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다. 열흘 동안이다. 역대 최장의 황금연휴다.

각종 매체에서는 벌써 추석 연휴 동안 ‘3000만명이 대 이동을 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만큼 큰 명절이다. 설과 함께 민족 최대 명절 중 하나다.

온 나라가 들썩이고 온 백성이 설레는 민족 최대 축제라 할 만하다.

음력 팔월대보름, 찌는 듯 했던 무더위가 사그라지고 소슬 바람이 기분을 간지르는 삽상(颯爽)한 가을이다.

들판에는 영글어 고개 숙인 쌀 익는 냄새, 나뭇가지마다 농익은 과일은 주렁주렁 향기를 뿜어 몸살 나는 풍성한 절기다.

풍요롭다. 넉넉하다. 사람들 마음 역시 정겹고 훈훈하다.

삶이 아무리 지치고 어렵고 팍팍해도 그렇다. 풍요로운 계절에 풍성한 인정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정겹고 행복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고향은 싱글벙글이다. ‘방가방가’ 왁자한 해후(邂逅)가 시끄럽지만 감칠맛이다.

마을마다 익어가는 웃음꽃이 농주처럼 은근하고 풋풋하다.

고향 냄새는 언제 들여 마셔도 반갑고 그립다. 코끝이 찡하고 마음이 눅눅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이처럼 고향냄새에 취해 있다. 고향에 젖어있다.

그리워하던 사람들의 만남은 더욱 반갑고 할 말은 밤새도록 쌓일 터이다.

그렇지만 설레는 명절에도 고향을 찾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고향을 잃어버린 실향민이 그렇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찾고 싶어도 찾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건 이들도 대한민국 같은 하늘 아래다.

이들에게서도 추석은 추석이고 명절은 명절이다.

마음으로라도 함께 나누어야 할 이웃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개운치가 않다. 돌아가는 나라 안팎 사정이 불안해서다.

북한 핵 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야기된 일련의 국내외 상황이 그렇다.

미국과 북한 간 ‘말 폭탄 돌리기’는 당장 상대를 요절 낼 듯 험악하고 아슬아슬하다. 이를 보고 듣는 쪽에서도 조마조마하고 오싹하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북 핵의 직접 이해 당사자인 한국이 속수무책 이라는 데 있다.

미·북 간의 분노와 증오와 적개심을 다스릴 수 있는 카드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북 사이에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다.

‘대화와 협력’, ‘제재와 압박’이라는 강온(强溫) 양면 전략은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다. ‘메아리 없는 공허한 헛소리’가 되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북은 아예 한국을 무시하고 있다. 대화 상대가 아니라는 식의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찰떡 한·미 동맹이라고 하면서도 북 핵 관련 한·미 공조는 어딘지 모르게 느슨하고 빈틈이 보인다,

미국과 북한 양쪽에서 한국을 밀어내 버리는 이른바 ‘코리아 패싱’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그러기에 더욱 고약하고 불안하고 씁쓸하다.

황금빛 이라 할 수 있는 역대 최장 추석 연휴의 ‘몹쓸 그림자’라 할 수 있다.

‘10월 위기설’이 공공연하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 안보 실장은 지난 27일 청와대에서의 여야 4당 대표와 만나 “10월 10일 혹은 18인 전후로 북한 추가도발이 예상 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이 이 시기에 핵·미사일로 도발 할 경우 한반도 안보 위기지수는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북한의 특기는 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뒤 대화를 모색하는 소위 ‘벼랑 끝 대화 전술’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 ‘벼랑 끝 전술’이 자칫 헛발을 디딜 경우 참화로 번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막다른 골목의 쥐’가 돌아서서 고양이에게 덤빈다는 속담이 있다.

‘북이 그럴 수도 있다’는 경고의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미-북간 우발적 무력 충돌을 경계하는 소리다.

그렇지 않아도 나라밖에서는 ‘한국전쟁 이야기’가 예사롭지 않게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일부 국민들 사이에서도 ‘전쟁생존 배낭’ 구입이 늘고 ‘생존 행동 요령’이 페이스 북과 인터넷을 통해 번지고 있다.

문재인대통령은“한반도에서 전쟁은 안 된다”고 했다.

지당한 말씀이다. 전쟁은 어느 일방이 아니고 양쪽의 멸망을 가져오는 재앙이어서 그렇다.

문대통령은 또 “대한민국 동의 없이 누구든 군사 행동은 못한다”고도 했다.

이 역시 주권국가 원수로서의 당연한 말씀이다.

그렇다면 전쟁을 막고 군사 행동이 없는 ‘한반도 평화 유지’ 해법은 무엇인가.

‘대화제의’도 소용없고 ‘제재와 압박 전술’도 안 먹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군사적 대칭 무기체계에서 한국은 북한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핵이나 생화학무기 등 비대칭 전력에서는 대비가 안 된다는 것이 현실적 분석이다.

이는 대화를 구걸하거나 ‘평화의 애걸’로 해소될 문제가 아니다.

‘힘의 균형’을 갖추는 게 정답이다. ‘핵에는 핵’이라는 ‘공포의 균형’이 해법일 수 있다.

자주 인용되는 잠언이지만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고 했다.

4세기말 로마의 베게티우스(Vegetius)의 말이다.

1600년도 훨씬 넘는 세월의 무게로 오늘의 한국 상황을 짓누르는 금언이 아닐 수 없다.

유비무환(有備無患)도 같은 범주로 읽혀진다.

‘죽기로 싸우면 살 것이요, 살자고 하면 죽을 것(必死則生 必生則死)’이라는 이순신장군의 말씀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