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밤, 제주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렸던 제주문화원 실버합창단 창단 기념 연주회 모습

평균나이 74세, 80대도 있었다. 그럼에도 목소리에는 주름이 없었다.

음색은 고왔고 리듬은 부드러웠지만 팽팽했다.

절제와 조화와 긴장감이 어우러져 제주의 늦 가을밤을 수놓았던 그들의 목소리는 나이를 잃어버렸다.

‘옛 생각’과 ‘행복’과 ‘그리움’을 테마로 하여 아름다웠던 젊은 날의 아련한 추억과 분홍빛 그리움과 가정의 행복을 노래하는 열정과 연륜이 만들어냈던 무대였다.

여기에다 단원들의 증손자뻘이나 되는 한라 초등학교 4~6학년 어린이들로 구성된 예술 동아리 ‘한라 마음소리 합창단’과 테너 황병남의 특별출연으로 엮어낸 어울림은 또 다른 감동과 감흥을 안겨줬다.

아침 햇살에 기지개켜는 연두색 풀잎처럼, 재잘거리는 참새처럼, 맑고 청아한 어린이들의 옥구슬 구르는 소리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그윽하고 포근한 중후함이 함께 어우러졌던 무대는 오래 잊을 수 없는 볼거리였고 들을 거리였다.

지난 23일 밤, 제주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렸던 제주문화원 실버합창단(이하 실버합창단) 창단 기념 연주회가 그랬다.

실버합창단(회장 정희순)은 2011년 2월 창단됐다. 단원은 65세 이상이다. 65세 이하는 아예 단원 자격이 없다.

창단 후 선상 음악회, 초청공연 및 출연, 전국 합창대회 참석 등 15차례의 크고 작은 행사를 치렀다.

지난해 제5회 전국 골든 에이지 합창 경연 대회에서는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창단 기념 연주회(지휘 오승직 반주 장은혜)는 창단 6년9개월만의 늦깍이었다.

그래서인가, 관심은 대단했다. 공연은 감동적이었으며 반응은 뜨거웠다. 몇 차례의 앙코르는 깊은 가을밤의  즐거운 선물이었다.

공연장 1~2층 1천여석이 훨씬 넘는 좌석은 이미 만원이었다. 자리 잡지 못한 입석 관객도 많았다.

소프라노 파트 21명, 알토 파트 19명, 테너 파트 10명, 베이스 파트 9명 등 59명이 무대에 올랐다.

분홍빛 드레스를 입은 할머니 단원들의 표정은 연분홍 수줍음으로 설레는 듯 긴장했다.

빨간 조끼에 나비넥타이가 그럴듯한 할아버지 단원들은 우쭐대는 소년처럼 의기양양(意氣揚揚)했다.

그러나 그들의 노래는 차분했다. 각각이 갖고 있는 음색과 리듬을 잘 다스려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뤘다.

누가 그랬던가. ‘사람의 목소리만큼 아름다운 악기는 없다’고.

르네상스 시대의 작곡가 월리엄 비어드도 “어떤 기악 음악도 인간의 목소리로 만든 음악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했다.

신이 선물한 최고의 악기는 ‘인간의 목소리’라는 말도 있다.

70대~80대 실버 합창단원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이성과 감성을 넘나드는 이러한 ‘목소리 예찬’에 공감 할 수 있었다.

특히 합창은 신이 선물한 최고의 악기인 인간의 목소리를 아름답고 리드미컬하게 배열한 ‘절제와 조화의 예술’이라고 한다.

소프라노와 테너는 높은 음 자리이면서도 도드라지게 굴거나 뽐내지 아니 한다.

아무리 음색이 곱거나 음량이 풍부해도 겸손하다.

물에 가라앉은 듯 깊고 조용한 낮은 음 자리의 알토나 베이스도 주눅 들거나 시기하지 않는다. 높은 음 자리와 촘촘하게 어울리며 제 몫에 최선을 다 하는 것이다.

단원들은 각각의 성량(聲量)이 다르고 음역(音域)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다름 속에서 조화와 어울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자면 “합창에서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듣는 것”이라 했다. 합창 기술의 제1원칙이다.

자기 파트를 잘 소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소리를 잘 듣는 것, 다른 파트와 호흡을 맞춰서 소리를 내는 것이라 했다.

합창은 뛰어난 몇 사람이 아닌 구성원 모두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야만 아름다울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질서와 양보와 배려, 조화와 일치가 합창의 기술이며 매력이다.

그러기에 그리스의 자연철학자 피타고라스는 ‘합창(음악)은 소리가 만드는 작은 우주’라고 했다.

음악 속에 우주의 조화로운 질서가 배어 있다는 말로 이해 할 수 있다.

이번에 공연한 실버합창단은 프로가 아니다. 전문가 그룹이 아니다. 취미 활동 동아리다.

노래가 좋아서 함께 어울리며 즐거워하는 ‘노래패’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창단 기념 공연의 수준을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치도 않고 의미가 없다.황혼의 아름다움을 엮어 노래하는 어르신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그들이 뿜어냈던 감동은 노래 실력의 수준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70~80 노년들 소리의 아름다운 조화와 배려와 일치가 감동의 하모니를 만들어 냈고 감흥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테너 파트의 고두승 단원은 “노래를 부르면 즐겁고 행복하다”고 했다. 실버합창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유였다.

‘노래는 소리로만 부르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불러 공명을 부르는 것’이라고도 했다.

살아온 배경이 다르고 우여곡절이 각각인 다양한 사람들이 단지 노래가 좋아서 모였고 이심전심 이 같은 다양성과 다름을 인정하여 노래를 부르다 보면 어느덧 일치를 이루어 즐겁고 행복해 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실버합창단 공연은 이러한 다양성과 다름에서 양보와 배려를 엮어내고 이를 통해 조화와 일치를 이루어 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주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노래는 ‘치유의 예술’이기도 하다.

"서로 박자에 맞춰 노래하고 어우러져 음악활동을 하면 엔드로핀이 생성돼 아픈 몸과 마음이 치유되고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는 음악치료사의 이론도 있다.

실버합창단원 모두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면서 더 즐겁고 더 행복하게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여기서 비롯된다.

‘노래하는 곳에 사랑이 있고

노래하는 곳에 행복이 있네‘

문득 가수 윤항기가 부른 ‘노래하는 곳에’ 몇 소절이 귓가에 맴도는 늦가을이다.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