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양영수/ 제주대학교 교수를 퇴임한 후 전업소설가로 활동 중

요즘 제주도 이주민들 가운데에는 문학이나 음악, 미술, 연예 등 예술분야의 활동가들이 많이 있고, 예술공연이나 미술전시회 등 문화행사들도 부쩍 많아지고 있음을 본다. 제주도의 비약적인 발전양상 가운데 부동산 광풍이나 난개발, 교통난이나 우범지대 우려 같은 어두운 면들이 나타나는 한편에서 이같이 밝고 희망적인 현상이 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제주도가 관광섬으로 발전한다는 것은 예술창작 전문가들의 활동에 우호적인 환경이 되리라고 생각된다. 관광객들이 쏟아져 들어와서 시끌시끌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사라져 가는데 무슨 예술적 영감이 떠오르겠냐는 염려가 없는 것은 아니고, 어마어마한 대형 군사기지가 생겨서 살벌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음도 사실이다. 그러나, 적당한 정도의 스트레스는 인간의 정신력을 고양시키고 예술창작의 열정을 촉진한다는 말을 믿고 싶다. 사람들이 몰려다녀서 시끄러운 소리는 공장이 돌아가는 금속성 소음과는 다르지 않겠냐는 생각도 든다. 천혜의 자연풍광과 문명의 시끄러움이 나란히 공존하는 제주섬이 예술창작의 요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군사기지가 꼴불견이라고 하지만, 저절로 주어지는 평화의 환상보다 역사의 현장에서 찢어발겨지는 평화의 염원을 확인하는 것이 더 값진 역사인식의 기회가 아닐까 싶다.

관광객과 예술인은 중요한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관광여행에 나선 사람들은 획일적인 일상생활의 틀에서 벗어나서 자유분방하게 인생을 즐기고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한다. 얌전하던 꽁생원도 여행 중에는 기분내고 담대해질 수가 있다. 예술인들은, 기존질서를 준수하고 안정과 화합을 추구하는, 다분히 보수적인 직업인들과는 달리, 평범한 사물들 가운데 숨겨진 아름다움이나 신기함을 발견하는 사람들이다. 그런가 하면, 보통사람들의 당연한 생활풍속을 삐딱하게 바라보고 딴지 걸기까지 하는 사람들이 또한 예술인들이다. 예술가들은 흔히 생계를 위해 부지런히 일하는 것보다도 풍류를 즐기고 노는 것을 더 중시하고, 소위 역발상(逆發想)의 논리로 창작에 임한다. 넥타이 정장에다 말쑥한 헤어스타일을 한 화백이나 영화감독을 보았는가. 유행에 맞춰서 값비싼 옷으로 치장한 시인이나 소설가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 원래 방랑벽의 여행자라는 뜻이던 보헤미안(Bohemian)이라는 단어가 자유분방한 예술인이라는 의미로도 쓰이는 것을 보면, 여행의 매력은 관습의 틀로부터 일탈하는 것이고 예술창작의 필수 요건은 영혼의 자유임을 상기하게 된다. 관광객들의 여행코스에서는 예술작품 감상시간이 중요한 부분이 되며, 관광 나온 기간은 명작예술의 향기를 즐기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 마련이다.

예술인이 생산한 작품을 감상하고 구매해주는 소비자들이 있어야 작품 재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예술창작도 하나의 경제행위이다. 제주도 인구가 어느 수준에 달해야 예술가들의 활동 기반이 조성되고 지역주민들에게도 문화향유의 혜택이 돌아간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상당 기간 중 거의 같은 내용물을 보여주는 전시예술의 경우에는 상주인구보다도 관광객들의 증가가 더 큰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제주도박물관협회’의 정회원 업체가 마흔셋이나 된 것은 제주도 지역의 관광붐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최근에 한라산 북쪽 기슭에 들어선 ‘난타전용공연장’의 관람자들도 대부분 관광객이라 한다. 관광인프라 방면의 투자 가운데 문화육성 항목의 비중이 클 것이므로 관광섬의 발전방향은 예술의 섬을 지향하게 마련이다. 제주도의 문화예산 비중이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우위를 보인다고 하고, 예술공연장이나 전시공간 등 예술활동 여건도 타지역에 비해 썩 좋은 편이라고 한다.

제주섬에 신화나 민요 등 예술창작의 소재가 풍부하다는 것도 예술의 섬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이 된다. 제주도의 전래 신화는 자타가 인정하는 뛰어난 구비문학 작품이고 제주도의 전래 민요는 민중서사시와 민속음악의 뛰어난 융합물이다. 제주도의 신화나 민요는 이 지역 민중의 소박한 삶과 역사를 올곧게 표출시킨 예술작품이기 때문에 대륙의 거대권력자들의 통치수단으로 만들어진 영웅주의적 문화콘텐츠와 다르다. 기층민 자생적인 문화유산으로서의 신화나 민요는 문학예술, 공연예술, 전시예술 등 여러 방면에서 훌륭한 작품소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제주도의 신화나 민요를 포함하여 민속관련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제주지역의 민속문화 콘텐츠는 한반도의 그것과 크게 다르기 때문에 교육부의 획일화된 교과과정에 따르는 교육프로그램으로는 소기의 성과를 바랄 수 없다.

관광과 예술을 연결시키다 보니 제주사람들의 예술친화적 기질에 대해 언급하고 싶어졌다. 어떤 이들은 말하기를, 제주도사람들은 생활력은 강인한데 문화예술은 즐길 줄 모른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제주사람들의 유전자 가운데 예술과 예술인을 애호하는 마음이 넉넉하다는 것을 제주인들의 언어생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금도 많이 쓰이는 제주어 가운데에 ‘자파리’라는 말이 있다. ‘자사리’하고도 비슷하다. 표준말의 ‘장난’하고 비슷하지만 말의 용처가 다르고 어감도 다르다. ‘장난’이라면 대개는 위험한 짓거리나 유해한 결과임을 암시하기 때문에 ‘장난치지 말라’는 말은 어느 정도 비난의 뜻을 담고 있다. ‘얄궂은 운명의 장난’, ‘말장난’, ‘장난편지’, ‘먹는 거 갖고 장난 치지 말라’ 등의 표현에서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 제주말의 ‘자파리’는 일상적이고 당연한, 그래서 재미없는 생활의 틀을 깬다는 점에서 예술인 기질과 통한다고 할 수 있다. 자파리꾼은 장난꾼 같은 심술쟁이가 아니다. 자파리 좋아한다는 것은 뭔가 기발한 것, 재미있는 것을 즐긴다는 뜻이다. ‘야이덜 자파리짓 해 논 거 보라게’, ‘불자파리허민 자리에 오줌 싼다이,’ ‘자사리꾼들이 다 모여시난 볼 만헐 거주게’ 같은 용례를 보면, 뭔가 이색적인 행동이나 장면에 대한 기대나 관용을 감지할 수 있다. 얼마 전에 4.3영화 수작으로 대박을 터뜨린 제주출신 영화감독 오멸(본명; 오경헌)의 기발한 발상들은 그가 만든 ‘자파리연구소’에서부터 빛을 보았다. 평범한 단어 하나에서도 깊은 뜻을 발견한 그의 예지가 새삼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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