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신공항 추진에 대한 공론화위원회 시스템을 제안한다

예리한 촌철살인

성산 제2공항을 둘러싼 찬반논란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 갑자기 찾아온 초겨울의 제법 매서운 추위를 알리는 쌀쌀한 날씨. 그럼에도 도청 앞길에 천막을 치고 콘크리트 찬 바닥에 얇은 비닐 깔개를 깔고 앉아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간 한 순박한 도민의 목숨을 건 반대투쟁이 안타깝다. 하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파국으로만 치닫는 상황이다.

공항신설이라는 중대한 국책사업이 단지 한 도민의 목숨 때문에 쉽게 취소되리라고 누가 기대할 수 있을까. 하지만 도저히 메꿀 수 없는 찬반측간의 의견차는 차치하고라도 단식농성중인 도민의 절실한 민원을 잠시 듣고 난 원희룡 지사가 그에게 불쑥 내던진 한 마디는 모두의 귀를 의심하기에 충분한, 장기 단식자의 마음속을 깊숙이 찌름직한 촌철살인이었다.

“기운이 아직 많이 있으시구나”

멋쩍은 웃음

예상과 달리 단식농성 도민의 기운이 많이 남아서 실망한 것일까. 그 후 쏟아지는 도민들의 비난여론 때문인지, “(단식농성자가) 자신의 건강을 먼저 챙겨주길 걱정하는 말이었지 비아냥은 절대 아니었다”는 원지사의 변명과 사과가 있었다. 그러나 필자의 무지한 식견으로 전체의 문맥을 거듭 정독한 결론은 당사자를 위한 순도 100%의 위로의 발언이었다고는 결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판이 원래 진흙탕이라서 그런가. 다선 국회의원을 거쳐 온 원지사의 순도 떨어지는 이 찝찝함의 정치는 도민의 압도적인 지지로 취임한 도정 초기부터 능히 예견됐다면 단지 견강부회일까. 필자는 그가 도정으로 처음 맞이한 한라산신제에서 지사가 맡도록 규정된 초헌관직을 육지 태생인 정무부지사에게 떠넘기고 산신들에 큰 절을 올리는 초헌관들의 뒤에 앉아 지었던 그의 멋쩍은 웃음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궁색한 사유

삼국시대 탐라국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온 수천 년 전통의 한라산신제는 단순한 토속 신앙이 아니라, 선조들이 제를 올렸던 산천단 바로 그곳에서 그분들의 숨결을 함께 느끼며 모든 제주인들의 역사적 뿌리인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고 공동체 의식을 새삼 다짐하는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행사가 아니던가. 필자의 기억으로 그전까지 도정이 초헌관으로 참석하지 않는 경우는 없었다.

조례의 엄연한 규정을 무시하고 초헌관을 사양한 이유로 내세운 것도 투명하지 못했다. 선약 때문인지 아니면 종교적 이유 때문인지 보도하는 언론들마다 갈렸다. 하지만 언론들의 실수라기보다는 원지사 측이 떳떳이 그 사유를 내놓지 못한 탓이 컸으리라. 기독교인으로서의 신앙적 판단이라고 분명하게 밝히지 못한 것은 자신의 신앙을 만족시키지도 못했을 뿐더러 공식적 행사에 대한 공인(公人)으로서의 기본적 책무를 방기한다는 사실을 그만큼 의식했다는 반증일 것이다.

MB의 향기

이런 그에게서 서울을 통째로 하느님께 봉헌한 MB의 향기를 느꼈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 지나친 말일 것이다. 사방의 눈치를 살피며 적당히 넘어가는 어정쩡한 그의 공적 처신이 공사(公私)를 분간치 못하고 사익(私益)에 몰두한 의혹을 받고 있는 MB와 어찌 동급으로 비교할 수야 있겠는가. 하지만 산신제가 한낱 전근대적 미신이 아닌 특별한 의미를 지닌 행사로 받아들이기엔 그의 근대적 신앙의 협소함과 경직성은 아쉽지 않을 수 없다.

결국 한라산신제의 찝찝함은 결국 제주의 유구한 산야가 개발의 칼날에 무참히 파괴될 위험에 처한 오늘의 모습에 대한 불길한 예감이었을까. 물론 제주도가 이처럼 삽질왕국으로 전락한 것은 전임 도정들의 책임도 크다. 그러나 원지사가 주민들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성산 제2공항을 서둘러 추진하는 것만 보면, 시대착오적 삽질공사로 그 유려했던 4대강을 하루아침에 하수구 똥물로 만들어버린 MB의 모습을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만든다.

파묻히는 마을들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수십 년 전 독재정권의 개발지상주의에 여전히 갇혀있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자연과 전통, 문화 보다 외형적 성장을 우선시하는 사고는 이제 바꿔야 할 때가 됐다. 그간 엄청난 외형적 성장에만 매달려온 결과가 가져온 제주의 현재 모습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제주 전역의 모든 도로들이 만연된 교통체증으로 시달리는 것에서 단적으로 볼 수 있듯이 현재 도민들이 체감하는 삶의 질은 여러 면에서 예전보다 오히려 악화된 느낌이다.

물론 원지사가 신설공항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그 진정성까지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공항이 필요하다고 수십 대 조상들의 얼이 서린 유서 깊은 마을들이 주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하루아침에 공항 활주로의 시커먼 아스팔트 밑으로 파묻혀 사라져야 하는 것은 누가 봐도 상식적인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국제적인 대형 쇼핑몰 등의 화려한 개발 청사진으로 주민들의 민원을 달래겠다는 것은 한라산신제의 진정한 의미를 흘려보냈던 사고에서나 나옴직한 발상이다.

심각한 후유증

다수가 찬성하니 소수가 따라야 한다는 사고는 전체주의적 사고일 뿐이다. 다수의 도정이 아니라 모두의 도정이 돼야 함은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더욱이 예전 여론조사들과는 달리 최근의 조사들에서는 신공항보다 현재의 공항 확장을 찬성하는 여론이 우세한 결과들도 나오고 있다. 여론조사들의 신뢰성은 차치하고라도 어느 쪽으로 결판이 나든 심각한 후유증이 예견되고 있다.

또한 반대주민들은 타당성 조사와 부지선정, 추진절차, 그리고 환경영향 평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과정에 걸쳐 공정성과 신뢰성을 부정하는 심각한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의 짧은 소견이지만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해법으로서 얼마 전 문재인 정부가 고리 5, 6호기의 공사 중단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실시했던 이른바 ‘숙의민주주의’에 기반 한 공론화위원회 시스템을 검토해볼 것을 감히 제안한다.

MB가 즐겨 말했던 “내가 해봐서 아는데”에는 상상력 부재뿐만 아니라 무서운 독선적 사고가 들어있었다. 단식 농성자와의 면담에서 보듯 신공항 반대 도민들을 대하는 원지사의 태도 또한 “남보다 많이 배웠으니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느낌이 풍겨온다. 차가운 이성은 절실한 감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법이다. 공항의 지사가 아닌 도민의 지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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