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강병철/ 제주국제대학교 특임교수, 국제정치학 박사

국제사회에서 유명한 평화도시는 저마다 전쟁이나 갈등의 아픈 기억과 상흔을 평화로 승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평화도시로 유명한 독일 오스나브뤽시(Osnabrück City)는 30년 동안 지속된 전쟁의 종결을 위하여 5년 동안의 협상 끝에 1648년 시청계단에서 30년 종교전쟁의 강화조약인 베스트팔렌(Peace of Westphalia) 조약이 선언 된 도시이다.

가공할 위력의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던 일본의 히로시마도 평화도시로 널리 알려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원자폭탄 투하지인 히로시마는 1949년에 일본 의회가 국제평화문화도시로 선언하였다. 히로시마시는 평화와 사회 문제에 대한 국제회의를 개최하고 있는데, 히로시마 시장이 제안하여 창설한 평화시장회의는 1982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공동 설립한 세계 지방자치단체 조직으로 2020년 전 세계의 모든 핵무기를 해체해야 한다는 ‘2020비전’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7년 기준으로 회원은 세계 162개국 7,196개 도시로, 국내에선 제주시를 포함해 12개 도시가 가입돼 있고 회의에는 130개가 넘는 나라로부터 3,000개 이상의 자치체가 가맹하고 있다.

중앙정부에서 지정한 ‘세계평화의 섬’ 제주는 기존의 독일 오스나브뤽시(Osnabrück City)나 일본 히로시마시와 같은 평화도시들과 위상을 견줄 수 있게 될 것이다. 평화의 섬 선언문에서 “4·3의 비극을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시키며“라고 밝히고 있어 정치적 이념 대립이 대화를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제주도는 그 어느 지역보다도 평화의 중요성과 극한 대립의 참혹한 결과를 잘 알고 있는 지역이다. 평화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공감대를 형성하여 제주의 ”평화브랜드“를 국제사회에 높이 드높여야 할 것이다.

제주도는 기념비적인 정상회담을 개최한 경험이 있다. 가장 극적인 정상회담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제주도 방문과 정상회담이었다.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1991년 4월 19∼20일에 제주도에서 노태우 대통령과 세 번째 정상회담을 하였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소련 정상으로서는 최초로 한국을 방문한 것이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한·소 우호·협력에 관한 조약’의 체결을 제의하였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제안한 우호 및 협력 조약 체결은 성급한 면이 있었다. 동서 냉전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양국가의 신뢰가 미흡하였고 한국과 미국은 안보동맹관계를 맺고 있어서 소련이 아·태지역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이 우려되었던 것이다. 당시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과 협의 없이 소련과의 우호협력을 증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한소정상회담 이후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방한하자 김영삼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1996. 4. 16~17)을 제주에서 개최하였다. 뒤이어 김영삼 대통령과 일본 하시모토 총리와의 한·일 정상회담(1996. 6. 22~23)이 제주에서 개최되어 한·일 파트너십 관계를 더욱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일본 고이즈미 총리와의 한·일 정상회담(2004. 7. 21~22)이 제주에서 개최되어 한국과 일본의 관계 증진과 자유 왕래 촉진을 논의하였으며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을 동북아 평화협력체로 발전시키는 방안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하였다. 2009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담이 제주에서 개최되었는데 한국과 아세안은 1989년 처음으로 대화관계를 수립하였으며 2009년에는 20주년을 기념하여 제주도에서 특별정상회담을 개최하였다. 2010년 한·중·일 정상회담을 제주에서 개최하였다. 2010년 5월 29~30일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개최된 제3차 한·중·일 정상회담에는 이명박 대통령, 중국 원자바오 총리, 일본 하토야마 총리가 참석하였다.

정상회담과 함께 남북한 간 당국자 회담도 제주에서 개최되었다. 2000년 제1차 남북 정상회담 개최 이후 제주도에서 각종 남북회담과 남북교류협력 관련회의가 개최되어 왔다. 2000년 9월 12~13 남북 특사 회담에는 한국의 임동원 특보와 북한의 김용순 비서 등이 참석하였으며, 이산가족 문제 해결 노력 등에 관하여 합의하였다. 2000년 9월 24~26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는 한국의 조성태 국방장관, 북한의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등이 참석하였다. 2000년 9월 27~30일 간 개최 된 제3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는 한국의 임동원 특보, 북한의 전금진 내각책임 참사 등이 참석하였다. 2005년 12월 13~16일 간 제17차 남북 장관급회담이 개최되어 한국의 정동영 장관, 북한의 권호응 내각책임 참사 등이 참석하였다. 2006년 6월 3~6 남북 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12차 회의에는 한국의 박병원 재경부 차관과 북한의 주동찬 민족경제협력 부위원장 등이 참석하였다.

제주는 남북한의 동질성 회복을 위한 노력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제주도는 북한 동포에게 감귤보내기운동을 벌였다. 민간단체인 ‘남북협력제주도민운동본부’는 감귤 북한 보내기 운동을 벌여 1998년산 감귤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인도적 차원의 감귤·당근 보내기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는데 5.24 대북 제재 조치로 남북교류가 전면 중단되기 전까지 제주도는 총 66,428톤(감귤 48,328톤, 당근18,100톤)의 농산물을 북한으로 보냈으며 남북민족평화축전 등을 통한 민간교류활동도 추진했다. 2001년에는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 정착을 위한 대화와 논의의 장으로서 제주평화포럼을 창설하여 개최하고 있다.

제주가 세계평화의 섬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평화를 위해서는 갈등과 전쟁의 속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헤들리 불(Hedley Bull)은 적대적인 정치적 집단이 수행하는 조직화된 무력을 전쟁이라고 보고 있고,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는 전쟁이란 개별국가가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그 국가에 맞서는 국가를 굴복시키려는 목적으로 무력을 사용하는 것으로 정치적 상호작용의 연속으로 보았다. 모든 국가는 안보를 최우선으로 한다. 국제구조의 특성은 무정부적이며 개별 국가는 다른 국가들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생존하기 위해 자조의 원칙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평화를 위해서는 국가 간 신뢰를 구축하며 국가 생존을 위협하지 않는 상태에서 공존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여야 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는 남과 북이 모두 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쟁은 어느 쪽도 대량파괴 없이는 승리할 수 없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볼 수 있다. 학문적-정책적 토대 위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구축할 수 있는 청사진이 그려져야 할 것이다. 적대적 대결에서 적대적 협력과 평화공존의 과정을 거쳐서 평화통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평화를 찾는 청사진이 그려져야 할 것이다. 이런 청사진은 평화와 갈등에 대한 학문적 토대 없이는 그리기 어려울 것이다.

제주도는 이런 청사진을 한국정부가 그릴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는 연구역량을 지속적으로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이런 바탕위에서 다자안보와 남북대화의 장을 제공하는 것이 제주도가 ‘세계평화의 섬’으로 발전하는 바른 방향일 것이다. 제주는 도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에 힘입어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되었다. 제주도내의 연구기관들이 다자대화에 대한 연구업적을 지속적으로 쌓아가고 있으며 평화교류에 대한 연구업적과 실제적인 교류활동의 경험도 축적하고 있다. 이러한 제주도의 노력을 바탕으로 제주도는 국제적인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평화회담과 다자회담의 개최지로 부상되어야 할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대화를 통한 공동 번영의 청사진이 그려져야 할 것이다. 적대적 감정을 완화해야 하고 한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되 살려야 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평화공존의 과정 없이 평화통일에 이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제주도는 국제사회의 다자대화와 함께 한반도 평화를 위한 평화공존 협상과 대화의 장이 될 수 있다. 평화 대화의 개최지는 가장 평화스럽고 안전한 지역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제주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평화문화를 확산시켜 평온하고 관용적이며 다양한 문화를 존중하는 안전한 지역이라는 것을 국제사회에 인식시켜야 할 것이다. 평화문화의 확산을 위해서 민주시민윤리의 습관화는 필수적이다.

제주도와 제주지역의 연구소들이 다자대화를 통한 평화의 길에 중점을 둔 연구역량과 남북한 간의 평화의 길에 관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 연구역량을 보다 더 강화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제주도민들이 평화문화를 확산시킨다면 다자대화와 한반도 평화체제의 협상을 위한 최적의 개최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제주 평화문화란 무엇인가? 제주의 평화문화란 제주사회에서 폭력과 갈등의 요인을 제거하고 사회구성원들이 평온하고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일체의 생활양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평온하고 조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정의와 평등이 구현되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차별을 없애고 타인을 존중하는 문화는 말할 필요도 없이 평화문화이다.

저명한 성 프랜시스(1182-1226)의 <평화의 기도>를 읊어본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며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며

자기를 온전히 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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