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복 제주신광교회 전도사

교직에 있을 때 나는 주로 독서교육 업무를 맡았었기에 학생들이 읽는 책에 늘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독서 시간에는 아이들이 읽는 책의 제목을 간혹 들춰보곤 했다. 제목과 겉장과 머리말만 봐도 어느 정도는 파악이 된다. 그래서 좋은 책은 흐뭇한 미소로 격려해 주고 나쁜 책은 그 책이 왜 나쁜 책인지를 말해주어서 그만 읽도록 지도하곤했다. 어느 날 우리 반 여학생 K가 심취해서 읽는 책이 눈길을 끌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책은 일본인 작가의 소설이었는데 잘 다듬어진 문체였고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며 중간 부분 어디에서라도 독자를 끌어들이는 흡입력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잠시 그 책을 들춰본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그 책은 여학생들의 동성애적 관계를 미화한 소설이었다. '설마 K 네가...?' 하며 K의 얼굴을 들여봤는데 K는 여전히 꿈에서 덜 깬 듯한 표정이었다. 스스로 나쁜 책인 줄을 인식하고 있었다면 선생님에게 뺏기기라도 할까봐 마음 졸이고 있어야 할텐데 오히려 책에 매혹되어 있었고 아무 잘못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너 아직 여기까지는 안 읽었니?"
"네. 아직...."
그러면서 내가 짚어주는 일부분을 읽은 그 아이의 표정에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되었다. 주변의 아이들이 유심히 보고 있었기에 K를 따로 교무실로 불러서 설득했다.
"K야, 이 책은 문장이 멋져서 좋은 책 같아 보이지만 내용은 여학생들의 동성애를 그린 책이라서 나쁜 책이란다. 그러니 이제 그만 읽는 게 좋겠구나. 너에게 돌려주면 다시 읽고 싶어질테니 학년을 마칠 때까지 내가 보관하거나 부모님께 돌려주마."
보통은 이럴 때 다신 안 읽겠다고 잘못을 빌며 빌려온 책이니 책만은 돌려달라고 사정을 한다. 그러면 내가 책값을 주인에게 직접 주겠다고 하며 안 돌려주는 게 내 방법이었다. 돌려주면 친구들과 돌려 읽을 것마저 염려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K는 달랐다.
"동성애가 뭐 어때서요? 선생님?"
당당한 K의 표정에 내가 더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그것은 대항이거나 반발 이전에 정말로 동성애가 나쁜 이유를 몰라서였을 것이다. 우리 세대에는 자연스럽고 당연하고 보편적인 진리가 새로운 세대에게는 확인시켜 주어야 인식하는 다른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한참을 설득했다. 하지만 그래도 K는 쉽게 수긍하려들지 않았다. 진리 토론에서 밀리면서도 물러서지 않는 뒷배경이 있었다.
"그 책, 일본 문단에서 상 받은 책이에요. 공공도서관에서 빌려왔고요."
책을 건네받을 때부터 나도 겉장에서 캐취한 터였다. 그런 작품에 상을 주는 일본 문단에 대해 한숨이 나오지만 내가 어쩌랴. 하지만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 학생에게만은 더욱 그 책을 돌려줄 수가 없어서 마침내 어머니를 오시게 해서 돌려드렸다. 마지막까지 안타까웠던 것은 그 어머니의 표정에서 뭘 그까짓걸 가지고 그러냐는 마음이 읽혀져서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시립 도서관에서 학교도서관에 대하여 다량의 도서를 장기간 대여해주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마침 신설 중학교인 우리 학교는 도서관에 책이 부족했기에 나는 기뻐하며 얼른 결재를 받고 신청서를 냈다. 그래서 천 권의 책이 들어왔고 교장선생님은 넉넉한 서가를 바라보며 좋아하셨다. 그런데 정작 일을 낸 내 마음 한켠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도서 목록을 넘겨받고 일일이 검수를 하며 꺼림칙한 책 몇 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공공도서관에서 학교를 대상으로 대여 사업을 벌이는 것이라 설마하면서도 혹시나하는 마음이 커서 책을 따로 두었다.
책 제목이 '형제'였던가? 프랑스 소설인 그 책은 평범한 제목이었지만 내용은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다. 그 책도 프랑스 어느 문단에서인가 상을 받았고 문장은 수려했다. 내용은 친형제간의 동성애를 다룬 것이었다. 혹시나해서 확인해 본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공공도서관 사서만 탓할 수 없을 만큼 출판의 홍수 시대이니 나쁜 책이 슬그머니 들어오는구나 하며, 나는 그 책을 숨겨서 별도 관리를 했다. 

언제인가는 교실 수업에서 동성애가 나쁜 이유를 알려준 적이 있었다. 그런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성적인 것에 민감해지는 나이의 아이들이니  가르치는 의도가 어떻든 괜한 상상을 일으킬까봐 최대한 이성적 작용으로 기울이며 말해야 한다. 아마도 대다수는 동성애가 뭔지도 모를 줄로 여기면서 예방 차원에서 말해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듣고나서 아이 하나가(그 아이는 그 학급의 이른바 '짱'이었다.) 주변의 아이들 얼굴을 쓰윽 둘러보며 꾹꾹 누르는 듯이 하는 말이,
"야, 너희들 동성애에 관심 갖지 말아라. 알았냐?"
이러는 거다. 주변의 아이들은 애써 무표정이었으나 그 아이의 눈빛에는 미처 숨기지 못한 장난기가 남아 있었다. 그것으로 더는 아무 말 않고 교과 수업을 진행하면서도 나는 그 아이의 말과 뉘앙스와 표정에서 간단치 않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청소년들은 이미 급속하게 동성애에 노출되고 있다. 문화매체를 통해 동성애는 낭만의 옷을 입고 청소년을을 속이고 있다. 애니메이션에는 폭력이나 과잉된 성욕과 함께 동성애 코드가 들어 있다.
웹툰이 새로 나오면 수십만~백만 여명의 어린이 청소년들이 다운로드를 한다. 더 건전해 보이는 매체들에서도 동성애 코드는 흔하게 발견된다. 아름다운 낭만인 양 다가오고 한편으로는 인권으로 합리화된 주장을 접하며 경계심이 풀린 후에는 보다 직접적인 접촉에 무방비 상태가 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기성세대가 올바른 성교육을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보편적 진리가 무너지고 어두운 시대이다. 당연한 것을 당연히 교육해야 하는 시대이다. 성도덕이 무너진 사람은 다른 어떤 도덕성도 유지할 마음이 없어지게 된다. '이왕 버린 몸'이 되는 것이다. 자존감이 스스로 무너져버려서 고귀한 가치를 추구할 기력을 잃는다. 그런데도 공교육 내에서 성도덕 교육의 부재는 정말이지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 2015년에  늦게나마 교육부가 '성교육 표준안'을 낸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불과 한 해가 지났을까말까한 이때에 '성교육 표준안'에 당돌하게 태클을 거는 단체들이 있다. 그 단체들은 '성교육 표준안'을 폐기하든지 자기들의 가치관을 끼워넣으라고 압박한다. 끼워 넣으라는 그 내용을 보자.

▲십대 여성의 성을 임신출산을 위한 것으로 환원하지 말 것 ▲이성간의 결혼, 출산, 양육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속하니 고칠 것 ▲이성간의 동거 등의 다양한 가족 형태를 가르칠 것 ▲성을 여성과 남성으로 이원화하고 성적 관계를 이성애적 관계로 한정하지 말고, 성적 다양성이란 이름으로 동성애, 트랜스젠더 등을 가르칠 것 ▲청소년에게 성관계를 자제하라는 금욕 강조 교육은 비현실적이라는 것 등.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고밖에 할 말을 잃게 한다. 미국 성소수자 단체들이 매춘을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라며 매춘을 지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바 있는데, 우리나라도 저들의 주장을 용인해주면 어느새 그런 꼴을 봐야할지 모른다. 올바른 명분이 없는 것을 가지고도 저토록 당돌한 저들의 운동성에 우리는 기겁해야 한다. 

이제는 자녀들에게 말하자.
"동성애는 정상 가정의 기초가 될 수 없어. 그건 비정상적 관계이다."
"자녀를 낳는 가정을 이루어 행복을 누릴 줄 알아야 행복한 거다."
"동성애는 순결한 결혼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한다."
"동성애는 가정과 사회를 파멸로 이끌고 국군을 교란시킨다."  

내 자녀는 예외인가? 내 자녀만 자녀가 아니다. 썩은 과일 하나로 상자의 모든 과일이 속히 부패하듯이 아이들은 상자 속 과일처럼 밀착되어 있다. 내 자녀를 통해 모든 자녀들에게 힘주어 말해 주자. "동성애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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