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이양재 (李亮載) / 20세 때부터 고서화를 수집한 민족주의 경향의 ‘애서운동가’로서, 서지학과 회화사 분야에서 100여 편의 논문과 저서 2책, 공저 1책, 편저 1책 있음. 현재 ‘포럼 그림과 책’ 공동대표, ‘고려미술연구소’ 대표.

탐라국은 해양의 한 복판에 있었고, 탐라국의 사신들이 백제와 신라에 드나들었다. 당연히 탐라국에는 목조 선박을 제조하는 조선소가 있었고, 탐라국은 항해술을 갖춘 해양 국가였다. 즉, 탐라국 사람들은 항해에 필요한 천문지식과 바닷길, 즉 해류(海流)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해양사를 검토해보면 “해수위(海水位)는 오르락내리락했다”고 한다. 즉, 2000년 전 탐라국시대에는 지금보다 해수위가 10~12미터는 더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가설로 설정하면 2000년 전 제주의 해안선은 지금과는 상당히 달라진다. 즉, 지금의 관덕정 일대라든가 동문시장은 해수 아래였고, 용두암(龍頭岩)이라든가 용연(龍淵)도 당연히 수면 아래에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현재 제주에 선사시대 유적이라든가 고인돌 등등이 해발 13~15미터 아래에는 하나도 없다.

해양국가로서의 탐라국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서는 2000년 전 제주의 해안선이 지금과 다르다는 명제 하에, 우리는 탐라국 시대의 포구(浦口)를 유추해 보아야 한다.

즉, 우리가 탐라국의 실체에 접근하려면 지금 제주의 해발 10~15미터 지점에서 고대 목선(木船) 조선소와 고대 항구나 포구를 찾아야 한다. 목선 건조에 필요한 나무를 쉽게 조달할 수 있는 곳으로 배를 안전하게 건조하고 수리하여 보관할 수 있는 곳……. 당연히 조선시대의 항구나 포구와 인접한 지역일 수도 있을 것이다. 동시에 2000년 전의 해수위를 미루어 볼 때 조선시대 항구나 포구가 아니었던 곳에 고대 목선 조선소가 있었을 수 있다. 어떻든 지금의 제주의 해안 인근에서 탐라국시대 목선 조선소 유적과 그것을 입증할 약간의 자료가 발굴된다면, 이는 탐라국 실체 규명에 매우 획기적인 발견이 될 것이다.

현재의 제주가 너무 개발되어 옛 형체가 흐트러져 가고 있어서, 고대 조선소 탐사가 가능한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숲에서 나무를 벌채하여 장마철에는 하천으로, 겨울철에는 설원으로 옮길 수 있는 위치에, 그리고서도 배를 건조한 후 곧바로 바다로 투입하여 해류를 이용하기 좋은 위치의 해안에 목선 조선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목선 조선소는 조선말기의 목선 조선소 보다 해발이 높은 인근 장소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조선소 인근에는 제주의 풍속으로 보아 신당(神堂)이 가까이 있었을 것이다.

동북아시아 문화권에서 용(龍)은 해신(海神)을 의미한다. 해신을 상징하는 ‘용’자가 지명에 들어가는 지역이 제주에 몇 곳 있다. 제주시 용담동의 용두암과 용연, 제주시 한경면의 용당리,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의 용머리 해안 등등의 지역이다. 이 가운데 본향당(本鄕堂)이 인근에 있는 지역은 제주시 용담동 하나뿐이다.

탐라국시대에 용두암이 수면 아래에 있었다면, 용두암은 일반인들보다 잠녀(潛女 ; 海女)들을 통하여 먼저 알려졌을 것이며, 특히 잠녀들은 용두암 일대를 상당히 신성한 구역으로 여겼을 것이다. 당연히 지금의 용담 3동 다끄네마을에는 본향당이 있었다. 다끄네마을은 지금 공항 동편 해변가 마을이다. 용담 본향당 주위의 용담 2·3동에는 6기의 고인돌이 흩어져있다.

용담 본향당 동쪽으로 용두암과 용연이 있고, 용연의 상류는 한천으로 한라산 북벽에까지 이른다. 용연의 동쪽으로는 조선시대 말까지만 해도 배가 드나들었던 산지천 하구(河口)가 있다.

필자는 용연이나, 혹은 용연에서부터 산지천 하구 사이에 탐라국시대의 조선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물론 이곳 외에도 제주의 지리상 탐라국시대의 조선소가 몇 곳에 더 있었을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가장 확실한 고대 목선 제작소의 위치와 이를 입증할 자료를 확인해 내는 일은 탐라국의 실체를 규명하는데 매우 중요한 일이다.

제주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이고, 탐라국은 해양국이며, 해신의 상징인 ‘용’자가 들어간 지명도 있는데, 제주에서 아직 ‘용(龍)박물관’을 세우겠다는 사람은 없다. 우리나라의 옛 미술가들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의 옛 미술가들도 용을 형상화한 많은 미술품을 창작하였다. 용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수(繡)를 놓았고, 도자기에도 용을 그려 넣었다. 용과 관련된 공예품이나 민예품도 수작이 적지 않다. 아울러 용을 주제로 하였거나, 용에 비유되는 인물을 주제로 한 문학 작품도 상당수 있다. 우리 민족에게서 용이 갖는 의미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용의 의미와 전혀 다르다. 이 점은 오해 없기를 바란다.

필자는 제주의 독지가가 나서서 이러한 여러 자료들을 모아 용두암 인근에 ‘용박물관’을 세웠으면 한다. 그런데 제주에는 제주에 있을 법한 ‘용박물관’은 없고, 제주의 문화에도 없는 인어(人魚)를 현무암에 조각한 ‘인어공주상’은 여러 군데 세워져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안데르센 동화의 ‘인어공주상’을 흉내 낸 것이다. 제주에 ‘인어공주상’이 있다는 것은 제주가 서구문화에 이미 침탈되었음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 보는 필자로는 아연실색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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