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양금희/ 시인, 제주투데이 논설위원, 제주일보 칼럼니스트

세계화가 진행되고 여행객들이 늘어나면서 특색 있는 문화를 가진 국가나 지역이 부각되고 있다. 제주는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만한 어떤 특색 있는 매력을 가지고 있는가?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고유의 문화도 매혹적이다. 문화에 대하여 영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 경(Sir Edward Burnett Tylor)은 “지식, 신앙, 예술, 도덕, 법률, 관습 등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생활 속에서 획득한 지식이나 습관 등의 총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제주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모든 삶의 형식을 제주문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중 전설로 전해지는 이어도와 관련된 문화들을 ‘이어도문화’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도는 고통과 아픔도 없는 이상향으로서 오랫동안 제주사람들과 함께 전설과 민요 속에 전해져 왔다. 제주사람들에게 이어도는 바다로 나간 사람들이 풍랑을 만나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경우 이어도로 갔을 것이라 여기며 위안을 삼던 상상속의 섬이었다. 상상과 이상향으로서 존재해 온 이어도는 1900년 영국 상선 소코트라(Socotra)호에 의해 발견되면서 전설과 실존이 만나는 곳으로 주목을 받게 된다.

제주사람들에게 이어도는 맷돌문화가 활성화 되던 시기에는 맷돌을 돌릴 때 ‘이어도사나’ 노래를 부르면서 시름을 달래는 수단으로 이어져 왔다. 하지만 점차 기계화에 밀려 맷돌 문화의 명맥이 끊기면서 ‘이어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기억도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다. 그런 이유로 자라면서 이어도에 대해 웃어른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전해들은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세대들을 만나 그들이 기억하는 ‘이어도’를 영상으로 채록하기로 하였다. 영상자료물은 무형의 이어도문화를 후세에 남기는데 좋은 수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도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로 하고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조천이었다. 조천은 이어도와 관련하여 ‘고동지와 여돗할망’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지역이다. 중국으로 말을 싣고 가던 고동지가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 이어도에 도착하여 행복한 나날을 보내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때 몰래 고동지를 따라온 여돗할망이 조천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하자 ‘장귀동산당’ 당신(堂神)으로 모셔 그를 기리기 위한 당(堂)을 세웠다고 전해지고 있다.

조천에 거주하고 있는 70~90대 노인들을 대상으로 이어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지를 물은 결과 들어본 적이 있다는 대답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나마 ‘이어도사나’ 노래에 대해서는 많은 노인 분들이 알고 있었고 부를 줄도 알았다. 이어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는 한(80)씨는 “파도가 세서 찰랑찰랑 물결이 셀 때는 안보이고, 파도가 잔잔할 때는 보인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떤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이어도가 제주도에 속한 거라는 것만 알지 세밀한 것은 모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어도에서 온 여돗할망의 당신을 모시고 있는 ‘장귀동산당’ 터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 터를 직접 안내해 주었다. 장귀동산당 터는 “4.3 당시 불타 없어졌다”고 증언했다.

다음은 과거 일본인 ‘다카하시 토오루’에 의해 1932년도에 채록한 기록을 토대로 모슬포지역에서 이어도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을 수소문했지만, 거의 대부분 모른다고 말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갖고 수소문 끝에 이어도에 대해 알고 있는 몇 분의 소중한 증언을 채록할 수 있었다.

모슬포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양(78)씨는 “이어도에 대해서 오래전 어릴 때부터 어머니·아버지·할아버지·할머니에게 늘 들었다. 저기 마라도 밑에 가면 이어도 섬이 있는데, 거기는 사람이 바다에서 죽으면 다 그쪽으로 간다고 해서 이어도가 무서운 곳이구나 해서 기피하는 곳으로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직접 이어도 지역을 다녀왔다는 전직 수협직원인 이(72)씨는 “그곳이 전복이나 소라가 많이 잡혔고 품질도 뛰어나 전부 일본으로 수출했다”고 증언했다. 강(63)씨는 “이어도는 우리가 천당이나 지옥을 상상하고 생각하는 것 같이 제주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어도도 상상의 섬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동김녕리에서 채록한 기록을 토대로 동김녕을 방문했지만, 이어도에 들어봤다고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지는 못했다. 이에 동김녕리와 이웃한 북촌리 주민들을 대상으로 수소문한 결과 다행스럽게도 이어도를 기억하는 몇 분이 생존하고 있었다.

조천 북촌리 고(77)씨는 “옛날에는 섬이라고 들었다. 옛날에 어른들이 제주도의 역사를 얘기할 때 제주도는 큰 섬이었고, 이어도도 섬이었다고 했다. 옛날에 (이어도에) 사람이 살다가 어느 시대부터 차츰차츰 바닷물 속으로 잠겨버렸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하찮게 들어서(구체적으로는) 잘 모르겠다. 이어도사나 노래는 이어도(이상향)에 목적을 두면서 생활에 고달픔을 잊기 위해 이어도사나 노래를 불렀고, 용기와 힘을 실어주는 노래였다“고 말했다.

장(84)씨는 “낭군님이 고기잡이 갔다가, 이어도에서 난파돼서 낭군님이 돌아오지 않으니까 낭군님을 그리는 마음에서 이어도사나 노래가 나왔다고 알고 있다. 해녀들이 물질하러 갈 때, 지금은 기동선이니까 힘이 덜 들었지만, 전에는 노 저어 가려면 힘이 드니까 이어도사나를 부르면서 (물질하러) 갔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애월읍 고내리에서 어린 시절부터 물질을 하며 상군해녀가 된 장(66)해녀는 “이어도하면 제주도 섬처럼 제주도 앞바다에 이어도 섬이 있는 줄 알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있구나 생각했는데, 최근에야 물속에 있는 이어도라는 것을 알았다. 이어도 하면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섬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도 증언을 채록하기 위해 수백 명의 사람을 만났지만, 그들 중 소수만이 이어도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만을 갖고 있을 뿐이었다. 각자가 기억하고 있는 이어도에 대한 기억도 사람마다 매우 살기 좋은 곳, 무서운 곳, 해산물이 풍부한 곳, 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곳 등으로 차이를 보였다.

자료를 수집하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산간 지역으로 갈수록 이어도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고, 해안지역에 가까울수록 이어도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을 어렵게나마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해안지역은 특성상 바다에 물질을 나가거나 배를 타고 어업활동을 할 기회가 많았고, 바다에서 사고를 당해 불귀의 객이 되는 경우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도 배고픔도 없는 이어도라는 이상향에 갔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얻었을 것이라 추측해 볼 수 있었다. 젊은 세대들이 이어도에 기억하고 있는 지식은 웃어른들로부터 전해들은 것이 아니라 TV나 언론매체 등을 통해서였고 대체로 실존하는 섬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제주민속박물관장을 지낸 진성기 관장은 이어도문화가 사라진 것에 대해 “우리 생활이 바뀜에 따라 자연적으로 생각도 바뀌는 것이 아닌가한다. 그 당시만 해도 목축 농업사회에서 말을 키우고 맷돌을 돌리고 방아를 찧어 주식을 장만하던 때에는 이어도가 많이 알려졌지만, 기계화되고 생활이 편리해짐에 따라 자연적으로 이어도문화가 사라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어도는 제주도민 생활상에서는 기쁨과 슬픔이 섞여 있는 환상의 섬이었고, 이어도가 있어서 우리 제주도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준 것이다. 이어도가 없었다면 너무 답답하고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중국으로 진상을 갔다 오는 과정에 이어도가 있었기 때문에 숨통이 트이고 어려움 가운데 참고 살 힘이 생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후세들이 이어도 문화를 향유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들과 소통이 되지 않는 문화는 사장될 수밖에 없다. 이어도가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와 소통하고 계승발전하기 위해서는 이어도를 소재로 한 문화행사를 축제형식으로 다양하게 개최할 필요가 있다. 이어도를 소재로 한 연극, 뮤지컬, 영화 제작을 비롯하여 음악제, 이어도를 소재로 한 시, 소설 등의 문학작품 발굴 등을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하여 이어도에 대한 전 국민의 관심을 고취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이어도 문화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저학년부터 자연스럽게 이어도를 접할 수 있는 교재 개발도 필요하다고 본다.

이어도 수역에는 2003년에 건설된 이어도종합해양과학기지가 망망대해에 우뚝 서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이어도 수역은 연간 25만 척의 배들이 지나는 해상교통의 요충지이며 우리나라의 수출입 물동량의 98% 이상이 통과하는 수역으로서 경제·안보적인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수역이라고 할 수 있다. 제주도의회 몇몇 도의원들이 ‘이어도의 날 조례 제정’을 추진했지만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우려하여 번번이 무산된 바 있다. 또 일부 제주지역 단체에서 ‘이어도문화의 날’ 행사를 추진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지만, 진척이 없는 상태이다.

제주인의 이상향을 넘어 대한민국 국민들의 이상향으로서 이어도가 ‘이어도문화’로 계승 발전시켜야 할 공감대를 얻기 위해서는, 이어도가 왜 중요한지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공감대 형성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제주에 뿌리를 둔 ‘이어도문화’가 대한민국 국민들의 시름과 아픔을 달래주는 이상향으로써 활짝 꽃피우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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