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숙씨는 자그마치 30년 세월을 봉사에 쏟았다. 1980년대 중반, 양로원을 찾아 첫 봉사를 시작했던 정 씨는 지금도 정기적으로 양로원을 찾는다. 요양원, 소년원, 여성보호기관, 노인회관 등 한 달에 정기적으로 다니는 곳만도 10곳이 훌쩍 넘는다. 제주 곳곳을 누비다보니, 안 가본 곳이 없다.

1980년대 중반, 요양원 봉사를 시작으로 30년 가까이 봉사활동을 이어온 정정숙씨. 자원봉사로 국무총리상 등 여러 상에 이름을 올렸지만 가장 뿌듯한 건 3대에 걸쳐 손주들도 봉사의 가치를 직접 보고 배우며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한다. @제주투데이

“봉사를 시작했을 때가 우리 막내아들이 아직 돌도 되지 않던 때였죠. 제주여성회관 초창기 멤버로 인연이 닿아 양로원 봉사를 했었어요. 세탁기도 없던 때, 졸졸 흐르는 물에 이불을 빨고 어르신들 손발이 되어드리는 일이었죠. 지금 생각해보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요. 그렇게 봉사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게 말이죠.”

몸이 불편하셨던 시아버지를 마지막까지 모시고, 네 명의 아이를 키우며 봉사를 쉬었던 적은 없었다. 부르는 곳이 있으면 달려갔고, 봉사 약속을 어겨본 일은 없었다. 10년전부터는 호스피스로도 활동하고 있다. ‘할 때까지 해보자’고 스스로 다짐했던 일이 차곡차곡 쌓여 어느덧 정 씨의 반평생이 되었다.

정정숙 씨는 매달 정기적으로 요양원 등 시설봉사를 다니며 급식과 수발봉사, 꽃만들기 봉사 등을 이어오고 있다. @제주투데이

“봉사하면서 힘들었던 적은 없었어요. 항상 감사하며 즐겁게 봉사했습니다. 베푸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요. 지금 제 나이에 이처럼 건강한 것도, 봉사 덕일 겁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말하기도 해요. 봉사하길 참 잘했다, 라고요.”

정 씨의 봉사는 손과 발이 부지런한 봉사다. 소속 봉사원들과 비누를 만들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의 학비와 급식비를 보태고, 어르신들 수발봉사를 하고 급식을 만들고 나누고, 셀 수 없는 갖가지 봉사에 손과 발이 쉬어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허리며 팔목이며 사실 성한 곳이 없다. 그럼에도 봉사를 쉴 수 없는 건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라고 말한다.

정정숙씨의 봉사활동을 보면서 자란 정 씨의 자제들은 물론 손주들도 봉사활동에 함께 참여한다. 특히 초등학교 4학년인 손녀딸은 방학때면 으레 할머니와 봉사활동을 가야한다며 계획을 묻곤 한단다. @제주투데이

“살면서 뿌듯한 일 중 하나가 바로 봉사의 삶을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는 겁니다. 제 아이들은 물론 손주들도 저를 따라 봉사를 해요. 3대에 걸쳐 봉사를 하는 셈이죠. 지금 초등학교 4학년인 우리 손녀딸은 방학이 되면 으레 할머니와 봉사활동을 다니는 걸로 알고 있어요.”

남편의 외조까지 더해진 가족의 인정과 지원은 정 씨가 그 긴 시간 봉사의 삶을 이어올 수 있게 했다. 물론, 정 씨가 봉사를 하면서 그 세월에 다져 놓은 ‘봉사하는 삶의 기쁨’과 ‘봉사하는 삶의 가치’가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제주의료원에서 만난 정 씨는 인터뷰 내내 '봉사하는 삶의 고마움과 즐거움'을 전했다. 정 씨에겐 ㅈ봉사람 바로 '삶의 버팀목'이기 때문이다. @제주투데이

“무슨 사명감인지 몰라도, 봉사하면서 만나는 어르신들과 이웃들에게 때 맞춰 찾아가고 도움을 드려야 한다고 늘 책임감을 느끼고 삽니다. 봉사도 약속이고, 책임이지요. 골라서 하고 원할 때만 하는 것은 봉사가 아니잖아요.”

연말이 다가오면서 정 씨의 봉사활동도 바빠졌다. 못 해도 15곳을 한 달 내 돌게 된다. 한 곳당 두번 이상씩 가는 곳도 많아 일주일에 쉬는 날을 꼽기가 쉽지 않다. 춥건 덥건, 몸이 노곤해도 쉴 수 없는 건 바로 정 씨가 말한 그 '사명감' 때문이다.

정 씨는 "봉사란 결국 나를 찾는 일이고, 내가 살아갈 수 있는 버팀목. 봉사를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마음이 즐거운 삶을 살아올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면서 "가장 큰 바람이 있다면 지금처럼 건강을 유지해서 힘이 닿을 때까지, 할 수 있을 때까지 ‘봉사의 삶’을 이어가고 싶어요."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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