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양길현 교수/제주대학교 윤리교육과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고 제주담론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와 관련, 지난 주만 해도 3개의 장면이 눈에 띤다. 하나는, 11월 29일 북한이 새로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5형 발사 소식이다. 둘은, 바로 이틀 전날인 27일 평화재단(이사장 법륜스님)이 창립 13주년을 맞아 <기로에 선 한반도, 평화가 먼저다> 주제로 개최한 심포지엄이다. 셋은, 북한 미사일이 발사된 29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제주시협의회(회장 성일승)가 주관한 <2107년 통일시대 시민교실: 평화통일 환경진단과 실천과제>이다. 이 글은 이 3개의 장면을 상호 연관시키면서, 한반도의 평화 문제를 바라보는 하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평화와 안보 문제와 관련, 우선 필자는 평화는 한반도 차원의 것으로 그리고 안보는 대한민국 차원의 것으로 구별하고 있음을 밝혀야 하겠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대한민국의 안보 문제를 등한시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 글은 대한민국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한반도의 시각에서 평화를 둘러싼 의견 개진이다. 예를 들어 29일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관련 대한민국의 안보 문제는 안보 전문가에게 맡기고, 필자는 이와 관련한 평화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화재단의 심포지엄 주제처럼, 불안정한 정세의 한반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반도에서 ‘평화가 먼저’라는 문제의식은 누구나 공감하는 바일 것이다. 이 때 한반도에서의 평화란 1차적으로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뜻하며, 2차적으로는 남북한 간에 교류협력이 활발히 전개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북한이 장거리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자마자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를 하는 이유는,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이 대폭 커지고 있다고 보는 인식에 근거한다.

여기서 통상 언급되는 바, 한반도 정세의 심각한 불안정이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미국 본토에까지 공격할 만큼 개발되는 만큼이나 이를 선제하려는 미국의 응징으로 인해 한반도에서 미국과 북한이 전쟁을 치르게 되는 상황을 지칭한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전임 대통령과 달리 종잡을 수 없는 언행을 보이고 있어, 한국은 예기치 않은 불상사의 가능성을 2중으로 안고 있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은 틈만 나면 ‘전쟁 불가=평화 우선’을 들먹이곤 한다. 원치 않는 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 정도와 미국의 북한 응징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각자 다르 것이다. ‘북한과의 전쟁 가능성이 매일 증가’하고 있다는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경고성 언명이 있는가 하면, ‘북한의 핵무력 완성으로 오히려 대화의 길이 열릴 수 있다’는 희망 섞인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 11월 30일 자 <한겨레신문> 1면 기사 제목처럼, 충돌이냐 협상이냐의 ‘갈림길’이 2017년 12월 연말을 흔들고 있다.

그러나 어떤 시각으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바라보든, 확실한 건 무조건적 대화 이외의 다른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즉, 한반도 정세불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북핵 문제와 관련, 평화적 해법은 대화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굳이 평화재단 심포지엄에서의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의 기조발언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건 상식에 속한다.

그동안 국제사회가 강도를 높여온 대북제재는, 그것이 무력도발은 아니라는 데서 일말의 정당성을 갖고 있기는 하다. 실제 강력한 대북제재의 효과가 북한사회 내부로부터 나타나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보기에 제재는 그 본질에 있어서 강자의 방책일 뿐이다. 제재의 효과가 어떠할지에 대해서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자가 약자에게 제재라는 방책을 취하는 것은 그것이 상대적으로 쉬운 방책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대화는 상대적으로 상호 대등한 수평적 관계를 전제하기 때문에 강자의 입장에서는 성가시고 불편할 뿐만 아니라 강자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자가 지배적인 국제정치의 흐름에서, 강자는 쉽게 약자에게 제재를 가함으로써 강자의 의사를 관철하고자 하는 걸 자주 보게 된다.

필자는 평소 그 배경과 이유를 면밀히 따져보기 전에 일단은 강자의 방책이라는 시각에서 대북제재에 대해 비판적이다. 특히 과거 미국의 제재 대상이었던 쿠바나 니카라과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현재의 북한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제재는 실제에 있어서 타깃이 되어야 할 집권 계층보다는 일반 주민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는 점에서 비인도적인 방책이라고 보고 있기에 그렇다. 제재를 택하는 것은 그만큼 미국 정치인들이 타국에 대해 보다 많은 주의를 하지 않고 쉬운 방책을 택하는 정치적 게으름 내지는 안일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북핵 문제에서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편승하여 온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와는 달리 문재인 정부는 무언가 다르기를 바라는 의견도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그 하나가 홍석현 이사장의 주창이다. “한국이 북미간 불신의 간극을 메워주는 촉매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경제-문화-스포츠 분야를 망라한 민간의 모든 채널을 풀가동해 북한과의 접촉”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제재가 아니라 대화와 접촉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과의 접촉 확대 필요에 대한 주장은, 지난 29일 민주평통 제주시협의회 시민교실에서 특강을 했던 신종호 통일연구원 기획조정실장의 언급에서도 나왔다. 이날 시민교실에 참석했던 필자는 신종호 실장에게 ‘신 실장님이 만약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면 어떤 대국적(大局的) 대북정책 비전을 제안할 수 있는지, 하나만 예시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신종호 실장은 대만정부의 대중 교류개방정책을 언급하면서, 전면적인 대북방문을 허용하는 것도 대국적 자세가 아닌가 하는 의견을 비쳤다.

이산가족의 방북 허용은 물론이고 홍석현 이사장의 주창과 유사하게 학술-종교-스포츠 등으로 민간이 북한을 방문하도록 전면 허용해 주어야, 한반도의 평화 찾기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북한이 이러한 우리의 대국적 제안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이지만, 적어도 문재인 대통령이 이러한 대국적 정책을 언명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한반도의 평화를 향한 대안적 걸음으로 널리 호평을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홍석현 이사장과 신종호 실장의 대북 방책에 동감한다면, 결국 한반도의 평화는 우리의 대국적 내지는 전향적 입장 변화에서 시작하리라 본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의 예측불허의 뒤집기 정책이 큰 힘을 발휘하리라는 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다. 다만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 게 아닐까. 북핵 문제가 북미문제가 아닌 남북문제로 바꾸어 나가야 할 우리의 대국적 주도성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그런 대국적 자세에는 특정 영역에서 북한방문을 전면 허용하는 것만이 아니라 필자가 다른 글에서 이미 피력한 바 있지만, 과거 김영삼 대통령이 김일성에게 했던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도 김정은에게 ‘언제 어디서든 북이 원하는 일시와 장소에서 만나자’는 전향적 자세가 요청된다고 볼 것이다. 문재인-김정은이 만나 남북한 대사급 수교도 논의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독일에서 언명한 바와 같이,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위해서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오직 평화’임을 명확히 한 바 있다. 다만 필자나 신실장이 보기에, 문재인 대통령의 4가지 대북 제안은 대국적 견지에서 보면 2%가 부족해 보인다. 인도적 문제의 해결, 평창올림픽에의 북한 동참, 적대행위 금지, 남북간 접촉 및 대화 재개 추진 모두가 다 나름 의미 있는 대북 제안이다. 그렇지만 한국이 한반도의 평화를 얼마나 절실하게 원하고 있는지를 담아 한 단계의 높은 차원의 대북 방책으로는 부족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게 미온적이고 현상추수적인 대북 정책과 제안이 청와대에 지배적인 한, 안타깝게도 평화의 섬 제주가 세계평화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여지도 별로 없어 보인다. 더욱이 6개월 후의 지방선거를 걱정해야 할 원희룡 지사도 굳이 무리하면서 평화의 섬에 걸맞는 대북 정책을 펼 여유나 의지도 없다고 보아 무방하다. 그렇다고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시민사회단체나 민주평통과 같은 친정부 기구 그 어디도 한반도의 평화라는 대국적 이슈를 놓고 절실하게 전향적으로 무언가를 논의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지도 않다.

평소에 북한에 대한 전향적-대국적 논의가 부재할수록, 29일 북한이 화성-15형 미사일을 발사하면 그에 맞춰 북한응징이나 더 강력한 대북제재론이 기승을 부리게 된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 이후 송영무 국방부장관이 미국의 대북 해상차단 논의를 해상봉쇄로 언급하는 것이 그 대표적이다.

그러나 대북관계에서 미국과 공동 보조하는 한편으로 한국 나름의 독자적 역할을 찾아나서는 광폭행보가 요청된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미국은 대북 외교적-경제적 제재 수위를 더욱 높이는 ‘최대의 압박’ 정책을 계속할 방침이라고는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틸러슨 미국무장관이 지적하는 바, 미국도 일각에서는 “비핵화를 향한 평화적 경로” 찾기 입장을 유지하고 있음에 주목하고 이와 공조하는 대북정책이 요청된다. 한반도의 평화를 찾아나서는 하나의 길은 미국 내 대화파와의 연대이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평화적 경로를 찾는 대북정책에서 정부의 독점을 푸는 것도 그 하나의 시작이다. 경제-문화예술-종교-스포츠에서는 지방정부에게도 역할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제주가 빛을 발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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