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읍 수산리 주민 오신범씨가 제주도청을 향해 외치고 있다.@제주투데이

지난 10일 제2공항 건설 반대위와 성산읍 주민들이 제주도청 정문 맞은편에 천막을 치고 무기한 농성에 돌입했다. 같은 날 성산읍 수산리 주민 김경배씨(제주제2공항성산읍반대위 부위원장)는 단식 투쟁에 나섰고 오늘(10일)로 단식 2일째를 맞았다. 곡기를 끊은 김경배씨를 격려하기 위해 많은 도민들이 농성 천막을 찾았다. 김경배씨 곁에서 릴레이 동조 단식도 이뤄지고 있다.

오늘 릴레이 동조 단식을 한 사람은 수산리에 살고 있는 오신범씨다. 수산리는 김경배씨가 살아온 난산리와 접해 있다. 둘은 제2공항 반대 투쟁을 하며 처음 만나 지금은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됐다. 형이 단식에 나섰는데 동생으로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라는 오신범씨는 20살 무렵 제주를 떠나 30년을 육지에서 살았다. 지금은 고향을 지키기 위해 육지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와 제2공항 반대 투쟁에 두 팔을 걷어 붙였다. 어린 시절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처럼 호기심이 많아 수산리 땅 밑의 동굴들을 탐험하길 즐기곤 했다며 옛 추억을 떠올리는 오신범씨.

그의 얘기를 듣는다.

 

왼쪽부터 오신범 제주제2공항성산읍반대위 홍보차장, 강원보 집행위원장, 격려 방문 온 문정현 신부, 김경배 부위원장.@제주투데이

 

-제2공항 반대운동을 위해 30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런 마음을 갖게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내가 70년생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갔다. 그렇게 30년을 지내다 이번 달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수술을 받으면서 확 늙었다. 2년 동안 만성 신우신염을 앓다가 2015년 5월 7일 신장이식 수술을 받았다. 신장이식 수술을 받으면 6개월 동안은 감염 우려가 있기 때문에 집에서 몸을 관리해야 한다. 그런데 그해 11월 10일 제2공항 용역 결과 발표가 나오면서 뭐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다 보니 그래도 남들보다는 시간이 있었다. 국토부에서 발표한 용역 보고서와 이런 저런 자료들을 샅샅이 훑었다.

 

-건강에 지장은 없었나. 몸을 쓰는 일은 아니겠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 같은데...

잠도 안 자고 관련 자료들을 살펴보다 보니 건강이 악화돼 세 번을 응급실로 실려가 다시 입원하기도 했다. 그렇게 연구한 제2공항의 문제점들을 알리다보니 어느 순간 사람들이 찾기 시작했다. 부담이 되었다. 건강 문제도 있고 해서 이 정도면 나로서는 할 만큼 한 것 아닌가 싶을 때가 있었다. 갈등이 많이 됐다. 힘없는 고향 주민들이 속상해 하는 모습과 온평리 출신 현관명 형이 마을을 지키겠다며 내려온 일도 마음에 오래 남았다. 내가 어떤 사람한테는 이제는 희망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기서 뒤돌아서서 보이지 않으면 다른 이들이 많이 힘들어질 수 있겠다. 외로워지겠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자. 그런 와중에 정부가 아무런 소통의 노력도 없이 제2공항 건설 추진을 강행하는 것을 보면서 결국 나도 제주로 돌아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본인 몸도 좋지 않으면서 김경배씨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 오늘 1일 단식에 나섰다. 지켜보는 마음이 각별하니 이 자리에 함께 하고 있을 텐데, 단식 중인 김경배씨를 보는 마음은 어떤가.

서로 얼굴도 모르던 사람이다. 육지와 제주에서 제2공항 막아내자고 전화통화 하면서 서로 형님동생하게 됐다. 경배 형의 진심을 안다. 이렇게 생업까지 포기하고 몸을 버려가며 나서는 절박한 마음을 안다. 경배 형이 격정적이고 울분을 참지 못해 어쩔 줄 몰라 쩔쩔맬 때도 있긴 한데 그 마음을 나는 안다. 2016년 구정 때 경배 형이 당시 박근혜가 살던 청와대 앞에서 제2공항 반대 문구가 씌어진 현수막을 펼쳐놓고 그 밑에 차린 차례상에 절을 하는 사진을 형이 보내줬을 때, 그때 정말 마음이 많이 아팠다. 나도 어제(10일) 점심부터 네 끼를 먹지 않았다. 경배 형의 진심을 알기에 내가 옆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함께하고자 한다.

(왼쪽부터) 연대 농성에 나선 제주참여환경연대 상근 활동가 김예환씨, 윤경미씨, 단식 농성 중인 김경배씨와 격려차 방문한 온평리 제2공항 비상대책위원.@제주투데이

 

-농성장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다.

제2공항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지지하며 함께하는 분들이다. 언제던가 형이 이런 말을 했다. 신범아, 예전엔 내가 혼자 청와대며 국토부며 다 쫓아다녀도 아무도 만나주질 않더니 반대위를 만드니까 그제야 만나주더라. 함께 힘을 모으는 것이 좋다는 걸 알겠더라고 말했다. 우리는 16개 지역 시민사회 단체가 함께 하는 제2공항반대도민행동에 많이 의지하고 있다. 이들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우리들의 문제 제기 방식, 정부에 대응하는 방식이 단순했을 것이다. 이들 덕분에 우리 스스로가 제주의 문제점들도 동시에 고민하면서 싸움을 생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곁에 서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늘 격정적이던 경배 형도 그나마 예전보다는 유해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시민단체는 한계가 있는 조직이라고 떠드는 사람들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정말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시민단체와 도민들의 연대 없이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고마운 마음이고 끝까지 함께할 것이다. 오늘은 문정현 신부님, 조경철 강정마을회장님 등 강정마을 분들도 오셨다. 정말 큰 힘이 된다.

 

-긴 싸움이 될 것 같은데, 무엇보다 건강을 또 해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컨트롤 잘 하고 있다. 나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면서 제2공항 반대운동을 계속할 것이다. 다만 내 전공(디지털신호처리 공학박사)과 경력을 제주에서 써먹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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