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김희열/ 제주대 독일학과 교수

오늘의 독일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 후 삼권분립의 토대 위에 민주공화국이 수립되었으나, 그 선거제도와 정부운영은 우리와 상당히 다르게 발전해 오고 있다. 독일은 법적으로 표를 가장 많이 얻은 정당에서 수상이 나온다, 만약 그 정당이 과반수 의석을 얻지 못하면 다른 정당과의 연정을 통해서 과반수 이상을 확보해서 안정적인 정부 운영을 하도록 되어 있다.

지금까지 초대 수상인 아데나워 시절 유니온(기민당/기사당)이 50%를 조금 넘어 과반수 의석을 얻었으나 연정을 했다. 그 이후 정부 운영은 과반수 의석 미확보로 인해서 연정이 이뤄지고 있다. 보통 총선 투표는 후보와 정당에 각각 투표하게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정당과 정당의 후보를 같은 연장선상에서 선택한다. 그래서 설혹 정당과 후보를 다르게 선택하는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순위를 바꿀 만한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다.

지난 24일 일요일 치러진 독일 총선에서도 어느 당도 과반수 득표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떻게 연정을 할 것인가, 만약 연정이 되지 않으면 재선거를 치러야 하는 절차가 남아 있다. 득표는 유니온이 제1정당이 되었다. 이 당의 당수이자 수상 후보이기도 한 현재의 수상 앙겔라 메르켈이 4년 더 연임을 할 수 있도록 순조롭게 안착했다. 그러나 연정을 통해서 정부 내각을 안정시키는 데 요구되는 사민당이 연정을 거부함으로써 그 어느 때보다 험난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각 정당의 득표율은, 슈피겔지의 통계에 따르면, 유니온이 4년 전(2013)보다 8.6% 떨어진 32.9%, 사민당 역시 5.2% 떨어진 20.5%, 극우당 7.9% 상승한 12.6%, 자민당 역시 5.9% 상승한 10.1%, 좌익당 0.6% 상승한 9.2%, 녹색당 0.5% 상승한 8.9%, 기타 5.0% 였다.

메르켈 정부는 사민당과의 연정을 통해서 정부를 운영해 왔다. 하고 있다. 그러나 차기 내각에서 사민당이 연정을 거절했기 때문에 유니온은 다른 두 개의 정당, 자민당과 녹색당과의 연정이 그나마 가장 현실적 대안이 되고 있다. 그러나 제1정당 유니온, 친기업적인 자민당과 환경 친화적인 녹색당의 철학과 노선이 아주 다르기 때문에 이 자마이카(국기 색에 비유한 표현) 정부 구성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점에서 메르켈은 4차 연임에는 성공했으나 연정 구성에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금까지 사민당과의 연정을 통해서 최저임금제 상향 조정, 제한 없는 난민 수용, 원전 폐기 결정 등이 현 메르켈 정부의 주요 업적에 덧붙여졌지만, 크게 민심을 잃은 것은 제한 없는 난민 수용 정책이었다. 메르켈은 인도주의 입장에서 사민당과 마찬가지로 난민수용 쿼터제를 반대하였다. 그 결과 난민수용으로 인한 불만이 폭발하면서 특히 구동독 지역을 중심으로 이번에는 극우당이 제3정당이 되는 이변을 낳은 것이다. 이것은 극우당의 정강이나 정책보다는 메르켈 정부의 난민정책에 대한 불만에서 극우당으로의 쏠림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사민당의 경우는 고유의 정당 철학과 정책노선이 연정에 흡수되면서 오히려 차후 수상이나 집권 여당의 길과 멀어짐으로써 영원히 제2정당의 자리에 머무르게 되는 딜레마로 인해서 다음 정부에서는 연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의 협치 상황과 비교해 볼 때 독일 연정의 어려움은 그나마 배부른 고민이라 할 수 있다. 독일은 어느 수상이 국가를 다스리더라도 국회의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얻어서 정부를 운영하도록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여 국가 운영을 함께 책임지도록 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으나, 때때로 여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함으로써 정부운영에 발목을 잡는 의사결정 양태나 정쟁으로 흐르는 소모적인 정치가 일상화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것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정치제도가 도입되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하면, 어느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여당이 과반 의석이 안 될 경우에는 연정을 통해서 과반의석을 확보함으로써 안정적인 정부운영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정치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의 협치는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주관적 판단과 해석에 따라서 정치적 슬로건이나 비난의 명분으로 작동하고 있다. 책임을 지는 주체도 모호할 때가 많다. 우리에게도 법적-제도적 보장이 되어 있는 연정이나 협치가 있다면 최소한 요즈음 우리가 경험하는 제1야당의 맹목적 반대나 횡포, 선동과 같은 일은 발붙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해묵은 좌․우 진영 논리에 의한 편 가르기도 설득력을 얻기가 어렵게 되리라 본다.

마침 내년 지방선거와 함께 선거제도 개편 투표도 함께 이뤄질 계획이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어느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안정된 국정 운영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보장하는 제도 개편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내각제이든 대통령중심제이든, 행정부가 국민을 위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보장을 하고 선거를 통해서 그 책임을 묻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정계 개편의 주도는 입법부의 소관사항이어서, 국민을 위한 행정부의 활동을 근본적으로 보장하는 제도 개편이 가능하도록 시민사회와 여론 및 언론의 감시가 절실하다. 그런데 현재 헌법개정 준비는 깜깜이 상태에서 이뤄지고 있어서, 어느 날 그 내용도 잘 모른 채 벼락치기 헌법개정 찬반 투표를 하도록 내몰리게 되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심히 염려가 된다. 이 일이 염려로 끝날 일이 안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는 개인의 몫이 아니라 우리의 몫이다. 그 어느 때보다 공동체 구성원들 모두의 많은 관심, 확인과 감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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