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고기일/ (외교부 파견) 페루 카하마르카 주정부 지역개발전문관, 익스트림 알피니스트, 전 경제기획원·공정거래위원회·정보통신부·방송통신위원회·미래창조과학부 공무원, 전 서울제주도민회산악회장, 전 서울제주도민회 부회장

필자가 외교부 파견 페루 카하마르카 주정부의 지역개발전문관으로 축제의 나라 페루에 온지 불과 반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남미의 역사와 문화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매주 한 두 번 축제현장을 찾아 행사에 참여하곤 한다.

얼마 전 페루 카하마르카 아르마스광장에서의 10월 31일 저녁에 할로윈 행사, 같은 날 밤에‘망자의 날’ 산프란시스코성당 행사, 11월 1일 ‘성인의 날’에 추모공원 등을 돌아보며 이 글을 쓰게 된다. 이 글은 신학적, 문화인류학적, 종교사회학적인 접근이 아니고 단지 나의 주관적인 느낌임을 밝혀둔다.

망자의날 추모미사 모습

매년 11월 1일은 ‘성인의 날’또는 만성절이라고 한다. 천주교에서 800년 경에 교황 그레고리 4세가 이를 반포하였고, 개신교도 이에 이어서 축제일로 정하여 모든 기독교인들의 추모 겸 축제의 날이 된 것이다.

영어로는 All Saint’s Day, 스페인어로는 El Dia de Todos Santos라고 하는데, 聖人을 뜻하는 Hallow를 써서 할로우마스(Hallow-mas)라고도 한단다. 그런데 그 전인 10월 31일 밤은 산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모호해져 유령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게 되는데, All Hallows’Eve가 되어 훗날 '할로윈(Halloween)'으로 바뀐 것이라고도 하고.

만성절은 처음에는 죽은 날을 알 수 없는 모든 聖人들을 추모하는 날이었다. 그러다가 점점 확대되면서 죽은 자들 모두를 기념하는 일종의 공동제사날이 된 것으로 많은 기독교 국가에서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물론 페루를 포함한 중남미 국가들은 모두 이날을‘El Dia de Todos Santos(만성절, 모든 성도의 날)이라 하여 공휴일로 정해져 있다.

만성절 전날 밤인 할로윈은 원래 아주 조용하고 거룩한 날이었다. 망자들의 유령이 돌아다니므로 조용히 집에서 조용히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유령이랑 헷갈리게 해골 모양으로 치장하고 유령들과 함께 노는 형태로 변질되면서 점점 더 화려해졌고, 아예 밤새 음주가무하며 즐기는 날, 즉 축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할로윈은 기원전 500년경 아일랜드 켈트족의 풍습인 삼하인(Samhain) 축제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새해 첫날은 겨울이 시작되는 11월 1일이었다. 겔트족은 사람이 죽어도 그 영혼은 1년 동안 다른 사람의 몸 속에 있다가 내세로 간다고 믿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0월 31일은 망자들이 앞으로 1년 동안 자신과 함께 기거할 상대를 찾는다고 여겼다. 그래서 사람들은 귀신 복장을 하고 집안을 차갑게 하여 망자의 영혼이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그런데 많은 세월이 흐른 뒤 영국, 미국 등으로 이런 풍습이 넘어가면서 온갖 형상의 유령으로 분장하고 노는 분위기의 할로윈으로 점점 변하였다. 이제는 아예 거리에서 대규모 퍼레이드도 벌이고 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는 축제로, 즐기는 문화로 확 바꿔져버린 것이라고 한다.

할로윈데이 모습

할로윈는 ‘망자의 날(영어로 The Day of the Dead, 스페인어로 El Dia de Muertos)’과 동시패션으로 진행된다는 사실도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시월의 마지막 날 밤에는 망자의 날이라 하여 나라마다 다르지만 각각의 방식대로 망자를 기리는 크고 작은 의식들을 거행한다. 천주교회에서는 추모미사를 행하고 행렬(Procesion)을 하기도 한다.

1년에 한번 죽은 자들의 영혼이 세상에 오는 날은 같지만, 원래 할로윈과 ‘망자의 날’은 차이가 있다고 한다. 고대 켈트 민족의 풍습에서 유래한 할로윈은 죽은 자들이 산 자들을 해코지한다고 여겼다 한다. 그러나 아스텍 전통문화를 계승한 멕시코의 경우 ‘망자들의 날’은 11월 1일부터 3일까지로 죽은 이를 기다려 명복을 빌고 환영하며 함께 즐기는 아주 성대한 축제의 날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축제는 2007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을 정도로 역시 거창하게 할로윈 분장을 하여 마음껏 축제를 즐긴다. 어찌 보면 할로윈과 망자의 날이 혼합된 이른 바 짬뽕문화라고 볼 수도 있다.

11월 1일은 ‘성인의 날’인데, 이 또한 ‘망자의 날’과 동전의 앞뒷면처럼 다르지 않다. 중남미의 대부분 나라에서는 이날 추모공원이나 공동묘지 등을 찾아 모든 가족이 함께 묘소 앞에 모여 추모기도를 한다. 망자에게 평소 좋아하던 기호품을 선물하기도 하고, 예쁜 꽃 등으로 화려하게 묘소를 단장하고 함께 음식을 먹고 노래하며 춤추는 그야말로 엄청난 축제를 벌인다.

11월 1일을 성인의 날로 정하고 많은 나라들이 행하는 이러한 의식은 곧 제삿날이자 명절이자 축제날이다. 우리의 추석처럼 온 가족이 함께 성묘도 하고 기독교 의식의 제사도 지내고 음식도 먹으며 담소도 나눈다, 그러나 그네들은 가무도 곁들여 성대하게 축제를 즐기며 요란하게 논다는 것이 우리와 다를 뿐이다.

할로윈, 망자들의 날, 그리고 성인들의 날 등 세 가지 의식들이 나라마다 제각각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3가지 의식들은 공통적으로는 일련의 제사의식 과정이라고 볼 것이고 이를 달리 구분할 실익도 없다고 생각한다.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도 장례의식이 축제분위기에서 치러지듯이, 필자에게는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그네들의 장례문화가 한편 부러울 따름이다.

할로윈데이 모습

우리의 정서로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많다. 장례식에서, 묘소에서, 제사상 차려진 앞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나팔 불고 박수치고 노래하며 춤추는 꼴을 보인다면, 그야말로 망나니 같은 호로 자식들이 깽판 치는 모양세일 터이다. 이런 추태들을 과연 우리는 쉽게 용인할 수 있을까? 물론 ‘아니올시다’일 것이다.

그러나 죽음의 가치를 인정하고 삶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바람직한 것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일상에서 맞이할 수 있는 죽은 자와 산 자, 슬픔과 기쁨, 그리고 추모와 축제, 이런 대립하는 관계들 속에서 바람직한 공존의 방법으로 산 자는 죽은 자를 위해 애도하고 추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삶의 긍정적 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하여 축제분위기를 연출한다면 누가 나쁘다고만 할 것인가? 이러한 일들은 많은 나라가 오랜 관습에 의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문화일 게다.

동서양의 많은 나라들이 장례식을 축제로 치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유교적인 관습이 너무 얽매여서 축제분위기로 치를 수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들이 축제형식으로 장례를 치른다고 엄숙하고 경건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도 조상들의 기일에 제사를 지내며 추모하고, 산소를 찾아 벌초를 하며 묘소를 단장하고, 설날과 한가위 명절에 가족과 함께 차례를 지내며 즐겁게 명절을 보내지 않는가?

필자는 이런 것들이 여느 다른 나라들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지금은 드물지만 우리나라의 장례식장에서도 한 쪽에서는 화투치고 또 다른 쪽에서는 윷놀이하고, 간혹 술이 과하여 서로 떠들고 싸움박질 하는 모습들을 본적이 있을 것이다. 이것도 어쩌면 하나의 축제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에게는 망자에 대한 의식을 행함에 있어서 엄숙함과 즐거움이 공존하는 부분에서 이들 나라와는 달리 어색한 면이 많다고 볼 것이다, 앞으로 우리도 망자에 대한 이런 의식들이 명절처럼 축제분위기를 조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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