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이양재 (李亮載) / 20세 때부터 고서화를 수집한 민족주의 경향의 ‘애서운동가’로서, 서지학과 회화사 분야에서 100여 편의 논문과 저서 2책, 공저 1책, 편저 1책 있음. 현재 ‘포럼 그림과 책’ 공동대표, ‘고려미술연구소’ 대표.

다른 고장에도 제주의 것과 재질은 다르지만 성벽이고 성문이 있고, 마을 돌담이 있다. 그러나 다른 고장에서는 제주와 같은 밭담이 흔치는 않다. 제주의 밭과 밭을 경계 구분하는 밭담은, 각 밭담들을 연결하는 것이기도 하며 자연과 소유권을 인위적으로 구분하는 기하(幾何)의 불규칙한 변형이다. 즉 제주라는 자연을 지형의 높낮이와 용도에 따라, 그리고 소유권에 따라 나누고 연결하는 선의 불규칙한 것이 밭담이다. 이는 어느 면에서는 생활 속의 설치 예술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불규칙하면서도 조화로운 밭담에, 높낮이가 다른 제주의 건축물들이 내려앉을 때, 그것도 일정한 규칙을 무시하는 설계로 이어질 때, 무질서한 마을이나 도시가 생겨난다. 이렇게 혼란스럽게 지역적으로 나타나는 건축물의 무질서는 미관상 심각하다. 그렇다고 밭담을 바둑판처럼 규칙적으로 격자화(格子化)한다면, 그건 제주다움을 없애는 것이 된다.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에는 ‘파주출판단지’라는 특성화된 공간이 있다. 필자가 알기로 이곳은 열화당의 이기웅 사장 등 출판 인쇄 제본업 등등의 관련 인들이 정부와 교섭하여 이 일대의 폐천 부지 47만 400평에 사업비 1조 원, 건축비 1,380억을 투입해 1989년 11월 기공식을 갖고, 2005년 완공한 세계 최초의 출판 단지이다.

이곳은 각 구역마다 지정 설계가가 지정되어 있어 하나의 공간에서 인근 건물들과의 조화성을 추구한다. 그 결과 다양하면서도 옆 건물과 어우러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건축 디자인으로 예술과 문화도시로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건축물의 외적인 아름다움과 조화로 인하여 많은 사진이나 영상작가들이 ‘파주출판단지’를 찾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제주는 그렇지 못하다. 기획 조성된 한경면 ‘저지문화예술인마을’에서 조차도 단지의 전체 설계에 조화성이 결여되어 유아독존식의 건축물들이 상당수 눈에 띈다.

필자는 제주의 무질서한 마을의 건축물 행위가 제주의 경관을 해치는 것을 많이 보고 있다. 건축물 신축을 심의하고 허가하는 도정부 부서와 그 담당 공무원들의 미적 감각이 어떠한가에 따라, 제주의 마을 경관은 최악의 것이 될 수도 있고 최선의 것이 될 수도 있다. 제주의 마을이 개발되고 확장됨에 따라 무질서한 건축물 신축행위는 제주 전체의 경관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요즘 제주의 밭담과 마을 돌담이 훼손되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얼마 전부터인가 일부 구역의 밭담은 낮아지고 있는 것 같다. 건축물 신축의 필요에 의하여 누군가가 밭담의 맨 위층을 걷어 내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밭담이 낮아지는 지역이 있다. 또한 이미 도로변 마을집이나 골목 안 마을집의 담장이 철거된 곳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가 있다.

기존의 밭담을 훼손하고 마을 돌담을 없애는 것은 제주다움을 반감시키는 것이다. 건축물 신축이나 개축을 허가할 때에 자기 집 돌담을 허물어 마을이 미관을 해치는 행위를 하지 말도록 주의를 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싶다.

제주에서의 조화로운 건축물 신축을 위하여, ‘파주출판단지’나 ‘헤이리예술인마을’ 등등의 예에서처럼, 특정 건축가들이 주도하여 지역적으로 나누어 맡아서 자연 환경이나 기존의 마을과 조화로운 건축물을 짓도록 하면 안 될까? 이러한 시도는 일부 건축물 설계가들의 반발을 불어 올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제주의 건축물 신축을 교향악단 지휘하듯 지휘하지 않으면, 제주는 불협화음의 건축물 소음에 망가질 것이다.

지중해 연안의 도시나 카리브해 해안의 도시들이 보여주는, 그러한 조화롭고 아름다운 도시가 제주에서는 불가능 할 것인가? 필자는 제주에서의 최악의 건축물로 ‘본태박물관’을 꼽는다. 일본인 안도 타다오가 설계하였다는 이 건축물에서 제주의 자연에 일본 성채(城砦)가 들어선 듯한 위압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남들은 좋다고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자연과는 어울리지 않고 여성적인 제주의 자연을 유린하는 최악의 참담한 건축물이다.

우리는 제주를 삼다(三多)의 고향이라 한다. 삼다는 “돌 많고(石多), 바람 많고(風多), 여자 많다(女多)”는 뜻이다. 그 많던 돌이 이제는 돈이 되었다. 그런데 제주의 돌 문화는 변형되어 가고 있다.

제주의 돌 문화는 고인돌과 더불어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 고인돌도 상당수는 도시개발에 밀려 원 장소를 떠나 다른 곳에 배치되었다. 제주 돌로 만든 돌하르방은 원 자리에 있던 것이 이제는 몇 기가 없다. 돌하르방 가운데는 가슴이 있어, 돌할망이라 불러야 할 만한 것도 있다. 돌하르방이 원래 있던 장소를 떠났다는 것은, “돌할망이 사방(동서남북)의 어느 방향에 세워졌냐?”하는 민속적 풍수적 의미를 잃어 버렸다는 말이 된다.

요즘 제주의 석공(石工)들은 돌하르방은 대형화 시키고 있다. 조천읍 교래리의 ‘제주돌문화공원’을 가보면 돌하르방이 일렬로 늘어선 돌하르방 군상이 있다. 마치 이스터섬의 모아이(Moai) 상을 흉내 낸 것 같다. 제주의 돌 문화는 결코 거석문화(巨石文化)가 아니다. 거석문화는 노예문화의 산물이다. 제주의 돌 문화는 노예문화의 산물이라 볼 수가 없다.

그래서 필자는 돌하르방의 대형화를 제주인들의 섬(島; 小, Small) 콤플렉스와 침략 트라우마에 의한 무의식적인 저항으로 본다. 돌은 제주 삼다 가운데 오직 정지된 물체이다. 바람이 하늘(天)을 떠돈다면, 여성(人)은 인간 세상을 떠돌고, 돌은 땅(地)을 지킨다. 강력한 힘이 있었다면 자연이나 외부인으로부터의 침략에서 안전하였을 것이라는 무의식적 염원이 돌하루방의 대형화로 나타나는 듯싶다.

그런데 제주 돌 문화다움을 상실하는 문제는 제주시 이호동 해변에 있는 ‘원담’을 크게 확장한 것 등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원담’이란 제주 해안의 자연 지형과 조차를 이용하여 썰물 때 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만든 돌담을 가리킨다. 이는 제주지역 고유의 공동 어로 시설이라 할 수 있다.

이호동 해변의 원담은 과거 이곳 해안에 있던 원담을 원형으로 하여 근래에 새롭게 복원한다면서, 이를 확장하여 커다란 반원형으로 돌담을 쌓아 조성했다. 아무리 옛 원담이 현재 확장된 새 원담 안의 해수와 모레에 잠겨 있다지만, 이는 현대 제주인들이 원초적인 제주다움을 말소하려는 것 이상은 아니다. 이러한 류의 짓이 몇 곳에서 눈에 띄는데, 이런 제주다움의 왜곡과 변형은 안했으면 한다.

제주 돌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언급하고자 한다. 제주에서 현무암의 석재(石材) 채취는 안 되고 있다. 그래서 중국산 현무암이 제주 건축물과 보도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마치 제주 것으로 보이도록 하고 있다.

제주의 옛 집들은 자연석 현무암 돌을 사용하였다. 그러한 집들은 선인장이라든가 식물이 틈틈이 어울려져 있고, 크고 작은 제주 자연석 돌담이나 주택의 외벽은 생활 속의 모자이크 예술품 그 자체로 볼 수도 있다. 이러한 모습이 잘살아 있는 제주 돌담은 제주다움이 잘 살아 있는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그러나 요즘 정방형으로 채석되어 외벽이나 내벽에 붙이는 외국산 현무암 건물은 이질적이기까지 하다. 도시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 제주다움은 인공적인 장방형 채석물을 붙이는 데 있지 않다. 신축 관공서부터 외국산 현무암으로 제주 건축물을 어둡게 만들지 말았으면 한다.

말이 나온 김에 또 하나만 더 말하고자 한다. 제주의 색채는 태양이나 감귤의 주황색인가? 아니면 현무암색? 바다를 상징하는 청색? 한라산을 상징하는 녹색? 아니면 다른 무슨 색이 있는가? 필자는 지중해 연안도시나 카리브해 섬나라들의 도시처럼 제주의 지붕도 가급적 주황색 기와로 권장하는 것이 어떨지 제안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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