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완전 파괴’, ‘늙다리 불망나니 깡패 미치광이’.

말에 품격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시정잡배의 막 나간 말에서도 찾아보기 쉽지 않은 그야말로 막말이었다.

증오심을 뇌관으로 한 말 폭탄이었다.

지난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주고받았던 말 폭탄은 거칠고 역겹고 천박했다.

그래서 언제 주먹이 날아들지 조마조마하고 아슬아슬했다.

그러나 말싸움을 한다는 것은 아직 주먹다짐을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적어도 서로의 말문이 막히지 않았고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있기 때문이다.

수사(修辭)학자들은 이를 ‘말의 역설(paradox)'이라고 설명한다.

말이 물리적 폭력과 강압을 예방하거나 지연시키는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상적이고 이성적 수준의 상식을 가진 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트럼프나 김정은처럼 파괴적이고 호전적인 질 낮은 수준의 영역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입에 게거품 물고 내뱉는 거칠고 칙칙한 막말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고 불안하다.

미국의 수사학자 케네스 버크는 ‘의견 불일치의 끝은 전쟁’이라고 했다.

설전(舌戰)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실전(實戰)이 된다는 경고다.

그러기에 이들의 막가파식 말 폭탄 돌리기가 언제까지, 그 끝이 어디가 될지 가늠하기 힘들고 불안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말싸움의 중재는 어느 일방의 손을 들어준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주 문재인정부에서 야기됐던 ‘매파’와 ‘비둘기파’ 간 갈등 구조도 다르지 않다.

청와대는 지난 19일 “송영무 국방부 장관을 엄중 주의 조치했다”고 발표했다.

송장관의 국회국방위원회 발언과 관련 “국무위원으로서 적절하지 않은표현과 조율되지 않은 발언으로 정책적 혼선을 야기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송장관은 18일, 국회국방위원회에서 문정인대통령통일외교안보 특보에 대해 “학자 입장에서 떠드는 느낌이지 안보특보로 생각되지는 않아 개탄스럽다”고 직격탄을 날렸었다.

문특보가 ‘북한 핵 동결 대가로 한미군사훈련 축소 필요성’ 등을 주장하고 송장관의 북한지도부 참수작전 언급에 “상당히 부적절한 표현을 쓴것 같다”고 비판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송장관으로서는 현재의 심각한 안보위기 상황에서 국방장관으로서 유사시 북한 지도부를 겨냥해 이른바 ‘참수작전’등 강경한 입장을 내놓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 대화파인 문특보가 이를 강하게 비판했고 송장관은 문특보의 비판을 반박했던 것이다.

드러난바 송장관의 발언은 거칠었다.

청와대의 말대로 적절하지 않은 표현과 조율되지 않은 발언으로 정책적 혼선을 야기하고 안보라인의 불화로 비쳐져 대통령에게 상당한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북한 김정은이 평양인근에 청와대 모형을 만들어 타격훈련을 하는 상황에서 당연한 대응전략을 세우는 국방수장의 발언에 공개 경고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특히 국무위원도 아니고 국무회의에서 의결권도 없는 대통령 비서실장이나 국가안보실장이 국무위원인 국방장관에게 ‘엄중주의‘라는 공개경고를 한 것은 ’하극상이며 국기문란 행위’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대통령에게 사후 보고를 했다고 했지만 위계질서를 무너뜨렸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일이다.

군은 국민의 신뢰와 사기(士氣)를 먹고 사는 조직이다. 그것을 명예로 알고 있다.

청와대 비서진으로부터 공개 경고를 받은 국방장관이 제대로 군령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이는 군의 사기와 명예에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것이다.

또 있다. 청와대의 편파적이고 편향적 조치다.

문특보는 지난 6월 미국 워싱턴에서 “사드 때문에 한미 동맹이 깨지면그게 동맹이냐, 북한이 도발을 중단하면 한미군사훈련을 축소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는 내용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해당발언은 문특보의 학자로서의 개인 생각일 뿐, 대통령의 생각이 아니다”, ‘이런 발언은 한미관계에 도움이 안된다’는 뜻을 ‘(문특보에게)정중하게 전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미관계에 도움이 안되는 발언’을 한 문특보에게는 ‘정중하게 뜻을 전달’했던 청와대가 ‘적절하지 않은 표현’의 국방장관에게는 공개적으로 ‘엄중경고’ 했다.

이것이 적절하고 온당한 조치인지, 의도를 가진 편향적 조치인지의 판단은 어렵지가 않다.

흔히 대외정책에서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쪽을 '매파(the hawks)'라고 한다.

굳이 따진다면 송장관은 매파에 속할 것이다.

대화파인 문특보는 온건파를 뜻하는 ‘비둘기파(the doves)'로 분류될 수도 있을 터이다.

송장관과 문특보 조치과정에서 청와대는 ‘매파’를 밀어내고 ‘비둘기파’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재인정부의 통일안보 라인에서 비둘기파에게 힘을 심어줬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UN총회 참석 후 문재인대통령은 대북문제와 관련 ‘강한 압박과 제재’를 천명했다. 사실상 매파 적 강경입장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의 대북 강경입장과 비둘기파에 힘을 실어 준 청와대의 입장은 상호 모순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왼쪽 깜빡이등을 켜고 우회전 하는 것’같아 여간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다.

시대정신의 껍질만 보고 본질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국정위기에 대한 책임 있는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는 것 같아 여간 안타깝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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