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만세’/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인정하는 데 있는데//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시인이 우겨대니//나는 잠이 올 수밖에//‘김일성 만세’/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인정하는 데 있는데//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관리가 우겨대니//나는 잠이 깰 수밖에”

4·19 혁명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1960년 10월. 김수영은 ‘김일성 만세’라는 시를 썼다. 이 시는 당시 개혁적 언론이었던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조차 게재를 거절했다. ‘이승만 하야’라는 혁명의 가시적 성과로 승리에 도취됐던 상황에서 김수영은 ‘김일성 만세’를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한국 언론,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말하고 있다. 반공국가 대한민국이 만들어낸 ‘빨갱이’라는 금기, ‘북한’이라는 혐오의 언어마저도 넘고자 했던 시인의 치열한 언어는 결국 김수영 사후인 2008년이 되어서야 독자와 만날 수 있었다.

현대사 전공자들은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남한 정권의 수립을 반공체제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확립이라는 과제를 동시에 수행해 간 역사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우리 사회는 금기를 ‘발명’해 냈다. 반공국가 대한민국은 ‘빨갱이’라는 혐오를 먹고 사는 숙주였던 셈이다. 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빨갱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했던 시대. 그 시대의 아픔이 제주 섬에 새겨진 것이 바로 제주 4·3 항쟁이었다.

제주도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이상봉, 박원철 의원은 이문교 제주 4·3 평화재단 이사장에게 제주 4·3이 사건이냐, 항쟁이냐고 따져물었다. 이문교 이사장의 답변은 어정쩡했다. 아직 이념적 갈등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70년이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제주 4·3은 금기의 언어 안에 갇혀있다. 우리는 지금도 정명(正名)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정명의 언어를 발화하지 않는 정명의 유예 상태를 목격하고 있다.

금기는 혐오를 낳고 혐오는 억압를 낳는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인사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놓았던 것도 바로 이러한 금기와 억압의 시대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금기의 시대는 불온하다. ‘빨갱이’라는 금기는 ‘종북 좌파’라는 형태로 진화하며 우리의 사유 체계를 지속적으로 억압했다. 새로운 정권이 탄생하면서 ‘종북 좌파’라는 금기가 힘을 잃자 보수 세력이 새롭게 발견한 혐오의 대상은 ‘동성애’였다.

보수 기독교 단체를 중심으로 일기 시작한 ‘동성애 혐오’는 유교적 가부장과 이성애 중심이라는 사상적 동거 속에서 새로운 혐오의 언어를 생산하고 있다. 제주시는 최근 제주퀴어 축제 조직위원회가 신청한 축제 사용허가 요청을 불허했다. 미풍양속과 도민여론에 반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지난 겨울 광장에서 울려퍼졌던 시민적 함성을 ‘촛불혁명’이라고 추켜세우면서도 지역사회, 특히 관의 인식은 이전과 하등 차이가 없다.

‘빨갱이’를 용납하지 않았던 시대. 그래서 제주도민 모두를 절멸시켜도 된다고 했던 권력의 언어와 동성애만은 안 된다면서 퀴어 축제를 불허하는 행정의 판단은 금기와 혐오라는 동일한 전제에서 발화되고 있다. 금기가 통용되는 사회는 음험하다. 혐오는 그 음험한 언어를 숙주로 삼아 기생한다.

50여년 전 ‘김일성 만세’를 썼던 김수영이 살아있다면 과연 어떤 시를 썼을까.

"‘동성애 만세'/우리의 자유의 출발은 이것을/인정하는데 있는데/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제주/도민의 여론이라고 제주시라는 행정이 우겨대니/나는 잠이 올 수밖에/'동성애 만세’/지역의 자유로운 상상은 이것을/인정하는 데 있는데//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자유라고 제주시장이란/관리가 우겨대니//나는 잠이 깰 수밖에"

제주 퀴어 축제의 성사 여부는 금기를 금지해야 하는 우리 사회 자유의 척도가 될 수밖에 없다. 금기는 또 다른 금기를 낳는다. 금기의 숙주는 금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제주 퀴어 축제가 열려야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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