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 재경 제주사회문제협의회 대표

[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동서 길이 2500Km인 천산산맥(최고봉은 7439미터)의 주봉 중 하나인 바그다(보고타)봉 무릎팍쯤인 해발 1900미터의 천산 천지. 만년설산이 보인다.

도교사원. 중국에는 경치 좋운 곳에는 반드시 도교사원이 있다.

지배층은 통치질서를 위해 유교를 권장하고, 서민은 현실의 어려움을 벗어나려 기복적인 도교를 숭앙한다.

천산산맥, 신강.

신강지역과 카자흐스탄, 키르기스탄, 타지기스탄의 경계이지만, 곤륜산맥 타클라마칸사막 알타이산맥과 더불어 광활한 이 지역 일대를 인간이 감히 범접하지 못하게 만들어 온 거대한 장벽.

오늘날 위구르 독립투쟁의 한 이유인 10세기이후 전파된 이슬람 문화와 종교도 딱 이 지역을 경계로 중원으로 뻗어 나가지 못했고, 불교나 도교도 여기까지가 경계선.

800년대 중반부터 북쪽에서 남하한 위구르인들이 이 지역을 차지하고 건륭제때 중국이 이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면서 새로운 영역 즉 신강이라고 이름 붙이고 자기 영토로 공고화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지만, 이 지역은 과거 한 무제때 흉노를 몰아내기 위해 장건이 이 지역에서 흉노에게 쫓겨난 대월지국과의 좌우 협공을 목적으로 방문하면서 부각되었고, 현대에 지금의 시리아 팔미라 지역에서 한나라 비단이 발견되면서 동서 문화의 교류 길, 실크로드라고 명명된 곳이다.

즉 장안(오늘날 시안)에서 시작되어 중동지역을 지나 시리아 그리고 터어키 발칸반도와 유럽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이 길은 한나라이후 특히 당나라와 원나라때 활성화되었고, 특히 현장법사의 천축국 방문[대당서역기]과 우리 나라의 혜초스님이 천축국을 방문해서 쓴 [왕오천축국전]이 감숙성 돈황석굴에서 발견되면서 우리에게도 관심이 높아진 지역이기도 하다.

실크로드는 천산산맥을 남쪽과 북쪽을 끼고 천산남로 천산북로가 있고, 곤륜산맥의 북쪽으로 또 하나의 오아시스길이 있다. 이 길들은 위구르인들간에 '돌아올 수 없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죽음의 바다' 타클라마칸사막과 타림분지를 넘어 카슈가르에서 만나서 파미르고원으로 이어지면서 오늘날 아프가니스탄 이란등의 중동지역으로 이어진다.

천산산맥과 고비사막, 타클라마칸을 끼고 있는 이 신강지역은 극도로 척박한 지역이어서 현장법사도 대당서역기에서 타클라마칸의 경우 "사방을 둘러보매 황사만이 쌓여 일망무제하니.. 죽은 자가 남긴 해골을 주어 모아 길 표지로 삼는다. 여기에는 물이나 풀이 없으며 바람은 대개가 열풍이다. 열풍이 몰아칠 때면 사람이나 짐승은 혼미해져서 병에 걸리게 된다"라고 묘사한 극한지역이다.

그리고 이 길 외에 천산산맥과 알타이산맥 위로 몽골의 오고타이가 바투와 함께 유럽 정복에 나섰을 때 주로 이용했을 중앙 아시아 저지대 스텝에 초원 길이 있다.

사실 실크로드 이 지역과 길은 한 무제때 장건이 개척한 것이 아니고 오래전 부터 이용되던 아주 오랜 역사적 지역이며 길이다.

신강박물관과 투루판박물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석기시대 유물들(도끼와 토기등)이 보여지고 있고, B.C 1500년경 중앙 아시아 습지에 살던 아리안족이 기후 변화 이유 때문인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두갈래 민족 대이동 중 한 갈래가 남쪽 인도로 이동해서 그 토착민인 드라비다족을 지배한 이동 경로이고, 기원 전 8세기경에는 스키타이인들의 이동 경로이기도 한 오래된 길이다.

실크로드는 불교의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래, 그리스적 요소와 인도적 요소가 혼합한 간다라 양식이나 새로운 사고의 전래등이 이루어진 길이지만, 또한 광범위한 이 일대 즉 신강지역과 천산산맥 위 지역, 카슈가르를 포함한 파미르지역등의 사막과 스텝지역 자체가 한때 36국 심지어 50여개 국가간의 교역, 약탈, 살육으로 생존을 연명한 지역이다.

그리고 이 지역의 생존경쟁에서 밀려난 종족은 유라시아 문명사회와의 경계선에서 창칼 부딪치는 소리를 내면서 동유럽, 히말라야 넘어의 지역으로 경계를 뚫고 나아갔다. 그래서 훈족은 게르만의 민족 대이동과 로마의 멸망, 대월지는 쿠샨왕조의 수립. 후에 투르크의 소아시아 이동을 야기했다.

그밖에 몽골이 서역과의 교역을 원하다가 호라즘에서 몽골 450명 대상들이 살해된 후 침공과 점령으로 이어진 중앙아시아 서남아시아 러시아 및 동유럽 침공이 시작되었다.

즉 척박한 환경속에서 이 일대만큼 인류사에서 전쟁과 살육으로 점철된 지역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이 사막과 스텝지역을 세계사에서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윌리엄 맥닐의 저작은 다른 세계사 책들이나 동서문명 교류사 책들과 달리 독특하다)

그리고 전쟁사의 측면에서 보면 지리적 조건과 지속적인 전쟁으로 이 지역 종족들의 전투력은 역사에서 압도적인 것으로 증명되었다.

즉 그리스에서 효율적인 것으로 드러나서 만든 8열의 중장보병의 밀집대형 '팔랑크스'는 많은 훈련을 통해 완성되고 공화정시대의 로마군대로도 이어졌지만, 알렉산더 중장기병들이 측면의 허점을 파고들어 깨부순 '컴패니언'에 의해 패배하면서 중세까지 유럽에서는 중장기병을 선호했는데, 이 또한 훈족이나 몽골의 가벼운 복장의 기병, 작고 강한 화살과 (말에서 먹고 자고 할 정도의 말타기 기술이라고 묘사되는) 말을 능숙하게 다루며 공격하는 전술에 의해 무참하게 깨진다.

만일 오고타이가 갑자기 급사하면서 칸 계승문제로 몽골로 귀환했지만, 그가 사망하지 않았다면 몽골군은 이미 헝가리 폴란드까지 침공했고 독일지역의 하인리히 2세까지 전사해서 서유럽으로 더 나아가지 않았을까...

황량한 기후와 토양에도 불구하고 서부대개발의 영향으로 발전하고 있는 중국 최북단 도시 우루무치

사막에서 생존의 신화를 써가는 인간의 능력이 어디까지일까?

우루무치역의 지독한 가방 및 몸 수색. 이 역의 검사는 두번에 걸쳐서 몸을 손으로 완전히 훑고나서 발바닥까지 검사한다.

신강지역은 공항 기차역은 말할 것도 없고 호텔, 사원, 박물관, 관광지, 시장, 큰 슈퍼마켓, 큰 음식점 입구에서도 반드시 검색을 귀찮을 정도로 심하게 하고, 액체나 스프레이 물병 라이타 성냥등은 다 압수하고, 길 거리에 장갑차와 바리케이트가 곳곳에 있다.

자신들이 강압적으로 이 지역을 강탈 점령해서 생긴 불안감이다. 한 일행 왈, 맞은 놈은 발 뻗고 자고 때린 놈은 불안한 꼴. 

곳곳마다 보이는 [민족단결 우리는 친척]이라는 구호. 위구르족과 카자흐족을 쇄뇌시키려는 의도.

게다가 [공산당 좋아 백성 기쁨]이라는 구호도 보였다. 왕정, 봉건제시대도 아니고 지금은 어떤 체제나 공화제를 바탕으로 하는데 백성이라는 용어가 한심스런.

和平屈起, 有所作爲. 

등소평때까지의 韜光養晦 즉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르다가 오늘날 후진타오이래 시진핑체제의 새로이 평화롭게 일어서고 필요할 때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대외정책의 변화는 실제로는 우뚝  치솟는다는 굴기와 자기 욕심 다 차리겠다는 심보인데, 중국은 과거 역사에서도 자기들의 힘이 약할 때는 주변을 괴롭히지 않다가 자기들의 힘이 강해지면 주변을 괴롭혀 왔다.

요즘 말도 안되는 남지나해역 일대 모두가 자기 영토라는 주장과 그로인한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등의 동남아 국가들과의 갈등이나 인도와의 영토분쟁등은 과거 역사에서도 숱하게 나타났었다.

주의 동천이후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때는 힘이 약했을 때라 주변국과의 큰 갈등이 없이 그들을 무시하고 멸시하면서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이라는 오랑캐로 부르다가 한이 통일국가가 되고 힘이 강해지자 한의 유방이 정벌에 나섰다가 오히려 자신이 잡힐 뻔해서 화해정책을 취하다가 한 무제는 동쪽 고조선뿐만 아니라 남쪽 월남등과 오늘날 신강지역인 서북쪽 주변국을 흉노라고 명명하고 다시 나서서 정벌했다(그 결과 훈족의 동유럽 이동과 게르만족의 대이동, 로마의 멸망)

수 문제도 동 돌궐과 서 돌궐로 이간질 시켜서 분리시켰고, 당 태종과 현종이 이 지역을 공격해서 장악하다가 당이 약화되면서 이 지역에 평화가 들어선 것처럼 중원의 강한 통일 왕조가 약화되면 이 지역의 이 민족에게는 평화시대가 나타났다.

송나라도 이 지역의 서하를 우습게 보고 공격했다가 북쪽의 요나라에 이어 된통 당하고 오히려 매년 엄청난 양의 재물을 바쳤고, 이후에도 금과 원에게 연전연패후 몰락한다. 몽골(원)은 이 지역뿐만 아니라 중동지역과 유럽지역까지 침공했고, 명의 영락제 또한 이 지역을 침공하였다.

청 또한 강희제와 건륭제때 이 지역을 침공하여 오늘날 중국 영토의 1/3을 넓혔다고 중국인들은 칭송하고 있다.

결국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이 민족을 짓밟음으로써 신강지역뿐만 아니라 티벳등지에서 오늘날 분쟁이 지속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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