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양길현 교수/제주대학교 윤리교육과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고 제주담론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주 금요일 제주에서는 드물게 노동 세미나가 열렸다. 제주특별자치도 지방노동위원회(위원장 금승희)와 제주대학교 법과정책연구원(원장 오성근)이 공동 주최한 ‘신정부의 노동정책과 제주’ 세미나가 그것이다. 지방노동위원회의 조정위원이기도 했지만, 또한 신정부의 노동정책 변화에도 관심이 있는지라 발표와 토론을 지켜보았다. 친기업적(business friendly) 정부였던 이명박-박근혜 정부와는 달리 문재인 정부가 상대적으로 노동친화적 내지는 노동존중적 성향이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에 발맞춰 제주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다른 전문가 분들의 발표와 토론도 다 유용하고, 또 신정부의 노동정책 변화에 발맞춰 제주에서는 어떤 방향과 내용으로 노동 존중과 노동 인권 찾기를 해 나갈 것인지에 많은 시사를 주었다. 그 가운데 여기서는 다른 분들의 발표와 토론을 십분 참고하면서, 주로 한국노동연구원의 이성희 선임연구위원이 발표한 ‘정부 노동정책이 제주 지역경제와 노사관계에 미칠 영향과 대응방안’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 세미나에서 논의된 몇가지 쟁점과 시사점을 정리하면서 필자의 생각도 덧붙였다.

제주의 사위라며 자신을 소개한 이성희 박사는 처가를 통해서 제주의 독특한 산업구조와 그에 따른 노동 현장의 제주적 특수 현황을 나름 많이 듣고 보고 이해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성희 박사가 내놓은 제주 지역경제와 노동시장의 현황이 제주가 이른바 육지부와는 얼마나 다른 경제구조와 노동시장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몇가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전국과 비교할 때 제주가 관광지인지라 서비스업 비중이 큰 건 당연하다. 그리고 섬 특유의 지리물류적-인구소비학적 제약으로 인해 제조업 비중이 적은 만큼이나 농림어업 비중이 크다는 건 상식이다. 통계적으로도 제주는 제조업 3%(전국 27%), 공공행정 12%(전국 7%), 건설업 9%(전국 5%), 숙박.음식점업 6%(전국 2%), 그리고 농림어업 11%(전국 2%)의 산업별 GDP 비중을 보이고 있다.

2) 위와 같이 제주의 산업별 비중이 전국과는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과는 별개로, 2016년 제주의 근로자 직업별 분포를 보면, 농림어업 18.2%(전국 5.0%), 서비스판매 25.8%(전국 22.4%), 단순노무 15.6%(전국 13.2%)이다. 한 눈에 보더라도 저임금 노동 비중이 크다. 그래서 제주의 비정규직 비율이 66.03%(전국 48.9%)에 달한다. 제주에 변변한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제주를 향한 이주민의 행렬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3) 이성희 박사의 자료 중 가장 흥미 있는 부분은, 최근 제주가 전국에 비해 경제활동 참가율과 고용률이 높고, 그런 만큼 실업률이 낮다는 것이다. 즉, 전국에 비해 제주는 2016년 상반기 경제활동 참가율 69.2%(전국 62.8%), 고용률 68%(전국 60.3%), 실업률 1.8%(전국 3.9%)이다. 2017년 상반기도 경제활동 참가율 72.3%(전국 63.7%), 고용율 70.9%(61.2%), 실업률 1.9%(전국 3.9%)로, 제주의 경제활동 참가율과 고용률은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제주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그에 걸맞게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 이유로 제주에서는 노동 존중 의식 내지는 노동의 자기 몫 찾기 의식이 약하다고 지적된다. 제주에서는 임금 노동자 비율 못지않게 자영업 비율이 높아서인지, 기존 사업체에서 노사관계를 통한 임금 협상에 주력하기 보다는 쉬 틀리면 스스로 서비스 사업이나 농림어법 분야에서 생계를 도모하려는 움직임이 더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때문에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과 애착이 약하다. 현실적으로 중-대규모 제조업이 거의 부재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조직화된 노동조합을 통해 힘을 쓸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도 않다.

그런데도 아쉬운 데로 제주의 실업률이 전국 보다 훨씬 낮다는 것은 위안이다. 바로 낮은 실업률이야말로 왜 제주를 향한 이주민 행렬이 지속되고 있는지의 이유를 설명해 주는 하나의 단서이다. 즉, 제주에는 열악하지만 일자리가 있다는, 아니면 크게 신통하지는 않지만 무언가 새로이 일을 찾아 나설 수 있는 프론티어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뜻 제주가 기회의 땅인 것처럼 보이고 있나 보다. 하지만 실제 그 내막을 보면, 저임금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영세 자영업자들로 제주경제가 굴러가고 있을 뿐이다. 어떻든 제주로의 이주민 행렬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제주 못지않게 대한민국의 타 지역에서의 삶도 별로 여의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가 비정규직 대책과 일자리 창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현금의 정책 기조 하에서 제주는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가? 우선 일자리 창출과 확대는 제주만이 아니라 전국적이고 세계적인 당면 과제인 만큼이나 결코 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데서 출발하여야 할 것이다. 일자리는 대통령이나 정부가 하겠다고 하면 되는 그런 성질의 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초지능화 시대인 로봇경제가 눈앞에 닥친 현금에서 과거와 같은 장기 지속가능한 일자리는 거의 무망하다. 특히 제주경제의 주축 일자리인 기존의 서비스 판매라든가 단순 일자리는 점점 더 설자리가 없어지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결국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공공 영역에서의 일자리 창출이고 비정규직 해소이며, 이를 통해 민간 영역으로도 넘쳐나도록(spill over) 하겠다는 기대와 의지일 것이다. 조금이라도 일자리 부족과 비정규직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데 목적이 있다.

이 지점에서 종합토론 때 고동린 상무가 코멘트 했던 바, 일자리와 함께 일거리 마련에도 관심을 보여 달라는 목소리가 예사로이 들리지 않는다. 언뜻 일자리가 노동자 쪽 관점이라면, 일거리는 사용자 쪽 용어일 듯싶다. 용어의 미묘한 차이를 굳이 따지지 않을 요량이라면, 고용 증진과 관련해서는 일자리를 쪼개서 고용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일거리를 만들어 고용을 늘리는 게 더 합당해 보인다. 왜냐하면 일거리는 기업 또는 시민사회가 만들어 가는 것이고, 정부는 이를 지원하고 도와주는 것이 그 역할일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거리를 주도할 기업이 부진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어쩔 수 없이 혹은 당연한 듯이 정부의 기능 확대 요청에 부응하여, 정부가 일거리와 일자리 찾기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 현대복지국가론의 요체이다. 왜냐하면 일거리가 있고 일자리가 있어야 가장 안전한 복지 장치가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노동-복지정책은 기업친화적인 보수주의적 이명박-박근혜 정부보다 노동복지 친화적인 진보적 자유주의에 가깝다. 그렇다면 제주 지방정부도 중앙정부의 진보적 자유주의 정책에 발맞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의 노동-복지-고용-임금 정책을 펴나가야 할 것이다. 이왕이면 특별자치의 위상에 걸맞게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원론적으로 그리고 이상적으로 보면, 제주는 전국 수준에서 볼 때 실업률이 낮은 만큼 단순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더 큰 과제이다. 그래서인지 원희룡 지사도 틈만 나면 양질의 일자리를 운위하지만, 아직 양질의 일자리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현 시점에서는 양질의 일자리는커녕 기존 일자리의 유지도 버거워 보인다. 그럼에도 예를 들면 대형투자사업 80% 도민고용 할당정책, 사회적기업과 창업 육성, 제주형 생활임금제 정착 등 원희룡 표 일자리 시책은 기대해 볼 만하다.

특히 공공부문인 도소속 근로자 1,058명이 우선 혜택을 보리라 예상되는 제주형 생활임금에 눈이 많이 간다. 이에 따르면, 2017년 최저임금 시급 6,470원의 130%인 8,420원으로 전국 최고수준이다. 제주형 생활임금이 제대로 정착되면 2018년에는 9,789원이 되어, 노동계에서 주창하는 최저시급 1만원에 근접하게 된다. 그리고 아직 구상 단계이지만, 도내 중소기업에 착실히 근무한 청년들이 근속연수를 늘릴 때마다 목돈 마련을 빨리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제주형 재형저축’ 정책도 청년 일자리의 지속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2018년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하고자 하고 있는 3조원 규모의 일자리 안정기금은 문재인표 뉴딜 정책에 근사하다. 이와 관련 최저임금 인상분을 세금으로 메꿔준다는 비판도 있지만, 원래 정부의 업이 세금으로 공익(여기서는 최저임금 보장)을 실현하는 게 아닌가. 일자리 안정기금이 영세 중소 자영자들에게도 1인당 월 13만원의 인건비 지원이 이루지는 과정에서 소득주도 성장이 이루어지리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주특별자치도도 제주형 생활임금에 이어 제주형 일자리 안정기금을 마련하고 활용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정부와의 매칭 펀드도 하나의 방법이다.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