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몰디브 함덕해수욕장'

은빛 백사장, 잔잔한 파도, 맑고 깨끗한 에머랄드빛 바다

한라산의 품 안에 들어오는 해안선이 아름다운 

해변을 낀 제주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함덕해수욕장 캠핑장은

여름이 지나간 자리가 아쉬운지 여전히 카라반이 자리를 지킨다.

함덕 큰사시미(와요지)를 출발지점으로

창구녕난돌까지 순박하고 따뜻한 북촌마을 속으로 들어가본다.

와요는 서모오름(서우봉)의 서쪽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지점에 위치한다.

'웨' 혹은 '와'는 기와(瓦)의 뜻으로 현무암과 진흙을 빚어서 가마를 축조하였다.

불을 지피는 화구(火口)부분은 남아 있지 않고

암키와와 수키와가 주로 구웠졌던 것으로 보인다.

함덕해수욕장 동편에 가로누운 서모오름(서우봉)

함덕리와 북촌리의 경계에 걸쳐져 있고

표고 111m, 비고 106m로 2개의 봉우리가 솟아있는 원추형 화산체이다.

서모오름을 한자표기에 따라 '서산'이라 표기했다.

완만한 등성이가 크게 두 봉우리를 이루고

남쪽 봉우리는 남서모, '서산봉수'가 있었던 북쪽은 망오름이다.

오름 기슭에는 계단식 농경지가 조성되어 있다.

서모오름 정상에서 바닷가로 향한 해안절벽에는

세찬 바닷바람을 이겨내며 강한 생명력으로 잘 버텨내는

상록의 도톰한 잎사귀를 달고 한쪽으로 쏠린 우묵사스레피나무가

숲터널을 이루고 있어 어둡지만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여름(6~8월)에 피었던 하얀꽃은 검게 익어가는 중이다.

열매가 쥐똥같고 바닷가나 섬에서 자란다고 해서

'갯쥐똥나무' 라고 불리기도 한다.

서모오름은 봉우리를 기점으로 동쪽은 북촌리, 서쪽은 함덕리이다.

몬주기알 절벽 아래에는 입구는 작지만 내부가 비교적 넓은 천연동굴이 있어

4.3당시 북촌주민들과 함덕주민들이 숨었던 장소로

썰물일 때 해안가로 접근이 가능하다.

 

절벽 아래에는 바다가 그리운지

갯고들빼기가 노란빛깔로 길손들에게 잠시 쉬어가라 눈짓을 하지만

한 켠에 버려진 쓰레기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태평양전쟁 말기(1945년) 일본군이 결7호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북촌리 서모봉 등사면에 인근 마을주민들을 동원하여 만든

대장굴, 탄약고, 왕(王)자형 진지동굴과 어뢰정용 진지동굴 등

20여 개가 있으며 상태가 양호하다.

가장 접근하기 좋은 진지동굴은 굴 입구가 3개인데 내부가 연결된 왕(王)자형으로

마을사람들은 '삼형제굴'이라고도 한다.

비취빛 물결 영롱이는 해동마을

해동은 북촌리 설촌의 원류이며 서모오름 기슭에

삶의 터전을 이룬 전형적인 반농반어 마을이다.

서북풍을 막아주는 서모오름과 풍부한 수산자원의 보고인 다려도가 있어

천혜의 자연조건을 지닌 곳으로 자연적인 포구가 발달하였다.

 

오랜 설촌 역사와 수려한 자연과 문화를 지닌 북촌마을

동쪽은 동복리, 서쪽은 함덕리, 남쪽은 선흘리와 인접해 있고

북쪽으로는 해안을 끼고 해동, 본동, 한사동, 억수동 등 4개 자연마을로 이루어진

바위섬 '다려도'를 품은 유서 깊은 마을이다.

명절처럼 제사를 한 날 한 시에 지내는 북촌마을은

4.3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하다.

마을 뒤, 또는 북쪽에 있는 포구라는 의미로

뒷개라 불렀으며 한자로 표기하며 북포(北浦), 북촌(北村)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신석기시대의 바위그늘 유적지인 고두기엉덕,

해안가의 환해장성, 마을 포제와 영등굿의 세시풍속을 보존 계승하고 있는

전통있는 마을로 용천수가 풍부한 반농반어의 마을이다.

예전에는 용출량이 많아 해동 주민들이

식수 및 빨래터로 이용하였지만 주변 영향 등으로 인해 용출량이 현저히 줄었다.

일제진지동굴 구축 시 일본군 대장이 먹었다 하여 '장군물' 이라고도 불린다.

북촌 환해장성은 고려시대부터

시작하여 조선시대까지 계속 축성하였으며

왜구 등 바다로부터 오는 적의 침범을 막기 위한 시설이었다.

북촌 본동과 해동 사이 바닷가에 있는 개(포구)를 말한다.

가릿당은 북촌마을의 본향당으로

이 곳의 신들은 북촌마을 사람들의 삶과 죽음, 호적과 피부병,

육아, 해녀, 어선 등을 관장한다.

북촌마을 포구 서쪽 구짓머루 동산에 위치한 옛 등대로

이 곳 포구에 세워진 등명대는 속칭 '도대불'이라 한다.

바다에 나간 고기잡이배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 

1915년에 마을사람들이 세웠다. 

처음에는 솔칵으로 나중에는 석유 등으로 불을 밝혔다.

도대불 위에 세워진 비석에서 4.3의 흔적 총탄자국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다려도는 3~4개의 바위섬으로 이루어진 무인도로

마을 해안에서 400여 미터 거리에 있으며

풍부한 해산물을 제공해 주고, 다양한 철새들의 월하, 월동지로

북촌리 마을 자원을 대표하는 보물섬이다.

용출량이 풍부한 용천수는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집수, 보호시설이 되어 있어 식수와 생활용수로 이용하였다.

돌담 아래에는 하얀빛과 분홍빛 덩이괭이밥이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모습으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조그만 용천수로 생이(참새)가 먹을 만큼 용출량이 적어 붙여진 이름이다.

중동 해안가에 있는 용천수로

용출량이 풍부하고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집수, 보호시설이 되어 있어서 생활용수, 여름에는 여자전용으로 이용되었다.

너븐 빌레 동쪽에 있는 용천수로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집수, 보호시설이 되어 있어

식수와 생활용수로 사용되었던 물이다.

 

바닷가 염생식물들은 검은현무암 위로 뿌리를 내리고

세찬 바닷바람과 짠내나는 바닷물을 뒤집어쓰고  

말없이 고향 바닷가 지킴이가 되어준다.

창을 뚫어 놓은 듯한 기암

창꼼을 통해 보는 다려도와 어우러진 석양은 비경이고

'창꼼알'이라는 주변 조간대는 해산물이 풍부하다.

천혜의 섬 다려도를 품은 아름답고 유서 깊은 북촌리

작지만 아름다움과 소박함이 묻어나는 어촌마을 북촌리

마을길을 걷는 내내 목이 메이도록 가슴 먹먹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가 사셨던 아픈 고향을 기억하며...

'편가르지 말앙 살암시믄 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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