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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무일] 제주 표류인 이방익 이야기권무일/ 소설가
제주투데이 | 승인 2017.10.12 13:24

[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권무일/ 소설가, 역사소설 <의녀 김만덕>, <남이>, <말, 헌마공신 김만일과 말 이야기>, 수상록 <어머니 그리고 나의 이야기>, 평설 <이방익 표류기>

1797년 윤 6월 10일, 정조는 의주부윤으로부터 장계를 받는다. 제주도 북촌 출신 충장위장(정3품) 이방익이 지난 해 9월 제주바다에서 바람에 밀려 가뭇없이 사라진 지 8개월여 만에 압록강을 건너 의주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는 창망대해를 표류하다가 중국 남쪽 바다의 작은 섬에 닿았고 대만과 중국 남부의 여러 곳을 답파한 후 북경을 거쳐 만주를 통과하여 압록강을 건넜다는 것이다.

이 장계를 받아든 정조는 뜻밖의 사건에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 이방익을 만나보기도 전에 오위장(종2품)으로 한 품계 높이고 아울러 전주중군으로 발령했다. 이방익의 표류사실이 왜 정조를 흥분시켰는가?

조정에서 각종 행사에 군사를 거느리고 임금을 호위하던 이방익은 잠시 말미를 얻어 고향 제주를 찾는다. 우도에 있는 어머니 묘를 북촌의 선산으로 이장하기 위해서였다. 이방익은 고향사람 7명과 더불어 우도에 다녀오면서 뱃놀이를 즐긴다. 일엽편주를 빌려 타고 인근 바다로 나간 터여서 준비한 것은 술과 안주뿐이었다. 더욱이 배는 바람 따라 움직이는 작은 돛단배로 별도의 장비가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저녁나절 우도를 떠나오던 그들은 만취하여 선판을 두드리며 흥에 겨워 놀고 있었다. 그때 느닷없이 광풍이 불어 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배 안의 음식은 바람에 휩쓸려 날아가 버렸고 돛대와 삿대마저 부러져 버렸다. 배는 해안에서 멀어져 부침을 거듭하며 한없이 떠내려갔다.

표류한 지 오륙일 만에 큰 비를 만나 기갈을 면했고 다시 오륙일 만에 큰 물고기가 선판을 뛰어오르는 기적을 만나 경각에 죽을 목숨이 살아나는 행운을 맞았다. 정처 없이 표류하던 배는 16일 만에 대만해협의 팽호도에 닿았다.

이방익 등은 섬의 주민들로부터 정성스런 보살핌을 받았을 뿐더러 마조교 종교지도자인 마궁대인으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그들은 대만에 호송되고 다시 바다를 건너 중국 최남단의 하문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복건성을 지나 선하령 높은 고개를 넘어 절강성에 이르렀고 그 과정에서 빼어난 경관과 갖은 풍물과 역사가 서린 유적지를 볼 기회를 가졌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융숭한 대접을 받았고 특히 이방익은 분에 넘치도록 특별한 예우를 받았다.

양자강 하류 항주에 이른 이방익은 이왕 중국에 온 김에 역사가 서려있고 고사와 전설이 묻어있는 유적지와 옛날 중국을 뒤흔든 전적지를 답사할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 동정호를 찾았고 악양루에 올랐다. 되짚어오는 길에 그는 초‧한 그리고 삼국시대의 전적지를 돌아봤고 유서 깊은 사찰들을 두루 방문했고 기녀들과 뱃놀이를 하면서 흥취에 흠뻑 젖기도 하였다.

이렇듯 이방익은 조선시대를 통틀어 대만을 비롯한 양자강 이남의 중국을 처음 목격한 사람이었다. 이는 대단한 시대적 의미를 갖는 것이다. 조선시대 많은 지식인들이 강남을 이상향으로 삼아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지만 그것들은 실제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중국인들의 글과 그림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게 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방익이 본 으리으리한 관청, 삼엄한 군사시설, 고적과 유물, 사찰 등의 종교시설은 중국의 역사이며 문화이고 그가 엿본 풍물과 풍속은 중국의 살아있는 당시 모습이었다. 이방익의 표류담은 중국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한 당시의 국제적 상황, 중국사회의 변화, 백성들의 생활상, 중국의 포용적 정치상황까지 폭넓게 담고 있었다.

정조는 아직 조선에 알려지지 않은 중국 강남지방의 형세를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것이다.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고 백성이 잘 사는 사회를 만들고자 애쓰던 개혁적인 임금 정조에게는 이방익의 경험담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정조와 이방익의 만남은 그동안 중국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고 세계질서에 편입되어가는 중국의 정책과 실상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정조가 이방익이 구술한 내용을 가감 없이 『승정원일기』와 『일성록』에 남긴 것은 매우 의미 있는 것으로, 정조가 이방익의 중국 견문에 상당한 관심을 가진 연유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이방익의 표류담은 정조의 주도하에 신진개혁을 시도하던 당시의 조야에 조선의 현실을 반성적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고 조선의 지성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칠 만한 사건이었다. 실학파의 대가 유득공은 이방익의 체험담을 글로 써서 「이방익표해일기」를 남겼고 연암 박지원은 「서이방익사(書李邦翼事)」를 써서 임금에게 바쳤다.

연암은 이 글에서 이방익이 탐라 사람임을 지적하면서 옛 탐라국의 역사를 기술했다. 연암은 대만과 중국의 지리와 열린 세계를 더듬고자 했고 조선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중국의 남부에 대하여 이방익의 입을 빌려 알리려 했다. 그러나 연암은 이방익이 동정호를 찾아가 악양루를 보았고 양자강의 유적지와 전적지를 두루 답파한 사실을 믿으려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방익은 순한글 기행문 「표해록」과 기행가사(紀行歌辭) 「표해가」를 써서 남김으로써 자신의 편답행적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다.

「표해가」에서 이방익은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바다에 내동댕이쳐져 목적지도 없고 정처도 없으며 죽음에 이를지도 모르는 극한상황을 군더더기 없이 축약된 시어로 읊었다. 바다를 떠돌다 수몰될 절망감을 넘어 당장 기갈로 인하여 목숨이 간당간당하는 긴급 상황을 그렸고 기적적인 일이 벌어져 기갈을 면한 장면을 간결하게 처리했다.

그는 팽호도에 표착하여 대만과 중국대륙을 거쳐 고국에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에서 중국의 문물‧제도‧풍속‧인정‧도중의 퐁경과 고적 등에 대하여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을 삽입하고 제어할 수 없는 감흥을 솔직하게 읊었다. 자신의 기행과정을 운율에 맞춰 쓴 그의 문장에는 웅장한 필치와 시적 감흥이 돋보인다.

또한 이방익은 자신의 기행체험을 순 한글로 남겼다. 그의 「표해록」을 읽어보면 낱말 하나하나, 구절 하나하나, 그 조합의 미묘함에 감탄과 놀라움을 갖게 되며, 낱말의 선택과 언어구사 능력, 그리고 많은 경험과 독서를 통하지 않으면 갖출 수 없는 어휘력은 여느 문장가를 뺨칠 정도로 능수능란하다. 그의 이 두 작품은 한국문학사 및 국어학사에 중요한 의미를 주는 것이다.

당시 조선에서는 이방익의 표류기를 통하여 대만해협과 양자강 지역이 경제와 문화의 풍성한 중심지로 동력을 가지며 중국의 남부에서 새로운 세계질서가 태동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는 바, 그 후 100여 년간 이방익은 중앙의 지식인들과 뜻 있는 사람들에게 회자되어 왔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제주에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이방익 사후 200여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이방익의 작품을 심도 있게 연구함으로써 그의 행적과 생각과 지식을 따라가면서 그가 제주인에서, 조선인으로, 다시 세계인으로 변화해가는 인식의 궤적을 탐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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