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양길현 교수/제주대학교 윤리교육과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고 제주담론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I.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어제와 오늘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다 통일에 대해 각자 나름의 생각이 있고, 의견을 갖고 있다. 단지 좀 더 체계적으로 고민해 보는지의 차이만 있을 뿐. 그래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평통) 자문위원은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누가 위촉되는 지를 보면 정치권의 나눠 먹기가 비일비재하다.

평통은 박정희 정부 때의 통일주체국민회의를 기원으로 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그러한 관제 기구라는 이미지가 없지 않아, 그 헌법적 위상에 비해 역할은 미미하다는 게 중론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는 헌법 기관이라는 이유로 평통 자문위원은 남다른 긍지와 책무를 갖는다. 다만 지난 평통의 이모저모를 되돌아보면, 과연 역대 대통령이 평화통일 자문기관인 평통에 얼마나 의견을 구하고 활용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많다. 평화통일 과제의 중요성 때문에 평통을 헌법기관으로 존치할 뿐이지. 실제에 있어서 통일 문제는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몫으로 되어 있다.

필자는 노무현 정부 때 4년 평통 자문위원을 했었다. 그러다가 올 2017년 가을에 제18기 평통 제주지역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었다. 다시 또 자문위원 한다고 크게 신통한 것도 없지만, 그래도 이번에 자문위원을 맡게 된 데에는 2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필자가 제주대에서 북한 및 통일론을 가르치고 있다는 직업상의 이유이다. 학교에서의 강의 이외에 제주도민들과 북한과 통일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일에 관여하는 것도 전문가로서 사회봉사의 하나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의 연구를 접하고 또 학생들과의 수업에 덧붙여 도민들의 생생한 현장 의견과 논지를 공유함으로써 북한과 통일을 향한 필자의 생각과 정보의 폭을 넓히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다.

다른 하나는,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간 한반도의 민주평화통일의 가능성이 그 전에 비해 크게 멀어져가는 걸 안타깝게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랜들리 기조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이 멈추고, 박근혜 정부의 대북 신뢰 프로세스 정책이 허공에서만 맴도는걸 보면서, 답답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 촛불시위 덕분에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민주평화통일로의 접근에서 과거와는 다른 행보를 보일 것으로 기대한 만큼, 혹 미래지향적 평화통일 흐름에 멀리서라도 동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9월 초에 새로이 평통 자문위원으로 위촉된 이후, 지난 주 금요일 평통 자문위원 연수를 한다기에, 조금은 기대를 갖고 참석하였다가, 여전히 2%의 부족만 확인하고 말았다. 평통을 통해 자문위원들이 서로 긍지와 보람을 갖도록 하기에는 준비가 부족하고 여전히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분위기 자체가 촛불처럼 타오르려는 강렬함이 크게 부족해 보였다. 남북한 정상회담까지 이룬 김대중 정부에 이어 지방분권 강화를 외친 노무현 정부 때에는 지방에서의 평화통일 열기를 담아내려는 그런 미래 찾기 열정이 넘쳤었는데,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이라는 극적인 역동성에 비해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이 밋밋해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나마 마지막에 한 20분 정도 진행된 자문위원들과의 정책포럼이 빛을 발해, 자문위원 첫 연수는 가까스로 면피는 하였다. 그래서 여기서는 마지막 20분에 초점을 맞춰, 평통 자문위원 연수에 참여한 필자의 논평을 하고자 한다.

II. 평화통일과 북핵 입구-출구론

북핵 문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입장이 무엇인지 보다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온건한 이미지 때문인지, 아니면 청와대의 홍보 부족 때문인지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대북 민주평화통일 정책은 모호하다는 인상을 주는 경우가 많다. 특히 지나치게 미국을 의식하고 트럼프 대통령과의 공조를 염두에 두느라, 문재인 표 특유의 비전을 강하게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문위원 연수에서 주된 논점이기도 하고 또 많은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바, 북핵 문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입장이나 정책을 중심으로 몇가지 점검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막아야 하고 또 한반도에서의 평화는 어떻게든 고수하겠다는 걸로 요약된다. 전쟁반대와 평화고수는 꼭 문재인 표 정책이라고 주창하기에는 너무나 지당한 논지이다. 그러나 워낙 트럼프와 김정은의 강경대결이 언론 1면을 채우고 있어서, 불안해하는 국민들에게 전쟁 반대의 확실한 메시지를 주는 건, 현 북미간 대결국면에서 크게 일리가 있는 정책 입장이다.

그럼에도 전쟁반대=평화고수라는 일차적이고 소극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보다 담대한 한반도 평화 구상은 부족해 보인다. ‘한반도에서 전쟁만은 막겠다’는 소극성을 넘어서서 한반도에 어떤 내용과 특성을 담은 평화를 건설하겠다는 문재인 표의 적극성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문정인 특보나 반기문 전 유엔사무 총장을 대북 특사를 보내고 미국은 카터 전 대통령을 특사로 보내, 문재인-김정은 정상회담과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을 추진해 나가는 일련의 움직임은 왜 안 보이는지? 지방분권 시대에 맞춰 먼저 세계평화의 섬 제주의 감귤 보내기를 재개하도록 하는 한편으로 강원도, 인천, 경기도 접경 지역 등에서 그동안 준비해 온 남북한 교류협력의 틀을 적극 보장해 주는 새출발은 왜 안 되는 것일까?

지난 20년처럼 대북 정책은 여전히 중앙정부, 특히 청와대의 고유 영역으로 신성화하고 있는 기존 인식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김정은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지방경제특구에 우리의 지자체가 각자 역할 분담으로 동참하도록 하는 그림을 보여줄 수도 있을 텐데. 한반도 평화는 핵에 의한 공포의 균형 같은 군사적 접근보다는 경제적, 외교적 접근으로 상호의존을 증진하는 데서 가능할 것임을 재확인하고, 그렇게 하자고 북한을 설득하고 국제사회에 지원과 협조를 요청하는 광폭 행보가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은 미국 편승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나름 일리가 있어 보임에도, 구호와 실제가 따로 겉돌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지나치게 우리 주도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만큼이나 툭하면 한미동맹에 매달려 미국 따르기로 끝나서도 안 된다. 김정은과 햄버거 회담을 언급했던 프럼프 만큼이나 미국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김정은과 먼저 만날 수 있다고도 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아닌가. 김정은과 먼저 만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하루라도 앞당기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답답하다는 게 문제이다.

다행히도 논쟁은 있지만, 평통 자문위원 연수 마지막에 이정철 숭실대 교수가 지적한, 이른바 ‘북핵 입구-출구론’에 그 가능성과 유용성을 점검해 보면 다음과 같다. 한마디로, 입구는 동결이고, 출구는 폐기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북핵 해소 과정을 하나의 터널로 생각하면, 우선 터널 입구에서는, 북한은 북핵을 동결하기로 하고 한미는 공동군사훈련을 자제한다. 이 터널이 얼마나 길고 얼마나 어두운 지 또는 그 터널 안에 어떤 예기치 않은 장애물들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종국에는 출구가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일정한 시간 동안 상호 신뢰 쌓기를 통해 종국에는 북핵 폐기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북핵 입구-출구론은 북한이 핵을 폐기하지 않으면 대화-교류-협력이 없다는, 지난 20년에 걸친 일방적이고 ‘전부 아니면 무’(all or nothing) 접근과는 다르다. 그것은 우선 입구로 들어가서 긴 여정을 거쳐 출구로 나아가는 단계적-점진적-과정중심적 접근으로, 그만큼 용기와 인내를 요한다. 문제는 우리와 미국의 정치권이 이를 용인할 인내와 담대함 그리고 장기적 관점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북핵 입구-출구론과 관련하여, 이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미국 방문 길에서 이를 50% 정도 수용한 바 있다. 여기서 필자가 50%라고 얘기하는 이유는, 문재인 대통령이 “핵동결은 대화의 입구이고 출구는 완전한 핵폐기”라고 언명하면서도 “북한의 핵동결과 한미간 군사훈련은 연계시킬 수 없다”는 입장을 동시에 내놓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과거처럼 한 방에 핵폐기를 도모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핵동결에 따른 어떤 반대급부도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문재인 정부의 북핵 입구-출구론은 반쪽에 머물고 있다. 그 결과 시간은 서로간에 대치만 지속되고 평화는 요원한 것이 현금의 정세이다.

그렇다면 지난 제18기 평통 자문위원 연수는 현금의 정세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의 상식적이면서도 건설적인 의견을 모으는 것이야 했다. 전문가에게 묻고 대답을 구하는 걸 넘어서서, 문재인 정부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 지에 대한 자문위원들의 자문 의견을 모아 청와대에 전달하는 게, 헌법기관인 평통 자문위원의 역할이자 사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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