지상정이고, 인간의 일반적 심리현상이지요.

서귀포 쪽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은 가까워서 친밀감이 들어서 좋고, 제주시조천이나 구좌 쪽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은 산세가 편안한 느낌이 들어 좋습니다.

저는 인간의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 사고를 비판할 때 한라산의 시각(視角差)을 예로 들어 설명하기를 좋아합니다.

사실 사방팔방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은 나름대로 다 특징이 있어서 어느 쪽은 좋고, 어느 쪽은 안 좋다는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한라산 바라보기는 타인에게 강요할 수 없는 자기의 느낌일 뿐입니다. 그것은 너그러움의 표징입니다.

아무튼 한라산의 모든 스토리는 제주 사람들의 내면 깊숙이 스며있어서 그들의 인생관이나 세계관 형성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한라산을 오직 자연 환경적 측면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제주 사람들의 정신문화적 의미체계로 정립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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