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추운 아침에 꼭 간다면 택시라도 타고 가세요. 그렇게 먼데까지 걸어서 간다니 저는 추위에 약해서 죄송하지만 같이 못 가겠습니다."

지난 11월 21일 아침 6시 좀 지나서 머물고 있던 명동 로얄호텔을 나와서 명동성당 앞을 지나 일본대사관에 가기 위해 혼자 걷기 시작했다.

이 시간이면 오사카는 날이 꽤 밝는데 서울은 아직도 어슴프레하게 어둠에 잠겨 있었서 뚜렷하게 주위를 볼 수 없었다. 

11월 19일부터 21일까지 <재일본대한민국민단오사카본부>주최로 고국 서울 연수에 135명이 참가했었다.

김포공항에서 내린 일행은 버스 3대에 분승해서 바로 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모국 연수에 들어가서 21일 날은 마지막 날이었다.

그 동안 서울 올 때마다 벼르고 벼르웠지만 실행 못한 일본대서관 앞 소녀상을 이번만은 어떤 일이 있었도 보고 아니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같은 방을 쓰는 동료에게 같이 가자고 권했었다. 그는 찾아가는목적에는 동감하지만 이 새벽에 차도 타지 않고 걸어서 그 먼 곳까지 간다는 것은 이해 못하겠다는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핑계에 서울 지리도 알겸 아침 새벽이니까 시간도 있어서 그렇다고 말은 했지만 그것보다도 오염되지 않은 싸늘한 아침 공기와 청계천 시냇물 소리를 한몸에 받으면서 가고 싶었다.

걷는 사람들이 띄엄 띄엄 지나치고 청계천에도 운동을 위해서 걷는 사람들도 추위 때문인지 드물었다. 그 전날 서울은 첫눈이 내렸었다.

계단을 내려가서 청계천 시냇물 따라 걷고 싶었지만 길을 잘못 찾을 것 같아서 그냥 보도 위를 걸었지만 그래도 몇차례 지나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야 했었다.

"일본대사관에는 무엇 때문에 가십니까?" 광화문까지 이르러서 미국대사관 경비를 담당하는 경찰관(의병)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더니 의아스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소녀상을 보러 갑니다." "아, 그러세요. 지금 일본대사관은 공사중이어서 여러 업무들을 분산해서 보고 있기 때문에 물었습니다." 친절하게 가르쳐주면서 경찰관이 덧붙였다.

소녀상은 채 밝지 않은 날씨 속에 가로등 불빛에 비추인 채 고고히 앉아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의미 모를 어떤 울컥함이 복받쳤다.

국가간에 서로 갖고 있는 역사인식의 갈등이 당사국인 한.일 양국만이 아니고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소녀상이 바로 눈 앞에 있었다.

얼굴을 어루만졌을 때의 차거움은 얼음과 같았다. 청동의 소녀상으로서 결코 새벽 아침이라는 물리적 현상에 의한 차거움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일어난 울컥함은 만남의 감동도 아니고 혐오감이 주는 무시도 아니었다. 웬일일까? 스스로가 자문 속에 마음 정리를 해보았다.

그렇다. 깨달았다. 소녀상의 고독이었다. 잠시 후,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일방적인 사랑만을 흠뻑 받을 수 없는 소녀상 스스로가 겪고 있는 고독에 대한 연민이었다.

"이 분들은 누구십니까?" 소녀상 바로 곁에 비닐텐트를 치고 자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난로도 있어서 장기적으로 머물고 있는 것 같았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경비를 담당하는 경찰관(의경)이 미안해 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2015년 12월 28일 한.일양국의 위안부 타결에 대한 항의운동으로 대학생이 중심이 되어 소녀상 지킴이를 그때부터 24시간 계속해왔다고 한다.  

2011년 12월 14일 수요집회 1,000회를 기념으로 세운 소녀상은 "평화의 소녀상" 혹은 "위안부상"으로 불리우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고 올마른 역사인식을 확립하기 위한 예술조형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지난 9월 28일에는 관할 담당 종로구가 "서울시 종로구 공공조형물 제1호"로서 지정했다고 발표했다.

공공조형물이란 도로, 공원 등에 설치하는 동상 기념탑, 기념비 아니면 무엇을 상징하는 상징탑, 상징물 그리고 조각, 공예, 사진, 서예와 같은 예술조형물이라고 한다.

철거를 요구하는 일본의 항의가 되풀이되고 한국 정부는 딱부러진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우물우물 넘어가고 있다.

다시 한번 차거운 소녀상 얼굴를 어루만지고 나서 그 앞에서 필자는 두손을 모아 머리를 숙이고 빌었다.

"저는 오늘 여기 처음 와서 순간적으로 느낀 울컥함이 저 스스로가 잘 몰랐었지만 그것은 당신의 고독에 대한 연민의 정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무조건 사랑만을 받아도 모자랄 당신의 인생이, 역사인식이라는 대의명분 속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당사국 일본대사관 앞에서 그들의 사랑도 받지 못한 채 하염없이 앉아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서로 상반된 인식 속에서 당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당신은 어느 누구도 겪지 못할 고통과 고독 속에서 지새우고 있다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가 제삼자가 운운하기 이전에 당신 스스로가 이제는 푹 쉬고 싶다고 나를 따뜻한 안식처로 데려가 달라고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니 틀림없이 그때가 올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당신을 찾아올 것입니다. 가해자가 용서를 비는 마음보다 피해자의 용서는 더욱 가슴 아프지만 아름답습니다. 당신은 이 고독 속에서 반드시 해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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