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양길현 교수/제주대학교 윤리교육과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고 제주담론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기독교 창세기의 얘기이다. 태초에 하느님이 존재하고, 그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세상과 인간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하느님의 말씀 이전에 세상을 창조하겠다는 하느님의 위대한 생각이 있었지 않았을까. 태초에 하느님이 존재하고, 그 이후 하느님이 무언가를 생각하고, 그 연후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세상이 창조되었다고 본다면, 말씀 이전에 생각과 아이디어가 있었다고 보아 무방할 것이다.

하느님을 닮았다고 하는 인간은 하느님을 따라 항상 무언가를 생각하고, 그 생각을 말로 표현하면서 살아간다. 제주담론은 생각과 말로만 하지 말고 글로도 자신을 표현하고 세상을 그려보자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글로 표현하려면, 생각을 좀 더 다듬는 사전 절차가 있는 게 정상이다. 초고를 썼다가 수정-보완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그만큼 글은 정제된다. 진의가 보다 명확해 지고, 보다 논리적이고, 자료도 보다 더 많이 갖추어지는 게 보통이다.

지난 8월 제주도민 몇 분들과 의견을 나누면서, 다음과 같은 글쓰기 문화운동에 뜻을 같이 하기로 했다. 이른바 <제주담론>의 취지는 크게 3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1) 풀뿌리 제주도민의 상호격려적인 의사표현의 장이자 의사소통 네트워크로서의 역할이다. 가능하면 많은 도민들이 참여하도록 서로 격려하면서 새로운 세상에 한걸음 다가가는 그런 담론의 장이자 글쓰기 인구의 저변 확충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2) 제주 현안에 대해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공론장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1년에 한-두번쯤은 자신과 제주의 미래에 대해 무언가 곰곰이 생각을 가다듬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자는 것이다. 이 점에서 제주담론은 하나의 자그마한 글쓰기 시민문화운동의 하나이기도 하다.

3) 제주의 밝고 힘찬 미래를 향한 도내-외 120만 제주인의 아이디어와 비전을 공유하는 장이 되면 좋겠다는 것이다. 인터넷 신문과 제휴하여 보다 쉽고 편하게 생각과 아이디어를 교환해 나감으로써 의도치 않은 결과로서 제주사회의 사회적 자본 구축에도 기여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있다.

이러한 취지에 동감하는 100여명의 필진들이 6개월에 1편 이상 글을 쓰기로 하고는, 제주도 인터넷신문 1호인 제주투데이에 칼럼 코너를 마련하였다. 그 코너 이름도 100여명의 필진들의 다수 의견을 모은 결과 제주담론으로 정하였다. 칼럼 코너의 이름으로 제주백가쟁명도 유력하게 거론되었지만, 최종 제주담론으로 명명하게 된 데에는 글쓰기의 무거운 책임을 더 많은 다수가 공히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태초에 생각이 있었으리라 입장에서 제주생각도 유력한 후보였다. 필자도 제주생각이 보다 경쾌하고, 그러기에 보다 많은 도민들이 쉽게 글쓰기에 접근할 수 있으리라는 점에서 은근히 제주생각을 선호한 바 있다. 그 외에도 편하게 말을 그대로 옮기면 되는 것처럼, 제주이야기로 하자는 의견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필진 다수가 제주담론이라는 조금은 거창하고 무거운 이름을 선호한 데에는, 글쓰기에 내재하여 있는 좀 더 진중한 과정을 중시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창세기의 천지창조와는 달리 모세의 10계명 율법은 글로 쓰였다.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계명과 삶의 도덕적 규율은 돌판에 새겨 엄중함을 확실히 했다. 그렇게 생각이나 말보다 글은 기록으로 남아 계약사회의 근본으로 역할을 한다. 그래서인지 글 하나 써 달라 부탁하면, 이런저런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어렵사리 제주담론에 글을 써 준 필진들은 정말 대단한 분들이다. 별 득이 없는데도 생각을 다듬느라 시간과 에너지가 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주를 사랑하는 도내-외 각계각층 제주도민들이 <제주담론>에 글쓰기 시작한 지 어느새 4달이 되고 있다. 오늘도 괜히 <제주담론>에 글 쓰겠다고 약속한 것을 조금은 후회하면서, 그래도 약속한 글 빚을 갚으려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할 것 같다. 이러한 수고가 하나씩 모여 제주의 밝은 미래가 열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은 너무 순진한 것일까. 이 글은 제주담론 글쓰기를 약속한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한편으로 글쓰기가 자신과 지역 공동체를 위한 보람된 시간임을 상기시키고자 하는 마음으로 쓰고 있다.

자청해서 제주담론 에디터를 맡은 필자는 지난 4개월간 지인을 만날 때마다 제주담론에 글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 그 가운데 누군가가 흔쾌히 글을 써 주겠다고 하면서, 주제와 분량 또는 언제까지 어디로 보내면 되는지 물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언제든 편할 때, 주제와 분량은 자유로, yangh@jejunu.ac.kr로 원고, 필자 사진과 소개 그리고 통장번호를 보내주면 됩니다.’ 이렇게 문자로 답신을 보내는 날은, 마치 공 돈 생기는 때처럼 하루 종일 기분이 좋은 날이다.

그렇게 4개월간 한편 두편 모아 100편의 글이 제주담론에 채워졌다. 제주신공항에 대한 비판적 글도 있고, 문화제주를 찾아나서는 정책 제언 글도 많다. 거의가 복지, 환경, 평화, 관광경제, 공동체 등에 대한 각 필진 나름의 제주 생각과 애정을 담은 글들이다. 100편의 글을 주제별로 분류하여 조만간 단행본으로 내자니, 책 제목이 걸린다.

그냥 제주담론으로 책을 내는 건, 이미 박경훈 저, <제주담론>이 나와 있어서, 어렵다. 그래서 제주담론에 실린 글 대부분이 제주의 밝은 미래를 찾아나서는 생각과 이야기들을 담고 있기에, <제주미래담론>(가칭)으로 해서 출판하고자 한다. 물론 최종으로 필진들의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

칼럼을 모아 책을 내는 과정도 또 하나의 생각 가다듬기가 된다. 필진 각자가 자기의 글을 교정보면서 수정하고 보완하는 과정만큼이나 책 내용을 더 좋아질 것이고, 독자들에게도 유용한 책이 되리라 본다. 문득 떠올라 쓴 칼럼을 몇 달이 지난 뒤에 다시 들여다보는 건, 분명 번거로운 일일 수 있다. 그렇지만 번거로움이 자신의 생각과 글을 소중히 여기는 과정의 하나로 충분히 뿌듯함을 줄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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