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양길현 교수/제주대학교 윤리교육과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고 제주담론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칠 전 오랜만에 아라요양병원의 이유근 원장님을 뵈었다. 이유근 원장님이 노년에 죽음을 준비하면서 지낼 멋진 요양병원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사비를 털어 지은 게 아라요양병원이다. 아직은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요즘 제주에서 간호사를 구하기가 어려워 병원 수지가 잘 맞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의 의료 현실에 안타까움이 컸다.

이유근 원장님과 점심하고 병원을 나오는데, ‘살아있는 장례식’(55)으로 유명한 책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미치 앨봄 지음 / 공경희 옮김, 살림, 2017 ; 이하 모리) 한권을 받았다. 별로 무겁지 않은 책이라 그냥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마침 제주공항에서 비행기가 연발하는 바람에, 탑승을 기다리면서 <모리>를 꺼내 읽게 되었다. <모리> 책이 두껍거나 무거웠다면, 분명 이 책을 가방에서 빼버렸을 것이라 생각하니, 앞으로 책은 가능하면 부피가 많이 나가게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 공항에서 다 읽지 못하였지만, 무거운 책이 아니기에 그냥 들고 다니다가 시간 날 때 마저 다 읽기로 마음 먹었다. 이 글은 바로 지난 며칠에 걸쳐 틈틈이 주로 공항에서 읽은 <모리>에 대한 느낌과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모리>는 루게릭병으로 죽어가는, 미치의 스승 모리를 통해서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배우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깨닫게 됨’(168)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펼치자마자 루게릭병 얘기가 나오자, 이유근 원장님의 절친인 고 김영갑 사진작가를 떠올리게 되었다. 김영갑님은 루게릭병으로 돌아가셨지만, 그가 성산읍 삼달리에 남겨 놓은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은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 중의 하나이다. ‘죽음은 생명을 끝내지만 관계를 끝내는 건 아니’(9)라는 모리 교수의 말처럼, 김영갑은 죽었지만 후세 사람들과의 관계는 유지하고 있는, 몇몇 복 받은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김영갑은 루게릭병으로 투병 중에도 제주의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아내는 투혼적 삶을 통해, <모리>가 그렇게 원하는 바, ‘어떻게 죽어야 할 지를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8)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제주자연에 대한 남다른 사랑과 헌신으로, 죽어가면서도 보여준 생명력을 통해 김영갑과 방문객의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미치가 책을 낸지 20년이 지나 깨닫게 된 건, 모리를 힘들게 한 것이 죽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건 ‘잊히는 것’(27)이었다. ‘죽음은 생명이 끝난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이 아니’(252)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으로 삶이 끝나도 관계는 끝나지 않게 할 방법은 뭘까?’ 그것은 ‘베푸는’(30) 데 있다는 정답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어느 시점에서 자신을 주는 것이 영원히 사는 것이라는 것, 한마디로 얘기하면 ‘주는 것이 곧 사는 것’(30)이라는 것이다. 좀 더 <모리>의 부연설명에 따르면, ‘인생을 의미있게 보내려면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야 하고...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봉사하고 자신에게 생의 의미와 목적을 주는 일을 창조하는 것에 헌신해야 한다.’(93 & 195)

베푸는 것과 관련하여 <모리>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길 권하고 있다.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것을 타인에게 주면’(194) 된다는 것이다. 당연히 베푸는 게 돈만이 아니다. ‘시간을 내주고 관심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해 주고’(194) 그리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렇게 ‘타인에게 뭔가를 주는 것이야말로 내가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197)는 것이다. 내가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되는 만큼이나 ‘삶에서 의미를 찾게 되면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고...오히려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하고...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것을 하고 싶어 하는’(186), 삶의 의미와 활력이 선순환하게 된다는 것이다.

모리와 미치 모두 가족들이 중병으로 일찍 죽었기 때문인지, 가족 간의 사랑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가족의 뒷받침과 사랑, 애정과 염려가 없으면 많은 것을 가졌다고 할 수가 없다’(152)는 것이다. 루게릭병에 걸려 죽음이 오늘 내일하는 처지에 몰린 모리 교수에게는, 더욱 가족이 중요하게 다가올 것이었다. 필자도 평소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부모가 일찍 돌아간 고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어린 나이에 각박한 세상에 혼자 내버려졌다는 고독과 불편 그리거 물질적 어려움만이 아니다. 칭얼되고 싶고 그냥 생 떼 쓰고 싶을 때 쉽게 그리고 편안하게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만큼 세상살이가 힘들어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부모가 필요한 만큼이나 부부에게도 아이가 필요하다는 게 모리의 주창이다. ‘자식을 갖는다는 것과 같은 경험은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다르다’(154)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식을 가짐으로써, ‘타인에 대한 완벽한 책임감을 경험’할 수 있고, ‘사랑하는 법과 가장 깊이 엮이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의 중요성은 비단 아이 때와 죽어갈 때만이 아닐 것이다. ‘살아가는 시간 내내 사실 우린 누군가가 필요’(232)한데, 그 가운데 가족이 대표적이다. 다만 <모리> 책은 그 가족이라는 게 부모형제에만 국한하지 않고, 대가족으로 넓히고, 마을 공동체로, 나아가 지구촌 인류사회와 자연세계로까지 확장해 나갈 것을 시사하고 있다. 아무나 쉽게 그렇게 통 크게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하나씩 차근차근 찾아나서는 데서 삶의 의미와 활력이 존재한다고 볼 것이다.

굳이 위대한 시인 오든(Wystan H. Auden)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할’(152 & 239) 지 모른다. <모리>에게 사랑이란, ‘연민이고...서로에 대한 책임감’(238)이다. ‘그렇게 한다면 이 세상은 훨씬 좋은 곳이 될’(238) 걸로 보고 있다. 그렇게 좋은 세상에서는 ‘평범한 하루에서도 완벽함을 찾을 수 있을’(255) 것이다.

<모리> 책을 반쯤 읽고 있던 지난 주 어느 날, 필자의 제주일고 17회 고교 동창인 최웅철 약사를 만나 저녁 같이 했다. 옛날에는 돈이 기대보다 많이 벌려 수익 일부를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주기도 했던 동창과의 식사 자리이기도 했지만, 또 마침 필자가 <모리>의 ‘베품’에 열심히 주목하고 있는 때인지라, 요즘도 장학금 주고 있느냐 물어보았다. 아들 둘 뒷바라지 하느라 요즘은 뜸하지만, 앞으로 1-2년 후 아버지로서의 책임이 다 끝나면, 다시 이웃 사랑에도 눈을 돌릴 거라며, 필자의 조그마한 베품에 대해 경의를 표해 주었다.

최웅철 아들들은 행복하겠다. 책임감 있는 아빠를 두었으니. 어떻든 그러면 1-2년 후 같이 손잡고 이웃사랑 실천에 한걸음 나아가 보자고 약속했다. 2019년이 기다려진다. 그렇게 우리 둘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로 눈을 돌리고 길을 찾고 있다. 이 얼마나 기쁘고 생기 넘치는 대화이며 의미 있는 시간인가. <모리>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으면서, 최웅철 친구를 떠올리게 되었다. 모리 교수의 미소 띤 얼굴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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