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양영수/ 전, 제주대 교수, 소설가

필자는 제주대학교 교문 앞의 번화한 상점가를 지날 때 오가는 사람들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는 버릇이 있다. 빵집, 밥집, 카페를 비롯하여 먹고 마시는 가게들이 즐비하고, 뭐하는 업소인지 알 수 없는 곳들도 많다. 수십 군데는 될 것 같다.

필자가 이곳 상점가를 둘러보면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여기에 출입하는 고객들은 한결같이 젊은이들이라는 것이다. 대학교 교문 앞 상점가의 고객층이 젊은이들이라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다는 말이다. 필자가 제주대학에 근무하던 시절 어느 여름 날 보았던 광경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미국에서 온 초빙교수 두 사람이 이곳 어느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가게 앞 테라스 긴 의자에 퍼질러 앉아서 먹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채로웠다고 기억된다.

그 때 이후 내가 이 일대를 지날 때에 유심히 둘러보지만 어른 세대 손님이 이곳 업소에 출입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제주대학에는 교수와 직원들, 연구원들까지 하면 나이든 어른 세대가 1천 명 정도 근무하고 있는데도 그랬다. 몇 번 기웃거려 본 제주시청 앞 소위 ‘대학로’ 번화가도 비슷한 것 같다.

한국사회에 만연된 신구세대간의 불통현상은 아마도 박정희 시대 압축성장의 여파가 아닐까 한다. 고도성장의 혜택 뒤에 숨은 암울한 면이다. 유럽에서 300년 걸려 이룬 산업화 과제를 30년 만에 이루지 않았는가. 고속성장 사회에서 시대변화가 빨리 이루어지면 바로 앞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많은 것을 뒷 세대가 경험하게 되므로 세대차가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70대 초반인 필자의 경험만 보더라도, 50년대 제주도 시골 가정에서는 성냥이란 것이 없이 화덕의 잿더미 속에 불씨를 밤새 살려두었다가 다음 날 아침 불을 피워서 썼다. 원자력 에너지나 IT기구 같은 것은 상상도 못했다. 요즘 초고속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방식은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편리하기 보다는 부담스럽고 귀찮기까지 하다. 그만하면 충분한 것 같은데도 계속 새것이 나오고, 그것도 너무 빠르게 나온다.

인터넷 기사에 나오는 유행어가 외국어처럼 낯설고, 새로 지은 아파트의 실내구조나 각종의 첨단 설비를 보면 호감보다는 황당함이나 두려움이 앞선다. 그러니 젊은이들 공간과 늙은이들 공간이 구분되게 마련이고, 세대에 따라 즐기는 TV프로나 음악의 종류가 다를 수밖에 없다. 목하 역사의 수레바퀴는 너무 빨리 달리는 게 아닐까.

유럽 사람들에게는 신구세대 간의 불통이 우리처럼 심하지 않은 것 같다. 그들에게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집에서 사는 것이 상례이고, 오래된 가구나 실내 장식들을 대대로 전승하는 게 명문가의 징표가 된다고 한다. 우리처럼 최신설비 아파트가 인기를 끌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필자가 유럽여행 중에 보고 놀란 것은, 수백 년 묵은 건물들이 많고 그 안에는 현재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관청 건물도 그렇고 주택가 가옥들도 그렇다. (한국의 아파트 수명은 보통 30년이라고 한다.) 불편할 수밖에 없는 좁고 굴곡진 옛날 길들이 지금도 그대로 쓰이는 곳이 많았다. 프랑스 여행 중 파리의 솔본느 대학 앞 어느 카페에 일부러 들어가 봤는데, 백발의 노교수와 젊은 대학생들이 바로 옆자리에서 여가시간을 즐기고 있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변화속도가 빠른 한국사회 안에서도 특히 빨리 변하는 곳이 바로 우리 제주도이고, 이 고장에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눈부시게 빨리 달라지는 도로망일 것이다. 도시이든 시골이든, 큰길이든 작은 길이든, 하루가 다르게 묵은 길이 없어지고 새 길이 뚫린다. 필자처럼 제주 토박이조차도 어디 밖으로 나가면 이게 나의 고향 땅인가 싶게 낯설고 헷갈린다.

고 큰 새 길을 만듦으로써 제주도 인구 100만 시대의 준비를 일찌감치 해놓는 게 뭐가 나쁘냐는 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의 지도를 바꾸는 중대사에 심사숙고를 기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도로는 공동체 역사의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다. 경제성 못지않게 자연보호와 역사성 배려가 반드시 함께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한다.

최근에 실시된 과감하고 의욕적인 대중교통 체제개편은 제주도민들의 삶의 질을 크게 바꾸고 있다. 버스노선을 대폭 증설하고 70세 이상 노인들에게 무임승차 혜택을 주는 것은 복지사회로 가는 큰 이정표라 생각된다.

그러나 제주시내 주요도로의 버스 중앙차선 방식은 그 효과가 의문스럽다. 서울에서는 버스중앙차선제로 바꾼 다음에 씽씽 달리는 버스를 보면서 통 크고 똑똑한 시장에게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제주도는 그 같은 거대도시의 사정하고는 좀 다른 것이 아닐까.

거리마다 넘쳐나는 자가용차를 팔아버리고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인간중심의 도시환경 정화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표면적인 실적제고 이면의 삶의 질 변화가 문제이다.

정거장에서 기다리다가 버스를 타고 어디를 간다는 것은, 물리적인 공간이동이라는 기계적인 행위에 그치는 게 아니다. 차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가까이 있는 사물들을 보고 느끼고 사고하며 거기에서 만나는 지인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인정을 쌓아간다. 그런 가운데에 세상사는 갖가지 사연들이 엮어지지 않겠는가.

앞으로 우리 제주시내 버스정거장에서 어떤 장면이 연출될지가 염려된다. 버스 오기를 기다리면서 큰 도로 한가운데 살벌한 금속조형물 정거장에 서 있을 사람들을 상상해 보자. 좌우 양편으로 요란하게 달리는 자동차 행렬이 눈과 귀와 머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가운데 답답함을 풀어주거나 뭔가 의문 나는 일을 물어볼 사람도 없이 세상에 버림받은 것처럼 두리번거리며 서 있는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더구나 그것이 눈귀가 어두운 노인이거나 공간감각이 부실한 장애인이거나 시골이나 외지에서 처음 찾아온 사람의 경우라면 얼마나 비정하고 잔인한 일이 될까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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